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개를 문 남자 이야기

 

남자 (20)

환자 (50, 중년 남자)

행인

의사

간호사

 

무대

좁고 하얀 정사각형의 무대.

무대는 길거리, 병실, 진료실로 변한다.

 

 

<1. 남자, 행인, 소방관>

비틀거리며 무대 위를 활보하고 있는 남자. 술에 취한 건지, 두려움에 취한 건지 알 수 없는 움직임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한 행인이 그런 남자를 붙잡아 세운다.

 

행인 저기요, 괜찮으세요?

남자 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 자꾸 개.. .. 개가 저를..

행인? 개요?

남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개가 자꾸 저를 쫓아와요!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주며) 여기 저기 계속 물렸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행인 (보여준 팔을 살펴 보지만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남자 (행인을 붙잡고) 일단, 일단 저 좀.. 저 좀 살려주세요. 병원이든 어디든 데려다 주세요!

 

행인은 남자를 안전한 곳으로 부축한다.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건다.

 

행인 여보세요? , 여기 그.. 어떤 남성분께서.. (망설이다가) 개에.. 물리셨다고 해서요..

남자 (휴대폰을 낚아채며) 개가 자꾸 저를 쫓아 와요, 아주 큰 개였어요! 벌써 여러 번 물렸다고요!!

소방관 어떤 개였는지 혹시 기억 나세요?

남자 개요, ! 큰 개! 개라니까요!

소방관, 알겠습니다. 일단 진정하고요, 혹시 보호자분 바꿔주실 수 있으세요?

행인. 제가 그 보호자는 아닌데, 이 분을 길에서 마주쳤는데.. 개한테 물렸다고 자꾸 그러셔서.

소방관 상처 부위가 어디 쪽인가요?

행인 제 눈에는 상처가 보이진 않거든요. 근데 계속 물리셨다고

소방관 상처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행인 그런 것 같아요.

소방관 환자분 상태가 어떠세요?

행인 많이 놀라신 것 같긴 한데, 제가 보기엔 개한테 물린 것 같진 않아요.

 

남자는 빠르게 전화를 낚아 챈다.

 

남자 개라고요, .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이해할 겁니까? 개한테 물렸다고요!

소방관, 환자분. 근처 가까운 병원 가셔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자 개한테 물린 환자는 환자도 아니라는 거야? 구급차를 데려오던가 하라고!!!

행인 진짜. 왜 그러세요? (핸드폰을 다시 빼앗은 뒤) 죄송합니다. 제가 잘 보낼게요. , 고생하세요.

 

삐삐삐-. 전화가 끊긴다.

 

행인 아저씨, 가까운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남자 구급차 온대?

행인 아뇨, 그 구급차가 그렇게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남자 다시 전화해.

행인 그게 아니라 지금 상처가 그렇게 큰 게 아니라서 그냥 근처 병원에 직접 가시는 게

남자 이런, 씨발!

행인 (당황하고 어이없어) 아니,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미쳤어요?

남자 (울먹이며) 개가 쫓아 온다고요.. 너무 큰 개였어요.. 무섭다고요..

행인 (남자를 밀치며) 그러니까 병원에 가시라고요, 병원에! 이렇게 여러 사람 괴롭히지 마시고요. (무대 밖으로 나가면서) 재수없게. 미치려면 집에서 곱게 미칠 것이지.

남자 집에 있을 수가 없다고!!!

 

혼자 남게 된 남자.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남자 (움츠러든 자세,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제가 개에 물렸어요.. 개가.. 개가 너무 컸어요. 제가 개에 물렸습니다. 개가 너무 무서워요. 자꾸 저를 쫓아와요. 집에 들어갈 수 없어요. 개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2. 남자, 환자, 간호사>

남자가 눈을 뜨고 옆에는 중년쯤 되어 보이는 다른 환자가 누워 있다. 간호사가 등장한다.

 

간호사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남자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핀다.)

간호사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남자 병원..인가요..?

간호사, 맞아요. 길거리에서 쓰러지신 채 발견되셨어요. 혹시 기억 나세요?

남자 아뇨. 저 근데

간호사 하루 이틀 안정 취하셔야 하고요, 조금 이따가 의사선생님 뵐 겁니다. 일단 쉬고 계세요.

남자 (나가려는 간호사를 붙잡으며) 저기 여기.. 개는.. 못 들어오죠?

간호사. 애완동물은 출입 금지입니다.

남자 감사합니다.

 

나가는 간호사. 남자는 주변을 살핀다. 어디에도 개는 보이지 않는다. 옆에 누워있던 환자가 말을 건다.

 

환자 개 키우나 봐?

남자, 아뇨.

환자 그런데 왜 물어 봤어?

남자 제가 개를 무서워하거든요. (망설이다가) 자꾸 물려서

환자 개에 물려? 어딜? 한 번 보여줘 봐요.

남자 (팔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깨끗하다) 여기요. 피가 철철 났어요.

환자 아이고, 심하게 물렸네.. 많이 놀랐겠구만.

남자.

환자 원래 개를 무서워했나?

남자 (옛 기억이 떠오르는 듯, 망설인다.)

환자 이야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내가 괜한 걸 물어 봤나 보다. 허허.

남자 사실.. 원래는 개를 안 무서워했어요.. 집에서 키울 정도로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이 개가 크면서부터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몸집이 커지는 것도 커지는 건데, 개의 눈이 너무 무서웠어요. 언제라도 저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거든요. 하루는 제가 집에 늦게 들어왔는데, 창틀에 올라가 밖을 보면서 계속 짖고 있었어요. 저는 개를 불렀죠. ‘내려 와, 내려 와 포비. 거기서 떨어지면 다쳐.’ 그러자마자 창틀에서 뛰어 내려 저를 공격했어요. 속수무책으로 당했죠. 그 일이 있고, 아무래도 내가 키우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서 보호소에 맡겼어요. 한 일주일쯤 지났나전 어딜 다닐 때나, 집에서 잘 때면 자꾸 누군가 저를 따라오고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엔 그냥 기분탓이겠지 하고 넘겼는데 그 뒤로는 무언가 지나가는 움직임까지 느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움직임은 점점 선명해졌고.. 마침내 저는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그건 개였어요, 우리 포비.

환자 보호소를 탈출한 건가?

남자 모르겠어요. 그 이후로 포비가 계속 저를 쫓아 다녔어요. 몸은 항상 긴장해 있고,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을 때에도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밤새 울어 댔어요. 더이상 쫓기기 싫어 이사를 갔는데, 첫날 밤 포비를 또 만났어요..

환자 저런.

남자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에 서린 눈이지만, 덜하다.)

환자 나도 개에 물린 적이 있어. 그쪽처럼.

남자 저처럼요..?

환자 나도 키우던 개한테 물렸었지. 애지중지 오래 키웠는데끝까지 함께 하진 못했어. 내가 너무 못났었거든. 나 하나 챙기기도 바쁘고,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까 주변은 보이지 않더라고. 물린 지 2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가끔 생각 나.

남자 후회 하시는군요.

환자 후회라면 후회고, 사랑이라면 사랑이고.

남자 그래서 그 개는 어떻게 됐는데요?

환자 잘 사는 다른 집으로 보내줬지.

남자 보내주면 편해요?

환자 글쎄. 난 그 이후로 한 번도 보질 못해서.

남자 저도 보내줬는데, 왜 자꾸 보이는 걸까요?

환자 어쩌면 자네가 포비를 부르고 있는 거일 수도 있지.

남자 절대 아니에요. 전 그만 만나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오죽하면 병원에 와서 개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했어요. 개가 올 수 있는 곳이라면 포비를 또 만날 거고 그렇다면 여기도 안전하지는 않으니까요. 전 포비가 무서워요. 아저씨는 안 무서워요?

환자 이제 그만 자야겠다.

남자 아저씨는 안 무섭냐고요.

환자 안 무서워. 보고 싶어, 오히려.

남자 사랑하셨나 보네요.

환자

 

환자는 잠에 들기 시작한다.

 

 

<3. 남자, 의사>

무대 위에 의자 두개가 놓여있다. 의사가 서류철을 들고 들어온다.

 

의사 몸은 좀 괜찮으세요?

남자 아직도 좀 아파요.

의사 아유 참. 개에 물리는 사람이 뭐, 한 둘인가요? 젊은 사람이 엄살은.

남자 엄청 큰 개였어요. (팔을 보여주며)

의사 이젠 상처가 잘 보이지도 않아요. 애초에 물린 적이 없었나 착각할 정도로 깨끗하셔요.

남자 우리 포비가 모르는 새에 너무 컸더라고요. 전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포비는 저를 물었고, 저는 미친듯이 도망치고

의사 (의무감에 상담을 이어나간다. 무뚝뚝하고 관심없는 투로) 다시 보고 싶어요?

남자?

의사 포비를 다시 만나고 싶냐고요. 다시 같이 살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남자 싫어요. 이젠 포비가 무섭기만 한 걸요.

의사 왜 그렇게 무섭죠?

남자 변했거든요. 몸집은 엄청 커졌고, 이젠 저를 막 문다니까요. 개한테 물리는 기분 아세요?

의사 포비를 본 게 확실한 거죠?

남자. 포비였어요.

의사 정확히 포비가 뭘 했는지, 생김새가 어땠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남자 크기는 거의 제 방의 벽 한 면을 뒤덮을 수 있는 정도였어요. 아주 까맣고, 눈동자도 검은색인데, 살기가 느껴져요. 하루 종일 이를 갈고요.

의사 포비가 원래 그렇게 컸나요?

남자 원래는 제 팔뚝만 했어요.

의사 나중에 포비를 다시 만나게 되면, 피하지 말고 용기 내서 불러 보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 맞서 보세요. 도망가지 말고.

남자? 안 돼요. 그러면 전 죽을 지도 몰라요!

의사 일단 병실에 가서 쉬고 계세요. 병원은 안전하니까 걱정 마시고, 제 말대로 한 번 해보세요.

남자 안 된다고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니까요?

의사 제가 이제 다른 환자분들을 봐드려야 해서. 오늘은 여기서 끝낼까요?

 

 

<4. 남자, 환자>

남자의 얼굴을 살피며 무대로 걸어오는 환자.

 

환자 잘 다녀왔나?

남자 아뇨..

환자, 뭐가 잘 안 풀려?

남자 불안해서요.

환자 상담이 잘 안 됐나보구나.

남자 이상해요.

환자 뭐가?

남자 의사요. 다 똑같아요.

환자 의사라고 별 수 있나.

남자 의사라면 고쳐주고, 지켜줘야죠.

환자 (웃는다.)

남자 웃을 일이 아니라니까요?

환자 말해 봐, 뭐가 문젠데?

남자 저보고 개를 만나면 말을 걸어 보래요. 도망가지 말래요. 그게 할 소립니까? 의사가 트라우마라는 것도 안 배웠나 봐요. 아님 본인은 용감하고, 원체 겁이 없나.

 

환자 (웃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남자 모르겠어요.

환자 그래서 불안한 거구나.

남자 오늘 밤에 나타나면 어떡하죠? 매일 쫓기다가 어제 하루 안 보이니까 더 불안한 것 같아요..

환자 (개가 무는 흉내를 내며) !

남자!!!

환자 그냥 자네도 같이 물어 버려.

남자 아저씨!! 아저씨마저 이러실 거예요?

환자 허허허. 농담이야, 농담. 아니 너무 우울해 보이길래 웃으라고 장난 좀 친 거지.

남자 전 재미 없어요! 저한테는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요.

 

남자는 환자를 등지고 돌아 눕는다. 이내 무대 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환자도 서서히 잠에 들고, 무대 한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온다. 불현듯 익숙한 두려움에 눈을 뜨는 남자. 온 몸을 떨기 시작한다. 병실 한 쪽 벽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점점 커져 오는 개의 그림자. 그림자는 남자를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것 같이 보인다. 남자는 자고 있는 환자를 계속 불러 보지만, 대답이 없다. 침대에서 벗어나 도망가려는데 작은 병실 안,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궁지에 몰린 남자. 쉴새 없이 짖어대는 개에 얼굴을 찌푸리고 눈을 질끈 감는다.

 

남자 제발, 제발 그만 좀 해!!!!

 

어느 순간 개 짖는 소리가 사라진다. 조용해진 병실 안. 남자의 입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다. 병실이 환해지고, 남자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남자의 팔에는 물린 자국이 서려 있다. 환자는 몸을 일으켜, 엉망이 된 남자에게 다가간다.

 

남자 아저씨.. .. 저 결국 물어 버렸어요.

환자 정신차려.. 그건 꿈이야!

남자 꿈이라고요? 아뇨, 꿈이 아니에요. 제가 포비를 물었어요.

환자 그러니까 꿈이라고, !

남자 포비를 물었어요. 생생했어요. 피 맛이 났어요.

환자 포비는 꿈이야. 자넨 자네 꿈을 문 거라고!

남자 아뇨, 전 포비를 물었어요. 이제 포비는 영원히 사라진 거예요.

.

 

서은지(연기예술 19)
서은지(연기예술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