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법의학자, 인간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어내다
서중석 법의학자, 인간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어내다
  • 김혜린 기자
  • 승인 2020.11.30 16:37
  • 호수 16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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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서중석 법의학자 

사건·사고의 명확한 원인 규명 위해선 우리나라 검시 제도 개선돼야
훗날 법의학자 되고픈 후배들 위해 교육에 힘쓰고 싶어

“우린 99%가 아니라 남은 1%를 밝혀야 하는 사람 아닌가?” 드라마 ‘싸인’에서 배우 박신양이 연기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법의관 윤지훈은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밝혀낸다. 이처럼 법의학자는 범죄나 사건·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사인을 규명한다. 서중석 법의학자는 드라마 ‘싸인’의 주인공인 윤지훈의 실제 모델이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을 맡은 바 있다. 현재도 활발히 법의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나 법의학 이야기를 들어봤다.

법의관이 된 계기가 있나.
특별히 원하는 직업은 없었지만 기초 학문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의과대학에 진학한 것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 위함은 아니었고 기초 의학에 대해 연구한 뒤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다녔어요. 당시 의과대학 졸업생은 대부분 대학병원에서 일하거나 병원을 개업했기 때문에 기초 의학 관련 일은 자신이 지원하면 쉽게 할 수 있었죠.

처음에는 법의관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원래는 의과대학 졸업 후에 질병의 이론적 측면을 배우는 학문인 병리학을 공부해 관련 교수가 되고 싶었죠. 그러다 우연히 지방 소재 의과대학에 교수로 발령됐는데 국과수에서 법의학 전문의를 구한다는 공고가 났어요. 그 소식을 듣고 법의학이 병리학의 일부니까 법의학을 공부한 뒤 병리학을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국과수에서 일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2~3년 정도만 국과수에 있을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국과수 원장까지 하게 됐어요.

법의관은 어떤 직업인가. 
우선 의과대학 졸업 후 병리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해야 부검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이 생겨요. 의과대학을 6~8년 다닌 후에도 인턴 1년과 레지던트 4년을 거쳐야 해요. 또한 법의관은 의학적 지식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조서도 작성하기에 추가적인 교육이 필요해요. 국과수에 들어가서도 1~2년 동안 법의관 업무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하죠. 

법의관과 같은 실무 법의학자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요. 일단 시체를 *검안하고 필요에 따라 부검을 하는 일인 검시 업무가 우리나라 법의학자 업무의 약 95%를 차지한다고 봐요. 그리고 법의관은 개인 식별을 해요. 대형 재난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 때 사망자가 누군지 식별하는 업무죠. 마지막으로 임상 법의학 관련 업무인 상해진단서 작성이 있어요. 어떤 사건·사고로 상해를 입으면 그에 대한 진단서를 쓰죠.


검시 업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자살이나 사고사처럼 병원이 아닌 곳에서의 죽음이 발생하면 검시를 진행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죽음이 한 해 10~15만 건이 발생해요. 경찰과 검찰 등의 수사기관이 사건·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과수에 의뢰하면 검시를 통해 과학적 사실을 알아내요. 처음에 시체가 발견된 현장을 경찰이 조사하고 사건·사고의 경위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으면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국과수에 시체 검안을 의뢰할 수 있어요. 간혹 수사기관과 국과수 간에 의견 차이가 있지만 국과수에서 밝혀낸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수사기관은 현장 상황으로 판단하지만 국과수에서는 시신과 증거물 같은 법의학적 상황까지 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법의관의 수가 부족한데 이유가 무엇인가.
공무원 전체 직군 중 유일하게 지원 미달인 직군이 법의관이에요. 60여 명이 채 되지 않아요. 법의관은 돈이 아닌 국민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일해요. 그런데 이런 분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우리나라에는 부족해요. 예를 들어 몽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시체를 보관하는 공시소에 모여요. 그곳에서 법의관이 시체를 검안한 후 부검을 진행하면 부검실, 그렇지 않으면 영안실로 보내 장례 절차를 밟아요. 이런 시스템을 국가에서 다 관리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달라요. 형사소송법 제222조에 따르면 검시는 시체가 발견된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할 수 있어요. 법의관은 부검실에 시체가 도착해야 시체를 처음 볼 수 있는 거죠. 몽골처럼 우리나라에도 시체를 공시소로 보내는 시스템이 있다면 법의학 전문가들이 정확하게 사인을 규명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많은 증거물이 없어진 채 시체가 국과수에 도착해요. 그리고 법의관은 특수직이지만 공무원이라서 60세가 넘으면 퇴직해야 해요. 공무원이라는 제도적인 틀에 갇혀서 국과수의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죠. 초반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재미를 느끼며 일하지만 제도가 미비한 부분들 때문에 법의관으로 일하는 것에 점점 한계를 느끼게 돼요. 법의관도 사건·사고의 현장에 갈 수 있도록 법의관의 재량을 더 인정해줘야 해요. 법의학자를 꿈꾼다면 다시 한번 고민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이런 부족한 제도와 헤쳐 나가기 힘든 환경에서 제가 선배로서 해놓은 것이 없어서 강력하게 추천을 할 수가 없어요. 정말 고생할 각오가 돼 있는지 수없이 확인해야 해요.


사건·사고 현장에 가보는 것이 중요한가.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건·사고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현장을 많이 반영해요. 검시법에 따르면 의료 기관에 속한 의사만이 현장에 가서 검안할 수 있어 국과수 소속인 법의관이 직접 현장에 가는 것에 한계가 있어요. 제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대전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중부분소의 초대 소장을 맡았을 때 우리나라 법의관 중 최초로 사건·사고 현장을 여러 절차를 거쳐 직접 찾아갈 수 있었어요. 소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현장에 직접 가보자는 마음으로 거의 매일 24시간 대전 인근 지역을 찾아가며 사건·사고의 시체를 검안하고 필요에 따라 부검했어요. 옛날에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국과수에 시체를 가져올 수 있었는데, 이런 방식보다 직접 현장에 가는 것이 효율적이죠. 

천안에 있는 한 초등학교의 축구부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해 아이들이 많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대전에서 천안까지 직접 방문해 현장의 영안실에서 시신들의 사인을 밝히고 개인 식별을 해서 아이들의 장례를 빨리 치를 수 있었어요. 대전에 있을 때 그런 식으로 굉장히 많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그중에서 몇 가지 사건을 모티브로 드라마 ‘싸인’이 탄생했어요. 극 중 배우 박신양 씨가 맡은 윤지훈 역이 바로 저예요.


우리나라에 발생한 유명한 사건·사고를 많이 맡았는데 어땠는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부검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검을 많이 해봤어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사건은 다 제 손을 거쳐 갔어요. 부검이 무섭진 않지만 돌아가신 분이 하고 싶은 마지막 이야기를 제가 다 못 들을까 봐 두려웠어요.

1997년에 박초롱초롱빛나리라는 여자아이가 살해됐어요. 그 당시 저는 국과수에서 당직을 서고 있었어요. 당직 후에 국과수 앞에 있는 사우나에서 씻고 퇴근을 하는데 그 사건이 터졌어요.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는 유명한 사건·사고는 언론과 정치권이 주목하기 때문에 다들 맡기를 꺼려요. 마침 제가 말끔한 상태였기에 당시 소장이 저보고 부검을 시켰어요. 그때부터 이상하게 중요 사건들을 맡게 됐어요. 그리고 고참이 되면서부터는 책임감을 느껴 더욱 우리나라 중요 사건을 맡게 된 것 같아요. 

대형 재난으로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세월호 침몰 사고 등을 맡아봤어요. 그런 대형 재난의 유가족분들은 처음에 저를 비롯한 국과수 관계자들에게 화를 내세요. 그런 상황에서 슬픔과 분노는 당연하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유가족들이 격한 감정을 표출해도 그분들에게 공감하라고 해요. 그래야 저희도 사건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어요. 저희가 희생자를 식별하고 사인을 밝히면 유가족들은 마지막에는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전하세요. 이런 사건·사고 말고도 노무현 전 대통령 검안과 여러 유명 연예인들의 부검에도 참여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유병언을 부검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실 유병언을 부검하는 것은 간단했어요. 큰 관심을 받은 만큼 많은 전문가가 참여했으니까요.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시체가 유병언의 것임이 밝혀졌음에도 부검 결과가 거짓이라는 언론의 뭇매를 맞았어요. 예를 들어 언론에선 유병언의 실제 신장은 161㎝인데 시체는 157㎝였던 점을 문제 삼았어요. CT를 찍어보니 목뼈 3개가 없어져 신장이 줄어든 것이었죠. 또한 한 치과의사는 유병언이 생전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시체의 치아가 착색된 점을 근거로 부검 결과가 거짓이라고 언론과 인터뷰했어요. 하지만 시체가 부패하면 흑갈색의 부패 체액이 분비돼 치아가 갈색으로 변해요. 이런 법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언론에 이야기한 것이죠. 물론 법의학에도 한계가 있어요. 유병언의 시체가 발견됐을 당시 부분 백골이 진행됐기에 장기가 다 훼손돼 있었어요. 국과수에서는 각종 약물 검사와 CT 촬영 등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어요. 장기가 없으니 사인을 밝힐 수 없었죠. 

당시 수사기관에 불신이 쌓여있을 때라 아무리 정확한 법의학적 사실을 말해도 언론의 확대 재생산 때문에 국민은 믿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법의학자는 국민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어요. 그때 거짓 정보를 제공한 전문가들을 모아 ‘이제는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어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법의관을 은퇴하고 무슨 일을 하나.
은퇴 후 대전보건대에서 총장을 맡았을 때 6학점 정도의 강의를 가르쳤어요. 실제 응급구조학과 등 법의학이 필요한 과를 위해 역동적인 강의를 준비했어요. 과학수사과에서 고급수사학이란 강의를 만들어 수사기관과 국과수 관계자가 돌아가며 가르쳤죠.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이론과 실제를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죠.

현재는 우리 학교에서 ‘법의학으로보는사회의이해’를 가르치고 있어요. 물리학과 홍승우 교수님의 도움으로 수업을 개설할 수 있었어요. 처음으로 전공 학생이 아닌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법의학 수업을 하는 거예요. 최근에는 논란이 됐던 독감 주사의 오해와 진실을 법의학적 사실로 다뤘어요. 법의학이라는 순수 학문이 정치적 이념의 갈등 사이에 끼여 과학적 사실이 왜곡되는 점이 안타까워요. 왜곡된 뉴스에 속지 않도록 법의학 지식을 기반으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법을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우면 좋겠어요. 

그리고 SJS 법의학연구소에서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국과수에서 해결이 안 된 사건·사고를 가져오거나 민간인이 의료 사건을 저에게 의뢰하면 자문하는 일을 해요. 그리고 국가 원조 자금으로 해외의 국과수 관련 사업을 지원해요. 몽골의 국과수를 분석하고 조사해 부검실을 지어주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유학생을 교육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지.
더 현장 중심적인 강의를 하고 싶어요. 지금은 법의학에 대해 관련 전공생이 아닌 교양 강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조금 아쉬워요. 더 전문적인 강의로 법의학 교육에 심혈을 가해 훌륭한 법의학자가 되고자 하는 분들에게 제가 쌓은 경험과 지식을 전수해주고 싶어요. 또 시간이 된다면 법의학자를 은퇴하기 전에 아직도 안타까움이 남는 사건을 다시 검토해보고 싶어요. 
 

*검안=변사한 시신을 검사하는 일
 

서중석 법의학자.사진 | 김혜린 기자 hr000408@
서중석 법의학자.
사진 | 김혜린 기자 hr000408@
부검은 여러 명의 법의학 전문가들이 함께 진행한다.
부검은 여러 명의 법의학 전문가들이 함께 진행한다.
ⓒ서중석 법의학자 제공

 

드라마 '싸인' 속 부검 장면.ⓒ드라마 '사인' 캡처
드라마 '싸인' 속 부검 장면.
ⓒ드라마 '사인' 캡처

 

사고의 현장에 직접 찾아간 서중석 법의학자.ⓒ서중석 법의학자 제공
사고의 현장에 직접 찾아간 서중석 법의학자.
ⓒ서중석 법의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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