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주성 기자 (pjs970726@skkuw.com)

“그냥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성대신문에 지원했다고 들었다. 성대신문사에서 활동하며 어떻게 도움 됐는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수습기자가 나를 인터뷰 할 때, 첫 질문이었다. 맞다, 나 그냥 지원했었지. 바쁜 생활로 처음 지원했던 이유를 잊고 있었다. 우연치 않게, 이번 학기 마지막 호의 취재 후기를 작성하며 지난 성대신문사의 생활을 돌이켜보기로 했다. 

사진부 기자가 되어 했던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모아뒀던 신문들을 하나씩 펼치며 ‘박주성’ 세 글자를 찾아본다. 항상 내 이름의 위치는 멋들어진 기사를 작성한 동료 기자 아래, ‘사진|박주성 기자’다. 올해 준정기자와 정기자로 활동하면서 내 생활의 1순위는 신문사였다. 취재 동행을 위해 강의를 계획보다 먼저 듣고, 과제도 먼저 해결해 놓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미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사에서 내가 만들어낸 기사와 사진들은 동료 기자들의 결과물보다 미진한 것 같다. 다른 기자보다 아래 위치한 내 이름이 아주 작게 보였다. 

지난 1671호 시각면을 취재하기 위해 홀로 정선으로 향했다. 인터뷰를 위해 왕복 8시간을 운전했고, 1시간을 예상했던 인터뷰는 1시간 30분이 넘게 이어졌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길어졌고, 해가 지기 전에 다음 장소에서 사진까지 찍어야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마음은 점점 급해지고, 차에 올라타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사북 탄광문화관광촌에 도착해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촬영이 마무리될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위한 기계적인 사진을 찍는 건가?’ 사진 찍는 게 좋아서 사진기자로 지원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다시 현장을 돌았다. 이제는 기사가 아닌 ‘사진’ 그 자체를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진 1671호 시각면에서 내 이름은 아주 크게 보였다. 

이번 1672호 제53회 성대문학상 공모전 기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여름방학 동안 과거 성대신문사 신문을 모두 뒤졌다. ‘현상 원고’라는 단어를 찾기 위해. 아니, ‘懸賞 原稿’가 맞다. 며칠간 도서관에서 매캐한 먼지로 둘러싸인 옛날 신문을 펼쳐보며 고생한 결과는 고작 500자에 불과했다. 기사를 작성하며 그 부분의 분량을 늘리려 안간힘을 썼다. 나의 노력을 알아줬으면 해서. 하지만 500자에서 더 늘리지 못했다. 내 이름보다 위에 위치한 동료 기자들은 몇 글자 안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이런 경험도 마무리돼 간다. ‘사진부 기자’ 박주성이 아닌 ‘전자전기공학부’ 박주성으로 돌아간다. 나에게 신문사란 그냥 시작한 오르막길이었다. 과연 얼마나 올라갔을까?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최선을 다했을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잘 한 선택일까? 마지막을 앞두고 나 스스로를 향한 수많은 질문들이 뇌리에 스친다. 뭐 그냥, 그렇다고.

 

박주성 기자pjs970726@skkuw.com
박주성 기자
pjs970726@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