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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 스피어>

 

이채원(연기예술 18)

 

#1. 세희의 집.

책상 위, 구겨진 종이가 널부러져 있다. 노트북은 꺼져 있고, 책들은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는 세희. 핸드폰 화면에는 10회 젊은 작가상, 고승환 단편소설 <초록이 되는 순간>”이 띄어 있다. 조심스럽게 화면을 밑으로 내린다. 기사 밑에 달려 있는 광고 하나. <우리집 만능비서 스피어>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 손톱을 물어뜯는 세희. 갑자기 전화가 한통 온다.

환희

세희야, 이번에 승환이가 상 탔다고, 한 턱 쏜다는데 나와라.

세희

, 그래? 잘 됐네.

환희

요즘도 글 쓰느라 바쁜가?

세희

, 그렇지.

어지럽혀 있는 책상 위, 자신의 노트북과 책 더미에 시선을 옮기는 세희.

화면이 블랙 아웃 되면서 제목이 뜬다. <세희 스피어>

#2. 세희의 집(책상 있는 쪽).

넓직한 책상 위에는 노트북 한 대를 포함한 최소한의 물건들만 놓여있다. 노트북 앞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치는 세희.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의 손가락 움직임은 둔해지고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진다. 결국 그의 손은 멈춰버린다. 조심스럽게 백스페이스로 향하는 그의 손가락. 이제껏 썼던 것을 지워 버린다. 모니터 위에는 홀로 쓸쓸히 커서 혼자 깜빡이고 있다. 빈 화면을 보면서 손톱을 물어뜯는 세희.

(현관의 띵동 소리 E)

현관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세희

택배 아저씨(E)

택배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E)

#3. 세희의 집(책상 있는 쪽).

박스 하나를 들고 책상 쪽으로 걸어오는 세희. 책상 위 쓰레기들을 치우고 그 위에 박스를 올려 놓는다. 안에 들어 있는 원통형의 기계를 신기하게 처다 보는 세희. 이리 저리 살펴본 후, 기계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박스 안에 함께 들어 있던 설명서를 꺼내 읽는다.

설명서를 한 번 보고, 스피어의 전원 버튼을 눌러 본다. 기계에서 이산한 소리와 빛이 난다. 세희, 자신이 무언가 잘못 누른 줄 알고, 다시 설명서를 본다. 스피어의 뜬금없는 소리로 다시 기계를 처다 보는 세희.

스피어

반갑습니다. 스피어 입니다.

손에 있던 설명서를 내려 놓고 기계를 자신의 쪽으로 당기는 세희.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퍼졌다.

스피어(E)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4. 세희의 집. (몽타주)

(4-1) 집 현관 앞에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세희.

스피어(E)

세희, 우산 챙기세요.

CUT TO:

(4-2) 소파에 앉아 중국집 전단지를 들고 고민하는 세희.

스피어(E)

그 집은 짬뽕보다 짜장면의 만족도가 32% 더 높습니다.

#5. 세희의 집(책상 쪽).

그새 밖은 어두워졌다. 하지만 글 쓰느라 깜깜해진 것을 느끼지 못한 세희의 몸은 화면에 점점 가까이 간다. 스피어가 세희를 대신해서 스탠드를 켜준다. 그제서야, 어두워졌다는 것을 깨닫는 세희.

세희

(스탠드를 한 번 쳐다보고 웃으면서) 스피어 고마워.

스피어

세희님 더 필요한 게 없으신가요?

세희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스피어의 물음에 한 박자 느리게) ? . 없어.

한참을 혼자 타자기 앞에서 씨름하고 있는 세희. 얼마 안 있어, 타자기에서 손을 떼는 세희.

세희

(갸우뚱하면서) 스피어, 이거 오탈자 한 번 확인해줘.

스피어

, 세희님.

스피어의 말이 끝나자 마자 세희가 쓴 글 위에 빨간 표시들이 생겨난다.

세희

(살짝 놀라워하면서) 이 표시는 뭐야?

스피어

문장의 순서를 바꾸는 게, 소녀의 마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표시해 두었어요.

세희

?(순간적으로 당황하였으나, 곧 머리를 굴려보고는)

그래, 그럼. 스피어 그렇게 수정해서 보내줘.

스피어

, 세희님.

스피어의 대답이 끝나자 마자, 세희의 노트북에는 편집장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표시가 뜬다.

#6. 세희의 집 (책상 쪽).

창 밖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마감을 끝낸 사실에 기분이 좋은 세희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책상 앞에 앉는다.

스피어

세희님, 편집장님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세희

(설렘의 웃음을 씨익 짓는다.) 그래?

메일을 읽으면서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는 세희. 세희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노트북과 가까웠던 몸은 점점 멀어진다. 얼굴의 표정과 몸이 꾸겨진다. 결국 노트북 화면을 닫아버리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세희.

#7. 세희의 집. (몽타주)

(7-1) 창 밖 먼산을 바라보고 있는 세희. 손톱을 물어뜯은 채,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거 같다.

편집장(E)

나 지금 첫 문장 읽는데,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그려지는 이유는 뭘까?

CUT TO:

(7-2) 양 손에 치약과 칫솔을 쥐고 있는 채로, 정신을 놓고 있는 세희. 치약의 뚜껑이 닫혀 있는 채로, 치약을 차려고 한다. 세희의 시선은 먼 곳 어딘가로 향해 있다

편집장(E)

글 처음 써보니? 인물이 너무 재미없어.

CUT TO:

(7-3) 부엌에서 커피를 타 마시려고 물을 끓이고 있는 세희. 역시 시선은 먼 곳에 둔 채, 습관적으로 커피봉지를 까 컵에다 붓고 물이 다 끓기를 기다린다.

편집장(E)

이번에 상 탄 고승환 작가,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

(물이 다 끓었다는 주전자 소리E)

주전자 소리와 편집장의 목소리에 정신이 확 들면서 컵을 들고 책상으로 향하는 세희.

#7.5 세희의 집(책상 쪽).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책상 앞에 앉는 세희. 노트북 화면을 키고 손에 들고 있던 커피는 이 전에 놓아 두었던 커피 옆에 둔다. 정신이 오로지 자신의 글에만 가 있어, 자신의 책상 위에 입도 대지 않은 똑같은 커피잔 2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세희의 시선은 오로지 노트북 위 자신이 남겨놓은 흔적에만 가 있다. 열심히 읽다가 몇 자 두드리기도 하는 세희.

편집장(E)

오작가는 책 안 낼꺼야?

열심히 움직이던 세희의 손이 멈춘다. 손톱을 물어 뜯으면서 자신의 글을 읽어보는 세희. 마음에 들지 않아 노트북을 한쪽으로 치우고 갑자기 메모지와 연필을 가지고 뭔가 적기 시작한다. 적고 꾸기고를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포기해버린다. 다시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세희의 귀에 갑작스런 스피어의 소리가 들린다.

스피어

세희, 자신이 항상 놀던 바다에 소녀가 빠지는 건 어때요?

세희

(숙였던 고개를 들어 스피어를 바라보면서) ? 뭐라고?

스피어

세희님 글 속 소녀가 물 아래 세상에 가려고 그곳에 빠지는 거예요.

세희

?

스피어

소녀는 스스로 인어공주라고 생각했던 거죠.

매일 같이 놀던 바다 친구들처럼 자신의 세상도 물 밑에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세희

(스피어의 말에 쉽게 반응하지 못한다.) .

#8. 세희의 집(침대 있는 쪽).

자려고 누운 세희,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일어나서 서제로 향한다. 화면은 세희가 떠난 침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희가 책상 위 스피어를 박스에 넣는 소리 E)

(서랍이 열리고 상자를 넣은 후 다시 닫히는 소리 E)

#9. 세희의 집(책상 있는 쪽).

지저분한 책상에서 세희는 노트북 앞에 앉아 열심히 두들기고 있는 중이다. 쓰고 지우기를 세번 정도 반복한 후, 아예 노트북 위에서 손을 떼고 자신이 쓴 글을 읽는 세희.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턱을 괴고 한참 생각에 빠지다가 스피어에게 말을 거는 세희.

세희

여기 좀 이상하지 않아? 소녀의 성격이 갑자기 바뀐 거 같아. 안 그래?

무의식 중에 스피어가 있던 자리를 처다 보지만, 아무 것도 없다. 이내 짧은 한숨과 함께 시선은 다시 노트북 위로 돌아오지만, 절대 다시 글에 집중하지 못한다. 열심히 타자를 다시 처보지만 결국 자신이 쓴 것을 다 지워버린다. 손톱을 물어 뜯으면서 스피어가 있던 자리를 한참 지켜보는 세희. 곧 의자에서 일어난다.

(서랍이 열리고 상자를 꺼낸 후 다시 닫히는 소리 E)

#10. 세희의 집(책상 쪽). ->

더러웠던 책상 위가 청소되었다. 책상 위, 스피어가 다시 돌아왔다. 세희는 열심히 스피어의 말을 들으면서 글을 쓴다. 집중해서 스피어의 말을 경청하는 세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들은 그렇게 열중해서 작업을 이어 나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희는 점점 스피어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게 된다.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이미지 컷. 그림자)

스피어

물 속 깊이 들어갈수록 소녀를 반긴 것은 희망이 아닌 절망, 빛이 아닌 어둠이었다.

소녀는 깨달았다. 그녀는 인어공주가 아님을.

세희 열심히 받아 적는다. 세희의 입모양은 스피어의 대사를 따라 읊고 있다.

스피어

소녀는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녀는 물속으로, 두려움 속으로 잠식당했다.

세희, 스피어의 대사를 받아 적다가 표정을 한 번 찡그리며, 글 쓰는 것을 멈추고 스피어를 바라본다.

세희

소녀가 죽어?

옆에 건져져 있던 티백을 다시 컵 속으로 담그는 세희.

세희

너무 잔인하지 않아?

스피어

평생 자신이 믿고 꿈꾸던 게 허상, 망상이라면, 더 이상 소녀가

살아갈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세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세희의 시선은 티백이 담겨 있는 유리잔을 지나 책상 끝에 놓여 있던 어리시절 친구와의 사진에 놓인다. 사진 액자를 드는 세희. 그 반대 손 손톱을 물어뜯는다. 그 옆 벽에는 세희 어린 시절, 상장들이 붙여져 있다.

#11. 세희의 집(침대 쪽).

따스한 햇살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침대에서 자고 있는 세희.

(핸드폰 전화 벨소리 E)

핸드폰 화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잠결에 전화를 받는 세희.

세희

(잠겨 있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편집장(E)

(굉장히 하이톤으로)오작가~ 글 너무 잘 받았어!

세희

, . 감사합니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다.)

편집장(E)

아니, 자기가 쓴 거 맞아~ 이렇게 잘 쓰면서 그동안 왜 그랬어~

세희

(대답을 하지 못하는)?

한참을 전화기를 쥐고 깊은 생각에 빠진 세희.

#11.5 세희의 집(책상 있는 쪽).

해가 지고 있는 듯,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는 시간대이다. 드넓은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는 세희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쓸쓸해 보인다. 모니터 속 <인어소녀> 제목과 그 밑에 적혀 있는 자신의 이름을 보고 있는 세희. 스피어를 향해 무심하게 한 마다 뱉는다.

세희

스피어, 편집장님이 <인어소녀> 빨리 책으로 만들면 좋겠데.

스피어

(흥분된 말투로)~ 정말요?!

세희

(영혼없이) , 재미있데,

스피어

(설레어 하면서) 드디어 우리의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건가요!

스피어의 말에 아무 대답하지 못하고 뻔히 화면 위에 적혀 잇는 자신의 이름을 바라보기만 하는 세희.

손톱을 뜯고 있다.

세희(E)

우리의 글?

#12. 세희의 부엌.

물을 끓이는 세희. 끓인 물을 투명 컵에 따른다. 그리고 티백을 담가 차가 우러나는 것을 바라본다.

염없이 차가 우러나는 것을 보다가, 티백을 건져 올리는 세희. 핸드폰을 꺼내 편집장에게 전화를 건다.

세희

여보세요? 네 편집장님.

#13. 세희의 집(책상 쪽).

책상에 앉아,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인어소녀>를 휴지통으로 버려버린다. 짧은 한숨과

함께 노트북을 덮는 세희.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은 스피어로 향한다. 책상 밑에서 박스를 꺼내는 세

. 스피어를 들어서 전원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스피어가 세희에게 말을 건다.

스피어

좋은 꿈 꿔요, 세희.

세희

(전원버튼 위에 손가락을 살짝 치우면서)

좋은 꿈 꿔, 스피어.

세희, 떼었던 손가락을 다시 전원 버튼 위에 올려 놓고 누른다. 그렇게 스피어의 전원을 끄고 박스 넣

어 닫는다.

엔딩 크레딧이 열심히 올라간다.

#14. 세희의 집(책상 쪽).

커피잔을 들고 책상에 앉는 세희. 덮은 노트북을 열고 새로운 파일을 열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THE END


 

이채원(연기예술 18)
이채원(연기예술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