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희곡과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면서 무대와 영상을 만드는 이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작이기도 하다. 이번 성대문학상에 이러한 희곡과 시나리오가 다수 응모하여 두 심사위원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상작을 한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작품들을 읽었다. 어떤 신념이나 메시지를 성급하게 전달하기보다 세상에 질문을 던져 사유를 촉발하고 나아가 무대와 영상을 다양하게 그리게 하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 가운데 <코뿔소>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동우의 그리움을 통해 느리고 둔하다는 코뿔소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어머니와 승아의 예쁜 손톱이 코뿔소 뿔과 겹칠 때 세상을 보는 관객의 시각이 바뀐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몽타주해서 기존의 관념을 넘어설 때 미래가 열리는 점을 보여줬다. 뛰어난 시각적 상상력을 담은 작품이면서도 현실의 암담함을 표현하기 위해 거친 욕설들을 자주 사용한 점은 다소 아쉬웠다.

<개를 문 남자 이야기>는 무대를 이룰 구체적인 행동이 가득 찬 희곡이다. 덩치가 부쩍 커버린 애완견 포비는 남자의 환각이면서 동시에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런 세상에 물리면서 남자가 서 있던 거리가 병실로 자연스럽게 변하여 그의 환각이 실제가 되어 간다. 남자는 제 팔을 물고 나서야 환각에서 벗어난다. 남자의 캐릭터를 더 구체적으로 그렸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주는 희곡이지만 환각과 실제를 행동으로 끌어내고 있다. 이 두 작품을 가작으로 선정한다.

인생을 연기를 하듯 살 수 있을까. 진짜 연기는 가짜일까 진짜일까. 세상은 각본에 따라 해결책을 내놓는 극장이 아니다. 우수작 <메소드>는 우리의 세상이 살아내야 할 현실인 것을 연기 훈련법을 뜻하는 메소드로 아이러니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설펐던 배우 지망생 지호는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나일롱환자다. 나일롱환자들이 머무는 병실은 꾸밈이 꾸밈을 낳고 거짓이 거짓을 부르는 세태를 닮았다. 그러다가 지호가 거리에서 진짜로 자동차에 치여 절뚝거리는 모습 위로 그가 마침내 진짜 연기를 했을 때의 영상이 겹친다. 가짜와 진짜가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배우에게는 연기도 진짜여야 했다. 그렇다면 인생은.

<세희 스피어>에서 작가 세희가 쓸쓸히 바라보는 텅 빈 노트북 화면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난감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희가 구입한 인공지능 작가는 재밌는 작품을 써준다. 전화 너머의 편집장을 환호하게 만드는 재밌는 작품. 그렇지만 어디 우리의 삶이 늘 재밌기만 할까. 현실은 그저 흥밋거리나 오락물이 아니다. 인공지능의 전원을 끈 세희가 이제 진짜 작품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인공지능에는 없는 영혼이 담긴 글을 쓸 수 있기를.

최우수작으로 뽑은 <세희 스피어>와 함께 응모한 시나리오 <노태명>과 <불청객>도 수작이었다. 이름을 얻지 못하고 낙태되어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생명체 아닌 생명의 이름 ‘노태명’이 던지는 문제의식도 컸고, 쓰레기가 지상의 불청객인지 묻는 상상력도 돋보였다. 

이번 성대문학상 희곡과 시나리오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은 신선한 시선을 지닌 작가들의 탄생을 기대하게 해줬다.

오종우(러시아어문학과)·변혁(영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