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메소드

오해서(연기예술 18)

 

<장르>

드라마, 블랙코미디

<기획 의도>

나 자신만으로는 온전히 살아내기 힘든 세상. 우리는 살면서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숨기거나 과장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삶도 연기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이라는 연극에서 우리는 어떤 메소드를 가지고 무대 위에 서는가. 인생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겪어야 할 현실이다.

<작품 배경 설명>

교통사고가 날 경우, 가해자 측에서 피해자의 치료비용을 물어줘야 하는데 이는 보험으로 처리된다. 여기서 나이롱 환자라는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꾀병을 부려 원래 필요한 치료보다 더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다. 환자가 오래 입원하면 병원은 그만큼 진료비를 더 챙길 수 있고, 환자는 보험사에 합의금을 더 요구할 근거가 생기게 된다. 이처럼 병원과 환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 나이롱 환자들이 생겨난다.

<인물 설정>

1) 이지호 (, 20대 후반)

과거 배우를 꿈꾸던 배우 지망생이었지만, 현실에 부딪혀 지금은 꿈을 거의 내려놓은 상태. 현재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변변치 않은 취준생이다. 아직 갚아야 할 빚들이 쌓여있는 지호. 지호에겐 준비된 것도, 확실히 정해진 것도, 아무것도 없다. 지호는 알 수 없는 자신의 미래가 두렵다.

3개월 전, 신호 위반 차량에 치여 허리와 다리 부상을 입었다. 원래대로라면 2-3주 입원하고 통원치료를 해도 괜찮은 상태. 하지만 나이롱 환자로 벌어먹는 병원 측의 제안을 듣고, 지호는 보험금을 더 타내기 위해 장기간 입원하기로 마음먹는다. 양심에 찔리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입원한 지 3개월 차. 몸은 이미 나아진 지 오래지만, 아직 병원 생활 중인 지호. 낮에는 병원에서, 밤에는 돈을 벌기 위해 대리운전을 나간다. 그런데, 여전히 과거의 꿈이 두려운 그에게 자꾸 연기할 상황들이 펼쳐진다.

 

2) 송현수 (, 20대 후반)

지호의 친구. 현수는 사정이 어려운 지호에게 먼저 같이 살 것을 제안했고, 둘은 몇 년간 같이 살며 서로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지냈다. 현수는 지호의 연기를 굉장히 좋아해서, 지호가 배우로서 잘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요즘의 지호는 많이 불안정해 보인다. 현재 현수는 다른 지역에 있는 회사에 합격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놓으려 한다. 문제는 같이 살던 지호이다.

 

3) 이민우 (, 20대 초중반)

보통 나이롱 환자는 중장년층, 노년층이 확연히 많다. 그래서 20대 환자가 드문 편인데, 운 좋게 또래인 지호를 같은 병실에서 만나게 된다. 민우는 대학교에 다니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몸도 다쳤는데, 쌍방 과실로 민우도 돈을 물어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업체에서는 보상해주지 않고 책임을 민우에게 떠넘기려 한다. 결국 나이롱 환자가 되고 만 민우. 이 나라를 뜨고 싶다는 반항적인 마음으로 가득한 상태이다. 생각보다 무료한 병원 생활, 민우는 형인 지호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다.

S#1. 병실 -> 복도,

어두운 병실 안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온다. 지호가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환자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지호. 대충 매무새를 가다듬고 밖으로 나간다.

CUT TO: 병원 복도. 거동이 불편한지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걸어가던 지호, 주변을 살핀다. 복도는 밤이라 사람이 없고 고요하다. 절뚝거리던 지호가 갑자기 너무나 멀쩡하게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간다.

지호 (NA)

나는 배우다.

영화 타이틀 떠오른다. <메소드>

S#2. 길거리,

번잡스러운 도시의 한 유흥가. 눈이 아플 정도의 네온사인 간판 불빛들. 하나같이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을 데리러 온 택시나 여러 차들이 뒤엉켜있다. 지호는 잠에서 덜 깬 듯 피곤해 보인다. 지호가 손님에게 전화를 건다. 경쾌한 느낌의 휴대폰 컬러링이 흘러나온다.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둘러보던 지호, 컬러링이 끊기고 손님이 전화를 받자 표정이 달라진다.

지호

(표정 풀고 웃으며) , . 대리운전입니다.

여기 다 왔는데 혹시 어디쯤이세요?

지호가 거리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시끄러운 유흥가. 경쾌한 전화 컬러링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도시의 야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S#3. 병원 휴게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지호. 노트북을 앞에 두고 무언가 열중하고 있다. 노트북 화면에 자기소개서라고 쓰인 글씨가 보인다. ‘저는 과거 연기를 통해 단체생활에서 어떻게 화합해야 할지를 몸소 배웠습니다. 이처럼 저의 작은 추억과 경험들이 모여스크롤을 올리면, 멀끔하게 차려입은 지호가 웃고 있는 증명사진. 이어 지호의 고민하는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증명사진과는 사뭇 다른 지금의 모습. 지호가 괴로워하며 노트북 위로 엎어진다. 키보드 자판이 잘못 눌려 노트북 화면이 정체불명의 글자들로 가득 찬다.

지호 (NA)

눈에 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S#4. 병원 테라스,

민우 (같은 처지의 환자, )

눈에 띄면 안 되지. 요즘 단속 심하대.

웬만하면 밖에 오래 나가 있지 말라고 그러던데.

지호

딱히 어디 갈 데도 없어. 여기가 편해.

무료해 보이는 두 사람. 사이좋게 하나씩 목발을 끼고 벤치에 앉아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평화롭다.

민우

그럼 형은 보험금 타면 뭐 할 거야?

지호

나는.

취업 준비나 열심히 해야지.

민우

나는 그냥 받자마자 바로 한국 뜰 거야. -.

아무도 나 못 알아보는 데로.

지호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5년은 더 입원해야 할 걸?

민우

진짜. 산통 깨는데 뭐 있다니까.

. 한 번 나 진짜 같은지 잘 봐봐.

민우가 지호와 멀어지더니 잔뜩 아픈 척을 하며 걸어온다. 얼핏 봐도 엉성한 몸짓과 추임새.

지호

, 너 그러다 걸려.

지호가 벤치에서 일어나 몸을 푼다. 직접 시범을 보이는 지호. 절뚝절뚝 걸어오는 모습이 정말 몸을 다쳐 아픈 환자 같아 보인다.

민우

왜 이렇게 잘해?

환자 체질이네.

지호

(신나게 이입해서 가르친다) 이 순간만큼은 진짜 아프다고 생각을 해봐.

너한테 최면을 걸어. 최면을.

(움직이면서) . 왼쪽 다리뼈가 나갔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갈 때마다

찌릿찌릿한 뭔가가 막 타고 올라와서 죽을 것 같다

 

, 한 번 해봐.

환자인 척 연습하는, 하지만 실제로는 멀쩡한 두 사람을 멀리서 보여준다.

S#5. 자취촌,

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회색 빛깔의 자취촌. 원색의 캐리어가 울퉁불퉁한 바닥에 끌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난다. 전봇대에 지저분하게 붙어있는 원룸 임대’, ‘월세 있습니다등의 전단지들. 지호가 가던 길을 멈추고 전단지를 읽어 본다.

화면이 바뀌면,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는 지호.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높은 시멘트 계단 앞에서 멈춰 선다.

CUT TO: 지호가 한 건물 앞에 도착한다. 목발을 숨겨둘 곳을 찾다가, 문 앞 빈 곳에 세워 놓으려는 지호. 잘 세워지지 않는 탓에 몇 번이나 시도한다. 겨우 세워지는 목발. 조금 뿌듯해 보이는 지호의 얼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목발이 균형을 잃고 스르르 쓰러진다.

S#6. 지호와 현수의 집,

곧 집을 비울 것처럼 어수선한 분위기의 원룸. 짐이 담겨있는 크고 작은 상자 3개가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있다. 방의 한 가운데, 상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현수. 현수가 버릴 짐과 챙겨갈 짐을 분류하고 있다.

현수 (지호의 친구, )

왔냐.

지호

뭐야. 거의 다 정리했네?

현수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

현수와 함께 짐을 정리하는 지호. 왔다 갔다 하며 캐리어에 자신의 옷가지들, 흔적이 남은 물건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현수

미안해. 갑자기 방 뺀다고 해서.

지호

, 그런 소리 하지마.

너 아니었으면 나 갈 데도 없었어.

지호가 의자에 앉아 찬찬히 방 안을 둘러본다. 고장 났는지, 지호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나는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 짐들을 살펴보던 지호, 상자에 담긴 캠코더를 발견한다.

지호

저것도 버리는 거야?

현수

(대수롭지 않다는 듯) . 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지호가 의자에서 일어난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의자.

조심스럽게 캠코더를 손으로 들어 올리는 지호. 전원 버튼을 누른다. 카메라가 켜지고 위잉- 작동되는 소리가 난다.

S#6.5. INSERT (지호의 플래시백)

영화 화면이 아닌 캠코더 화질의 화면. 화면 속 지호는 지금보다 더 앳되어 보이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이다. 오디션에 보낼 연기 영상. 아직 연습 중인 지호를 현수가 찍어주고 있다.

현수 (V.O)

저기요. 왜 이렇게 긴장하셨죠?

지호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돼서

(비장하게) 진짜는 조금 이따 보여드리겠습니다.

현수 (V.O)

. 연습도 실전처럼 해야죠~

지호

. 네가 해봐, 네가.

흔들리는 화면. 즐거워 보이는 둘의 모습. 다시 현실. 빙그르르 돌아가던 의자는 멈춰 있다.

S#7. 분리수거장(쓰레기장),

 

이제 막 더워지기 시작한 초여름의 바깥 풍경. 지호는 고장이 난 의자를, 현수는 버릴 물건들을 담은 상자를 각자 하나씩 들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지호. 절뚝거리는 걸음걸이가 습관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살짝 절뚝이며 걸어간다. 현수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현수

너 아직도 안 좋아?

지호

(당황하며) ? 아니야. 괜찮아.

지호가 다시 멀쩡하게 걸어가고, 현수가 지호를 뒤따라간다.

CUT TO: 등받이와 다리가 분리된 의자, 이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뜯긴 소파 등 폐가구로 전락해버린 가구들이 모여 있는 쓰레기장. 두 사람은 들고 있던 의자와 상자를 내려놓는다.

현수가 상자에서 물건들을 꺼내 분리수거 하기 시작한다. 지호가 옆에 놓인 꽤 멀쩡하게 생긴 소파에 앉는다. 의자에 붙은 폐기물 스티커.

지호

(앉아있는 의자 이곳저곳을 만지며)

. 이거 아직 멀쩡한데. 왜 버렸지?

현수

그렇게 치면 우리 쓰던 것도 괜찮아.

마땅히 가져갈 데가 없어서 그렇지.

지호는 계속해서 의자를 만지작거리며 살펴본다.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에 구멍이 크게 뚫려 있는 걸 발견한다.

이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지호가 전화를 받는다.

지호

여보세요?

민우 (F)

(다급한 목소리로) !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어디야?

지호

나 잠깐 볼 일이 있어서. ?

현수가 지호를 힐끔 쳐다본다.

 

민우 (F)

아 지금 보험사 직원 왔어.

빨리 와, 빨리!

툭 끊기는 전화. 초조해 보이는 지호. 앉아있던 의자에서 급하게 일어난다.

지호

현수야. 나 잠깐 급한 일이 생겨서 바로 가봐야 할 것 같거든?

현수

어디 가는데?

대답을 제대로 못 하는 지호, 여전히 급해 보인다.

현수

너 퇴원한 거 아니었어?

S#8. 화장실,

어느새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지호. 흡사 오디션을 보기 전 상황처럼, 대사를 외우듯 혼자 중얼중얼거린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한 번 확인해보는 지호.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다. 지호가 숨을 몇 번 고르고 빠르게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S#9. 병실,

병실로 들어가는 지호. 보험사 직원이 이미 들어와 기다리고 있다. 미리 준비한 듯, 지호가 절뚝거리며 힘겹게 침대로 가 살짝 기대어 눕는다.

보험사 직원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 봐요?

 

지호

(능청스럽게)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 잠깐 요 앞에

보험사 직원

- 그러시구나.

보험사 직원이 인사치레를 마치고 가방에서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낸다.

보험사 직원

다름이 아니라, 보험금 관련해서 얘기 좀 하려고요.

병실 안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지호와 보험사 직원을 관전하듯 쳐다보고 있다.

보험사 직원

(타이르듯) , 이제 얼른 합의하셔야 저희도 제대로 챙겨드릴 수가 있어요.

오래 누워 계신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보통 이 정도 사고면 다들 퇴원하고 합의하세요.

안 좋아지시면, 나머지는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으셔도 되니까, 합의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지호

저기요.

보험사 직원

?

지호

다리 한쪽으로만 걸어본 적 있으세요?

아직까지 여기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요-

보험사 직원

근데, 합의 안 하시면 오히려 본인만 더 힘들어져요.

차라리 퇴원하고 지금 합의하시는 게

지호

(약간 울컥해서) 아니, 돈을 떠나서.

이런 애기는 다 낫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억울함을 호소하는 지호. 배경음악은 구슬픈 멜로디인데 처지지 않는 음악. 다음 화면에 나이롱 환자 지호가 멀쩡하게 생활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몽타주: 대리운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지호. 테라스에서 민우와 무언가 먹으며 대화하고 있는 지호. 쓰레기장에서 현수를 기다리는 지호.)

지호 (V.O)

일어날 수 있으면 진작에 일어났죠.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저도 이러고 누워있기 싫어요.

한 번만, 한 번만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지호가 열연을 펼친다.

CUT TO: 컷 되면, 음악이 뚝 끊긴다. 보험사 직원이 돌아가고 환자들끼리만 남은 병실 안. 혼자 남은 지호의 표정이 어둡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알 리 없는 병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호를 칭찬한다.

환자 1

아니, 너무 자연스럽던데? 나도 속았어.

 

민우

원래 저 형이 연기하던 사람이에요.

환자 1

어쩐지, 확실히 다르더라.

(지호를 보며) 그럼 뭐, TV에도 나오고 그러나?

민우

. 뭐 나온 거 있어? 우리 알 만한 거.

환자 2

아유. 뭘 그런 걸 물어봐.

있으면 진작 알아봤겠지.

가만히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던 지호, 병실을 박차고 나간다.

S#10. 지호와 현수의 집, 저녁

방의 한 귀퉁이에 벽 쪽으로 등을 돌리고 옆으로 누워있는 현수. 지호가 현수에게 조심스레 다가간다.

지호

현수야. 나 왔어. ?

사실 안 자고 있지만 자는 척 누워있던 현수,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뜬다. 지호가 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낸다. 이삿짐 박스 중 하나에 돈 봉투를 끼워 넣는 지호. 현수의 시점에서 옷깃 소리, 왔다 갔다 하는 발자국 소리들이 들린다. 현수, 언제 일어날까 타이밍을 고민하다가 결국 몸을 일으킨다.

 

현수

뭐해?

지호

일어났어?

현수가 일어나 지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이삿짐 박스 안에 못 보던 봉투가 하나 끼워져 있는 걸 확인하고, 봉투를 집어 올리는 현수. 쭈뼛쭈뼛 서 있던 지호가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지호

그동안 밀린 월세야. 지금 줘서 미안하다.

현수

아니, 괜찮아. 괜찮은데.

이거 무슨 돈이야?

지호

그동안 일해서 모은 거야. 받아.

현수

(의심하며) 어디서 일했는데?

지호

아니그냥. 이번에 작은 영화 하나 들어갔는데.

거기서 먼저 좀 챙겨줬어.

현수

그래? 무슨 역할?

지호

(횡설수설하며) 아직 역할은 확실히 안 나왔어.

주연은 아니고, 조연 정도?

현수

왜 그동안 나한테 말 안 했어.

지호

뭐가.

현수

네가 들어갔으면 벌써 말했겠지.

솔직히 말해. 이거 어디서 났어?

지호

무슨 소리야- 내가 일해서 번 돈이라니까?

현수가 돈 봉투를 지호에게 돌려준다.

현수

나 그냥 안 받을래.

지호

뭐야, 왜 그래.

현수

다 나았다며. 근데 너 아직도 병원에 누워 있잖아.

지호

- 진짜. 현수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현수

진짜 쪽팔리지도 않냐?

지호야. 나한테까지 연기하지 마.

지호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캐리어와 목발. 현수가 굳어있는 지호의 앞에 캐리어와 목발을 가져다 놓는다.

현수

이거 보기 싫으니까 가져가.

S#11. 지하철역, 저녁

지호가 지하철 벤치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에 잠긴 얼굴. 지호의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캐리어와 벽에 세워져 있는 목발. 그때 열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지하철 안내방송

지금 xx, xx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하게 승차해주시길 바랍니다.

지호가 열차를 타려 의자에서 일어난다. 열차를 타려는 다른 사람들에 가려져 잠시 지호가 보이지 않는다. 이내 열차가 역을 빠져나가고, 인파가 지나간 뒤 보이는 벤치. 벤치 옆에 지호와 캐리어는 없고, 목발만이 남아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S#12. 병실, N

 

사람들이 모두 곤히 자고 있는 병실. 답답한 지호가 바람을 쐬려 창가 커튼을 걷는다. 흡사 교도소의 철창처럼, 창문이 철창문으로 되어 있다. 당황하는 지호. 울 듯 말 듯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 지호가 그 틈 사이로 손을 겨우 뻗어본다. 카메라 앵글이 바뀌면, 철창이 없는 멀쩡한 일반 창문.

S#13. 병실,

병원을 본인의 의지로 나오려는 지호. 지호가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갑자기 짐을 챙기는 지호를 보며 옆에 누워있던 민우가 당황해 몸을 일으킨다.

민우

, 뭐해? 어디가?

지호

퇴원하려고.

병실 밖으로 나가려는 지호를 민우가 불러 세운다.

민우

(당황하며) 지금? 형 아직 합의도 덜 했잖아.

지호

그냥

더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민우, 지호가 확신에 찬 듯 사람들을 지나쳐 병실 밖으로 나간다.

S#14. 길거리,

길거리. 지호가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가고 있다.

손님 (V.O)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예 기사님. 어디세요?

지금 기다린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그때 다시 울리는 전화. 뛰고 있던 지호가 전화를 받으려 하는데, 코너에서 갑자기 차가 나온다. 놀란 지호, 다리를 접질리고 만다. 자칫 크게 부딪혔을 뻔한 상황. 운전자의 시선에서는 지호가 먼저 뛰어든 것처럼 보인다. 운전자가 창문을 열자,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온다.

운전자

괜찮아요?

지호

, . 괜찮습니다.

운전자

큰일 날 뻔했네.

젊은 사람이 앞 좀 제대로 보고 다녀요-

차는 그대로 지나간다. 괜찮은 줄 알았던 지호, 다시 달리려 하는데 다리가 아프다. 다리를 움켜쥐는 지호. 지호가 진짜로 다쳐서 절뚝절뚝 다리를 절며 걸어간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기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이 와중에 계속 울리는 전화벨 소리. 지호가 잠시 숨을 고른다.

지호

(의연한 목소리로) . 여보세요?

절뚝거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지호.

S#15. 에필로그

S#6.5에 나왔던 캠코더 화면의 다음 부분. 지호가 준비한 진짜 연기를 시작한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의 흥분, 애정, 패기들. 지호의 연기 영상 위로 엔딩 크레딧이 서서히 올라온다.

END

오해서(연기예술 18)
오해서(연기예술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