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준혁 기자 (btino516@skkuw.com)

좀비는 늘 현실사회의 공포를 상징해 질문을 던지는 존재

진정한 K-좀비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현실 더욱 적극 반영해야

'좀비'는 부두교 주술사들이 죽은 자를 노예로 만든다는 아프리카 민담으로부터 시작됐다. 식민지 시대 흑인 노예들을 통해 부두교는 세계 곳곳에 퍼졌다. 아이티에서 부두교 사제가 복어 독을 이용해 흑인 노예들을 좀비로 만든 실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좀비는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후 좀비는 시대별로 다양한 변화를 거쳐 스크린에 등장했으며 공포뿐만 아니라 현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공포물의 주인공, 좀비 
좀비는 미디어에서 잔혹한 시체의 모습을 하고 인간을 위협적으로 공격하는 두려운 존재로 묘사된다. 가족 혹은 친구가 한순간에 좀비가 돼 달려드는 장면은 좀비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공포를 느끼는 상황을 ‘언캐니’라는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언캐니는 ‘낯익은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무의식 속 은폐된 감정이 드러날 때 느끼는 불쾌함이다. 우리 학교 트랜스미디어 연구소(연구소장 변혁)의 김민오 연구원은 “과거에 느꼈던 공포의 감정을 연상케 하는 사건을 통해 무의식 속 감정이 발현될 때 익숙하고도 낯선 공포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추가적으로 “좀비물은 친숙한 인물을 본질이 변해버린 낯선 존재로 변형해 사람들에게 언캐니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좀비물은 주로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져 인간의 문명이 무너지는 서사를 따른다. 김 연구원은 “현실을 극대화해 대중의 집단 무의식 속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점이 좀비 서사가 인기를 끄는 이유”라고 말했다.

시대를 관통한 좀비  
좀비는 시대에 따라 외형이 달라지고 행동방식도 변화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최초의 좀비 영화는 1932년 개봉한 <화이트 좀비>였다. 당시 작품 속 좀비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보다는 부두교 주술사들에 의해 조종당하는 노예에 가까웠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을 물어뜯고 전염시키는 좀비의 특성은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좀비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로메로 감독은 좀비 영화를 통해 사회를 고찰하는 질문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개봉할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전쟁에 대한 찬반 의견이 극렬히 대립하는 상황에서, 영화 속 흑인 주인공이 백인 자경단의 총에 맞아 죽는 결말은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 좀비학의 저자 김형식 작가는 이 영화에 대해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전쟁으로 피폐해진 당시의 광기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쓰촨성 대지진 등 전대미문의 대규모 재앙이 덮쳤다. 시대의 공포가 극대화됨에 따라 2002년에 개봉한 <28일 후>의 좀비는 공격성이 강화된 모습을 보인다. 좀비는 느린 속도로 걷는다는 선입견을 깨고 빠르게 달리는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또한 김 작가는 “<28일 후> 속 카메라의 줌아웃을 통해 텅 빈 도심을 보여주며 전쟁과 테러를 오마주한다”며 시대의 공포를 자극한 좀비 영화의 특성을 강조했다.     

좀비, 인간에 더 다가서다 
오늘날 좀비물은 단순히 좀비를 기괴한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설정과 새로운 서사를 시도하고 있다. 김 작가는 “현대 좀비물의 가장 큰 특징은 ‘좀비의 인간성’에 주목하는 연출이 사용된다는 것이다”며 “이를 ‘포스트 좀비’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웜 바디스>의 주인공은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좀비다.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랑의 감정을 통해 인간이 되는 결말을 맺는다. 이는 인간과 좀비가 공존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이전의 좀비물은 소수의 생존자가 좀비를 피해 탈출하는 연출이 대부분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관객이 좀비에 이입할 수 있는 구조의 작품이 많아졌다. 김 작가는 “무한경쟁 사회 속 지친 현대인들은 성공한 1%보다 그렇지 않은 99%에 이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흐름에서 좀비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 전환은 월가 시위를 통해 잘 드러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막대한 부를 챙긴 월가의 금융계에 분노한 미국 국민들은 ‘우리가 99%다’라는 팻말을 꺼내 들고 좀비 분장을 하며 스스로 좀비가 되길 자처했다. 김 작가는 “대중이 좀비에 이입하기 시작하면서 좀비물의 서사는 확장되고 다룰 수 있는 소재가 넓어졌다”고 밝혔다. 이후 <더 큐어드>와 <인 더 플레쉬>와 같이 좀비 치료제가 생긴 후 좀비였던 자들이 인간 사회로 돌아가는 독특한 서사의 작품이 등장했다. 작품 속 좀비는 인간사회에서 외면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의 본성에 질문을 던지고 현 사회의 혐오를 고발하는 등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반도를 휩쓴 좀비 
한국에서도 좀비를 다룬 작품은 꾸준히 있었다. 1981년 개봉한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 <괴시>를 포함해 각종 미디어나 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좀비가 등장했다. 그러나 과거의 좀비는 주로 마니아 층을 타깃으로 하는 하위문화의 영역으로 다뤄졌다. 그러다 2016년 <부산행>이 큰 성공을 거두며 좀비물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부산행>은 KTX라는 공간에서 좀비와 인간의 긴장감을 실감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도였다. 김 작가는 “칸 별로 나뉘어있는 열차의 특성을 통해 인간과 좀비는 서로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며 <부산행>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굶주린 백성과 권력에 굶주린 사대부들의 모습을 대비하며 사회의 계급 문제를 지적했다. 김 연구가는 “굶주림이란 속성을 좀비와 접합시킨 점이 독특하다”며 “역병이 퍼진 시점에 조정은 문을 걸어 잠그고 연회를 즐기는 장면을 보여주며 조정에 외면받은 하층민의 한과 설움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좀비가 나아가야 할 방향
김 작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변형을 거쳐온 좀비물은 미래에도 인기를 끌 것”이라며 좀비물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추가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에 일종의 바이러스 서사를 가지고 있는 좀비물은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김 연구원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매개체로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며 한국 좀비물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스틸컷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스틸컷
ⓒ 영화 〈28일 후〉 스틸컷
ⓒ영화 〈28일 후〉 스틸컷
ⓒ영화 〈웜 바디스〉스틸컷
ⓒ영화 〈웜 바디스〉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