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다겸 기자 (dgflying05@skkuw.com)

과연 나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어느 선까지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말과 행동이 자유라는 미명 하에 허용될 때도 있지만 때론 처벌의 대상이 되고 명예훼손이 된다. 자유를 정의하고 자유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행동 제약이 많아진 요즘, 자유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간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마스크가 자유를 억압한다며 거리에 나오기까지 했다.

자유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전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다. 밀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간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개별성에 따른 다양성을 사회 발전의 토대로 볼 정도로 개인에 대한 절대적 자유를 주장했다.


‘자유’라는 단어는 모든 것이 허용될 것 같은 신비한 단어다. “이건 내 자유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할 말을 잃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영화 속 악당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나에게도 자유가 있지만 상대방에게도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주위를 보면 사람들은 쉽게 그 사실을 잊고 자신의 자유만 생각해 쉽게 말을 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밀도 사실은 자유에 조건을 달았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즉, 나의 행동이 타인과 무관하고 오롯이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칠 때, 그때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자유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면 그땐 국가가 개입해 간섭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밀은 말했다. 


SNS가 발달하며 나의 생각과 말을 표현하는 데 더욱 수월해진 요즘,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혐오 표현, 가짜뉴스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하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이것에 대한 제한이 사회가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며 통제하면 안 된다고 한다. 특히나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은 언론 통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들의 목소리가 표현의 자유로 존중돼야지 자유롭고 건전한 언론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주장에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생각했을 때 과연 이것이 밀이 말한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인지는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한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기고 사람들을 선동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들의 행동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런 표현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존중받아야 할 자유가 똑같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익명이라는 힘을 빌려 사람들은 모니터 뒤에서 쉽게 말을 내뱉는다. 삽시간에 댓글 창은 서로를 향한 비방으로 가득 차게 되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 한편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내 자유가 보장받길 원한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줘야 한다. 그게 공정하지 않은가? 자유에도 책임이 따른다. 내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했을 때에는 마땅한 대가를 당연히 치러야 한다. 어찌 보면 미래의 나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도 자유에 대해 우린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유다겸 차장dgflying05@skkuw.com
유다겸 차장
dgflying05@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