기자명 이지원 기자 (ljw01@skkuw.com)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힘써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임을 기억해야”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항거 전 외친 말이다.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서울 평화시장은 의류 산업 발전의 중심지였으나,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 있었다. 1970년에 전태일 열사가 작성한 평화시장 봉제공장 실태조사서에 따르면 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건물 안에 환기 장치가 없었을뿐더러 대부분의 노동자가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또한 만 16세 이상 기준 1일 법정근로시간이 8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다들은 14시간 작업은 물론 야근하는 일도 잦았다. 하루 수당 역시 70원(1970년 기준)에 불과했다. 당시 서울 버스 편도 이용 요금이 10원인 것을 생각하면 매우 적은 일급이다. 부당한 현실을 직시한 전태일 열사는 “약한 직공들 편에 서서 정당한 타협을 하리라고 결심했다”고 일기 속에서 포부를 밝히며,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다.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을 대상으로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1970년 11월 13일 그는 이러한 부당함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이는 노동조합들이 연대 투쟁하며 노동운동을 전개해 가는 원동력이 됐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씨는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임에도 천대받고 멸시 당한다”며 “하나가 돼 싸워 달라”고 전했다.

*시다=미싱사와 재단사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

 

전태일 기념관 외관. 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skkuw.com
전태일 기념관 외관. 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skkuw.com
자신이 바라는 근로조건을 적어놓은 사진.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skkuw.com
자신이 바라는 근로조건을 적어놓은 사진.
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skkuw.com
봉제공장 내부 모습 재현현장.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skkuw.com
봉제공장 내부 모습 재현현장.
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