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수진 기자 (waterjean@skkuw.com)
일러스트 I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일러스트 I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문화적 전환을 배경으로 번역학 자리잡아
번역에 대한 윤리적 논의 필요해

 

영화 <어벤져스>는 시리즈 세 개가 연속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번역이 원작의 의도를 살리지 못해 몰입을 반감시켰다는 오역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처럼 번역은 원작의 가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렇다면 번역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했을까. 번역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책 번역을 중심으로 번역학에 대해 알아보자. 
 

제2의 창작, 번역
번역이란 특정 언어로 이뤄진 원작을 다른 언어로 바꾸는 행위를 지칭한다. 책부터 영화, 게임 그리고 웹사이트까지 번역의 대상은 다양하다. 번역은 독자가 원작에서 느낀 인상과 의미를 번역물에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번역의 중요성은 원작의 가치가 번역에 의해 극대화된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는 원작의 문학적 뉘앙스를 살리면서 영문으로 번역해 책의 작품성을 뒷받침한 결과이다. 

문화적 전환으로 이뤄진 번역학의 독립
번역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최초의 성경 번역본이라 알려진 『70인역』은 기원전 3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번역의 긴 역사와는 달리 번역이 하나의 독립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번역은 주로 문학이나 언어학의 하위 학문으로 연구되며 번역 자체보다는 번역을 통해 언어 간의 차이 혹은 문학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적 개념으로 활용됐다. 번역 자체를 연구 주제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논의는 어휘나 문장이 원문과 객관적으로 대응되는지 비교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1990년대에 일명 ‘문화적 전환’을 겪으며 번역은 번역학이라는 독립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됐다. 문화적 전환이란 번역을 설명하기 위해 텍스트를 넘어 문화 전체를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이는 기존의 원문과 번역문 간의 관계에서 문화라는 외적 환경으로까지 번역의 관심을 확대했다. 이에 대해 한국외대 프랑스학과 이향 교수는 “이전까지 텍스트 차원에서만 이뤄졌던 번역에 대한 논의로는 실제 번역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들이 집대성된 것”이라며 문화적 전환의 등장 배경을 밝혔다. 

한편 우리나라의 번역은 한문 서적을 들여오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는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록에 남은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서는 *이두로 번역한 『대명률직해』다. 이후 19세기경부터 서양의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종교 서적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번역이 이뤄졌다. 개화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문학 번역본이라 여겨지는 『천로역정』이 발간됐다. 이후 1900년대 초에는 『레미제라블』이 『너 참 불상타』로 『플란다스의 개』가 『불쌍한 동무』로 번역되는 등 서양 소설의 활발한 번역이 이뤄졌다. 한편 우리나라의 번역이 학문으로서 자리 잡은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국내의 경우 현장에서 통번역을 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 학회를 만들다 보니 처음에는 실무적인 주제가 연구됐다”며 “번역학이 자리 잡기 이전부터 문학이나 언어학 차원에서 번역을 다뤘던 사람들이 학문 안으로 들어와 다양한 주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연구됐다”고 말했다.

번역의 다양한 방향
번역물은 취한 양식에 따라서 △직역 △의역 △중역 △역번역 등으로 나뉜다. 직역은 원문의 언어구조나 형식에 충실해 원문을 최대한 그대로 살린 것이다. 반면 의역은 번역물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에 집중해 원전의 형식이나 구조보다는 전체적인 뜻을 살린다. 예를 들어 영어의 ‘a piece of cake’를 직역은 ‘한 조각의 케이크’로, 의역은 ‘식은 죽 먹기’로 번역한다. 두 분류 중 절대적 우위에 있는 번역법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번역법을 선택한다. 중역은 원문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 번역본을 바탕으로 다시 번역하는 방법이다. 주로 소수언어, 고어와 같이 원문의 언어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못할 때 중역이 이뤄진다. 목표한 언어로 번역된 결과물을 다시 원문의 언어로 되돌리는 역번역은 기계 번역 결과물의 정확도를 확인하기 위해 많이 사용한다. 

번역물의 목적과 장르에 따라서도 번역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진다. 번역물로써 얻고자 하는 목적이 다르다면 같은 원문이라도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윤영삼 번역가는 “똑같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을 번역하더라도 번역물의 목적이 영어 학습인지 명연사를 소개하는 것인지 등에 따라 번역의 내용과 형식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번역가는 “책의 장르에 따라서도 번역물에 대한 독자의 기대가 달라져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문학 작품은 추상적인 표현이나 분위기를 나타내는 표현을 살리고 실용서는 원전의 객관적인 정보 전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번역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번역의 현주소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전체 서적 중 번역 도서는 약 20%의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약 3%에 불과한 미국의 번역 도서 비율보다 확연히 높다. 외국 도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한국어의 높임말과 다양한 조사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까다로울 수 있다. 이에 윤 번역가는 ‘영-한 번역’을 예시로 들며 “영어에는 드러나지 않는 인물 간의 권력 관계나 누가 연장자인지 등을 번역가가 짐작해야 하고 조사의 선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책 번역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번역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과거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물이 원문의 단어나 문장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어떤 부분이 누락됐는지 등 번역의 형식적인 측면을 중점으로 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번역을 설명할 때 원문과 번역문만을 비교하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며 “번역이 텍스트를 넘어 문화와 같이 더 큰 장에서 분석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윤리를 고려하는 번역
오늘날 기계 번역이 등장하며 더욱더 다채로운 번역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번역가는 기계 번역의 결과물을 참고하며 효율적인 번역을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팬 번역과 같이 기계 번역의 발달과 더불어 우수한 수준의 번역물을 내놓는 비전문가들도 생겨났다. 다양한 번역의 주체가 생겨난 만큼 번역에서 윤리적 측면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번역에 대한 논의는 텍스트에서 맥락으로, 맥락에서 문화로 계속 확장돼왔다. 이러한 논의가 결국은 번역을 하는 주체인 번역가의 윤리적 판단을 빼놓고는 번역을 설명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다. 번역가는 정보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자신의 사익을 배제하고 내용을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윤리를 지켜야 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윤리는 텍스트나 문화적 차원에서 논할 수 없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이라며 “번역을 할 때 텍스트를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넘어 번역 내용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며 번역의 과정에서 가져야 할 태도를 전했다.

*이두=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
*팬 번역=k팝,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팬들이 팬덤 내에서의 공유를 위해 자발적으로 수행한 번역 활동.
 

『레미제라블』의 한글 번역판인 『너 참 불상타』의 표지.ⓒ뉴스1코리아 캡처.
『레미제라블』의 한글 번역판인 『너 참 불상타』의 표지.
ⓒ뉴스1코리아 캡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표지.ⓒ창비 캡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표지.
ⓒ창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