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N027: 심연

 

 

1.

그 전화를 받은 것은 설문조사가 끝나고 일주일쯤 뒤였다.

 

우우웅...우우웅...

“....여보세요.”

저기 혹시 윤종수씨 전화 맞으신가요?”

네 그런데요?”

저는 안남경찰서 형사 김성민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12일 오후에 윤미순 할머니께서 쓰러진 채로 발견이 되셨는데...”

?”

 

전화를 끊고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다시 주워 입고 방을 나섰다.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에게 안남경찰서로 가달라고 했다.

 

2.

종수야. 야 윤종수

안남역 역사 입구 쪽 흡연구역에서 수오 형이 나에게 손을 흔들거리며 웃고 있었다. 포마드를 발라 가지런히 빗어 올린 머리가 오늘따라 더 기름져 보였다.

수오 형, 일찍 나오셨네요.”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던 나는 피곤해서 천천히 그 쪽으로 다가갔다. 수오 형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면서 말했다.

출근 전철 지옥이더라. 씨발.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쓰니까 더 답답해 미치겠지 않냐? 그나저나 시간 맞춰서 잘 도착했네?”

그러게요. 초행길이라 좀 일찍 나왔어요.”

담배 한 대 태우고 가자.”

수오 형과 나는 거의 동시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늘 딱히 힘들 건 없을 거야. 그냥 두당 20분에서 30분 잡고 진행하면 돼.”

수오 형은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멍하니 담배를 피우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야 너도 슬슬 취업 준비해야지 졸업 얼마 안 남았잖아. 형이 너 괜히 불렀겠어? 여기에 잘 보여서 나쁠 거 하나 없어 인마.”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에이 형 저 사회복지사 안 한다고 맨날 말씀드렸잖아요. 오늘은 그냥 형 도와드리고 용돈 벌이도 할 겸 온 거예요.”

나는 사실 내 전공인 사회복지학보다는 시나리오 쓰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쪽이 작가로서 글쓰기에 좋을 것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물론 페이도 거부하기엔 아까운 금액이었다.

아유 그래라. 어쨌든 오늘 와줘서 고마워. 담배 다 태웠냐? 빨리 가자.”

내가 오늘 맡은 일은 복지관에 오는 어르신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시력이 좋지 않은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직접 읽어드리면서 조사를 진행해야 했다. 페이는 두당 6천원 이었다. 한 설문조사당 걸리는 시간과 비례했을 때 시간당 최저임금에 비해 더 받을 수 있었다. 수오 형에게 설문조사를 하기 전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새 안남시 노인종합복지관 앞이었다.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 종수야 그리고 어르신들 말 길어지는 경우 많으니까 니가 눈치껏 알아서 잘 끊고 넘어가라. 우리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오늘 인원 다 끝낼 수 있어. 그리고 그래야 니가 더 많이 받아갈 수 있고. 오케이?”

.”

 

3.

경찰서에 도착해서 김성민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도 마침 경찰서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곧이어 도착한 그를 만났을 때 목소리에 비해 생각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바람에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는 듬성듬성 비어있었고 검은 머리를 찾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는 나를 경찰서 내부 조사실로 안내했다. 꼭 올 필요는 없는데 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조사실이라고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조사실을 가득 매우고 있는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그의 후배로 보이는 경찰이 따라 들어오더니 커피를 먹겠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고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김성민 형사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검지를 들어 올린 뒤 서류가방을 직사각형 철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내 반대편에 앉았다. 그는 마스크를 벗고 마른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서류가방에서 검은색 노트북을 꺼냈다.

아까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윤미순 할머니께서 12일 오후에 쓰러진 채로 발견이 되셨는데 일단 지금 저희는 자살로 추정하고 수사 중입니다. 뭐 종수씨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부른 게 아니구요. 종수씨가 일주일 전 그러니까...”

노트북을 두드리며 김성민 형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125일에 설문조사를 진행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혹시나 저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 있으시면 편안하게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표정은 눈썹이 이따금씩 꿈틀거리는 것 말고는 꾸준히 무표정이었다. 그저 내 입과 노트북을 한 번씩 번갈아 볼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 한마디를 던졌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요?”

?”

그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었다.

이런 독거노인이 자살하는 일이요.”

네 뭐 흔한 일이긴 하죠. 대부분 자살이긴 한데 어쨌든 기본적인 수사는 해야되는 거니까.”

균열은 금방 제자리를 되찾았다. 그리곤 서류가방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서 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 종이는 내가 윤미순 할머니와 함께 했던 설문조사 용지였다. 그걸 받아드느라 손이 닿은 테이블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3페이지 5 다시 2번 문항에 최근 1년 사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나요? 라는 질문에 있다 라고 체크가 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말 좀 해주시겠어요?”

나는 내가 해놓은 체크 표시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따뜻할 때 드세요.”

그때 후배 경찰이 들어와 커피 한 잔을 놓고 갔다. 테이블 위에서 김 한 줄기가 비틀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4.

상담실 시계는 4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설문을 시작해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진행했기에 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점심시간 때 사 온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해진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한 할머니가 상담실로 들어오셨다. 나는 순번표를 확인했다. 다 지워지고 마지막 남은 칸에 윤미순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 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나는 쓰러진 투명 칸막이를 다시 세우고는 문 쪽으로 다가갔다.

혹시 윤미순 할머니세요?”

네네.”

이쪽으로 오셔서 여기 앉으시겠어요.”

진한 빨간색 마스카라로 칠한 눈은 나에겐 그저 흑백처럼 보였고 눈 곳곳 주름에 그녀의 그림자가 거뭇하게 고여 있었다. 설문조사는 여타 앞서 진행했던 대로 수월하게 진행됐다. 그녀는 처음에는 경계심을 가지고 대답을 했지만 이내 설문조사에 호의적인 태도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의 목에 감긴 머플러를 보며 물었다.

이제 거의 다 끝나셨구요. 혹시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하시거나 구체적으로 시도하신 적이 있으실까요?”

사실 이 문항은 눈을 보며 물어보기가 거북했기에 이전 어르신들에게도 항상 딴 곳을 보며 물어봤었다.

. 시도도 했었습니다.”

난 순간 멈칫하여 할머니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되물으려다 입을 닫았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썩어버린 부분을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 썩어버린 것들은 책상 아래로 마구 흘러내렸고 난 그것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투명 칸막이 앞에서 난 그저 남으로만 존재했다. 거멓게 흥건해진 곳에서 나는 다음 질문을 물어보았다. 설문이 다 끝나고 그녀는 답례품을 연신 고맙다며 받아들고 문을 나섰다. 들어올 때처럼 혼자.

 

6시간 동안 총 13명의 인생이 쏟아졌다. 23년을 살아온 내가 감히 감당은커녕, 가늠할 수도 함부로 넘겨짚을 수도 없었다. 쏟아진 것들이 뭉치고 뭉쳐 소용돌이가 되어 조용한 상담실 안에서 더욱 빠르게 날 옥죄었다. 유일하게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눈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암흑 같았다. 짐을 다 챙기고 불을 껐지만 날 휘감았던 것들은 벗어 두고 나올 수 없었다.

6.

경찰서를 나와 전철을 탔다. 코트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져 핸드폰을 꺼냈더니 수오 형의 전화였다. 망설이던 때 전철이 덜컹거려 얼떨결에 통화버튼이 눌려버렸다.

야 종수야 어디야? 얘기 들었지? 경찰서에서 연락 왔었어?”

.. 방금 경찰서 나와서 집 가는 길이에요.”

수화기 너머 수오 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그가 말을 꺼냈다.

맘고생이 심하겠다. 미안하다 형이.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조만간 술 한 잔 먹자.”

....”

그 다음 수오 형이 꽤 많은 말을 했지만 대부분 전철 소음에 묻혀 가라앉았고 나는 진동을 견디며 멍하니 서 있었다. 가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고 눈이 조금씩 감겨왔다. 창밖은 어두웠고 눈을 감고 있는 내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7.

경찰서를 다녀오고 이틀 뒤 수오 형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퇴근하자마자 온 수오 형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항상 가지런하던 머리는 꽤 흐트러져 있었다. 부조금 함에 봉투를 넣었다. 봉투 속에는 5만원 한 장과 편지 한 장을 넣어뒀다. 편지 내용은 아무도 못 봤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장례식장 안은 한적했다. 복지관 직원들 몇 명 그리고 동네 지인 몇 명뿐이었다. 후에 상주는 그나마 가까운 친인척 중 한 명이라고 들었지만,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사를 나누고 절을 한 다음 향초를 꽂았다. 영정 속 사진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장례식에 와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난 남이었으니까. 끈적하게 나를 감싸고 있던 것들은 이틀 사이에 많이 헐거워졌다. 영정사진 앞에 우두커니 선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벗어두었다.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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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현(글경영 15)
하석현(글경영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