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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장치 돌고래

박효준(국문 16)

 

주마등.

지난 기억들이 눈앞에서 영화처럼 재생되는 것.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상관없이 생생히.

 

-

 

부드러운 봄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동물원에 갔었다. 곳곳마다 두려운 것이 가득했다. 호랑이를 보고는 본능적으로 등골이 서늘한 것을 느꼈고, 악어는 껍질이 괴상해서, 원숭이는 얼굴이 빨개서 무서웠던 것 같다. 동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울어댔다. 나의 곡성에 지친 부모님이 토끼 모양 콘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줄 때에야 비로소 눈물을 닦고 그것에 몰두했다.

 

달콤한 회유책에 정신이 팔린 채로 어느새 나는 푸른색 의자 위에 앉아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통곡을 대비하여 나를 당신들의 사이에 놓고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호를 그리며 지어진 건물. 좌석을 꽉 채운 사람들. 앞에는 물이 더 푸르게 보일 수 있도록 파랗게 칠한 수영장과 무대. 그 위에 서 있는 사람. 햇빛이 물 위에 강하게 내리쬐었고, 반사된 섬광이 물결에 이리저리 요동치고 있었다.

 

지금부터 쇼를 시작합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사회자의 소리와 함께 은빛 총알 같은 것이 물에 드리운 섬광을 갈랐다. 그리고는 공중으로 힘차게 솟구쳐 올랐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엄마 아빠는 내 손을 꽉 쥐었다. 그 관능적인 모습을 보며 내 입은 쩍 벌어져 턱이 아픔을 느꼈을 때야 다물었다. 나는 아빠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저 동물은 대체 무어냐고 여쭤봤다. 아빠는 울지 않는 나를 기특해하며 돌고래라고 알려주었다. 공연이 끝난 후 부모님은 돌고래 장난감을 사주었다. 태엽을 감으면 물속에서 이리저리 맴도는 장난감이었다. 한동안은 그것만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

 

내가 OO 아쿠아리움에 입사하여 처음 돌고래 훈련장에 왔을 때 온종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훈련사의 손짓에 따라 공중에서 제비를 도는 돌고래, 훈련사의 말에 신나서 몸을 흔들며 박수를 치는 돌고래, 훈련사의 몸짓에 다양한 음을 내는 돌고래. 돌고래들은 사랑스러웠고 그들을 훈련하는 선배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 선배의 보조 훈련사로 배정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돌고래들과 교감을 하며 헤엄치는 중이었다.

그러나 훈련사는 낭만을 팔기 위해 현실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돌고래에 관한 모든 일을 한다. 꿈을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은 고되다.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수백 마리의 고등어를 분류하고 손질했다. 손질된 고등어를 돌고래 한 마리당 11kg씩 할당하여 먹이통에 넣고 냉장실에 보관했다. 그 후 20kg의 수중 장비를 착용하고 돌고래 수족관을 닦아냈다. 먹이를 줄 준비를 모두 마치면 통을 들고 돌고래에게 먹이를 줬다. 매일같이 이것을 필수적으로 끝내야만 돌고래를 훈련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전부 남자였다. 그들의 체력을 따라가기는 벅찼다. 운동도 해가며 체력을 길러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여자 훈련사가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의 모습이 유독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선배들은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떨어진 나는 실수를 연발했고, 선배들에게 혼나지 않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상품성이 없는 개체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경계가 심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누구든 관리하기 꺼린다.

 

큰돌고래 종인 피터는 바다에서 왔다고 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항간에는 피터가 불법 포획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는 어떤 훈련사의 말도 듣지 않았다. 먹이를 줄 때마저 훈련사를 공격해 내쫓아버리기 일쑤였다고 했다. 피터는 어떤 훈련도 참여하지 않았고 수족관 밖으로 물을 뿜어대며 사람을 놀리기만 했다. 그런 피터를 관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 나는 절망적이었지만 야릇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열정이 넘쳤던 20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동물이든 사랑을 주면 사랑을 보답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리고 이 아이만 제대로 관리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속물적인 욕심 때문에.

 

그러나 모든 기대감은 구겨져 버렸다. 피터는 내가 다가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가까이 갈 때마다 돌고래 특유의 호루라기 소리 같은 경고 신호를 보냈다. 교감은 고사하고 먹이를 주는 것도 수족관을 청소하는 것도 난항을 겪었다. 한번은 내가 무서워서 먹이를 냅다 던져버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한 남자 선배가 나를 불렀다.

 

훈련사라는 거 참 쉬워 그치? 관리 대상이 먹이를 처먹든 말든 그냥 던져버리고 가면 그만이잖아?”

선배 그게 아니라. 피터 경계가 너무 심해요.”

그렇구나. 그럼 너가 미남이 맡을래?”

선배가 관리하는 아이잖아요.”

내가 미남이 관리하는 게 쉬워 보여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냐? 시발 너가 제대로 못 대하니까 경계를 하는 거 아냐. 만만해서. 밥값 하고 싶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제대로 교육하라고.” 선배는 나에게 호통을 쳤다.

어떤 수단이든요?” 나는 수단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와 닿지 않았기 때문에 되물었다. 선배는 멋쩍은 듯 머리를 벅벅 긁고 한숨을 쉬었다.

너 오늘 수족관 청소 했어 안 했어?” 선배가 말을 돌렸다.

했습니다.”

했는데 이끼가 그렇게 많이 껴있어? 이끼도 널 경계하든? 여자라 연약해서 그래? 단비야. 왜 그래 정말.”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

 

혼이 난 나는 씩씩거리며 피터에게 갔다. 피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 밖에 고개를 내밀었다.

 

너 내가 그렇게 싫어?”

 

피터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여유롭게 유영을 했다.

 

그래. 나 이제 앞으로 너 밥 안 줄 거야. 아마 내가 준 밥도 싫겠지.”

 

사실 밥을 안 줄 수는 없었다. 상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피터는 그걸 꿰뚫고 있다는 듯 입으로 나에게 물을 뿌려댔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손으로 수족관 콘크리트 벽을 강하게 내리쳤다. 순간 손이 너무 아파 짜증이 났다. 피터는 당황한 듯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다 이전보다 더 강하게 경고음을 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콘크리트 벽을 쳤을 때 내는 날카로운 경고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피터는 어쩌면.

 

피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시퍼런 칼날 같은 소리를 내며 날뛰는 피터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진심이 닿기를 여러 차례 바라면서.

 

나 정말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냐. 그냥 힘들어서 그랬어. 미안해. 피터야.”

 

돌고래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던가. 어떤 신이든 나를 도와주기를 바랐다. 그동안 고통에 신음했을 피터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다행히도 피터의 경고음이 멈춰들었다.

 

-

 

상부에서는 피터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유지비는 들어가지만 정작 피터로 인한 수입은 없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게다가 이 돌고래의 출처는 불명확한 상태였다. 돌고래 보호 단체는 피터를 주시했다. 그들은 예전부터 피터의 관리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했었는데 그 때마다 회사는 거부의 메시지만 전달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회사가 피터를 처리하자니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차라리 피터를 바다로 돌려보내면 어떻겠냐는 의견들이 이사회에서 오갔던 것 같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뜻 진행되지 않았다. 이러한 압박은 피터의 관리자였던 나에게 돌아왔다.

 

피터 말이야. 어떻게 안 될까? 우린 자네를 믿고 있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피터를 훈련했음 하는데. 그게 어렵다면 음.”

 

팀장은 말꼬리를 흐렸지만 뒤의 말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피터를 어떻게든 처리하겠다는 것. 혹은 나를 처리하겠다는 것. 나는 뒷짐을 지고 죄송한 척 고개를 푹 숙였다.

팀장과의 찝찝한 대화가 끝나고 피터를 보자 참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모두에게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피터. 그가 너무 가여워서 울었던 건지. 내 처지가 가련해서 울었던 건지. 나는 물 위에 올라온 피터에게 다가갔다. 내가 수족관 콘크리트 벽에 앉아서 멍하니 피터에게 시선을 던졌을 때 피터는 아무런 저항 없이 가만히 있었다.

 

참 힘들다 피터야. 너도 힘들지? 우리 피터 오늘은 고맙게도 가만히 있네. 있지 피터야. 우리는 어쩌면 같을지도 몰라.”

 

콘크리트 벽 한 편에 기대고 있었던 피터가 물속에 여러 번 들어갔다 나왔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피터가 내게 다가와 처음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나는 일순간 격앙되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피터의 입 쪽으로 손을 뻗을 때 갑작스럽게 두려움이 엄습했다. 피터는 가만히 있었고 용기를 내서 입가를 쓰다듬었다. 피터는 내 손길을 느끼는 듯했다.

 

고마워 피터야. 정말 고마워. . 사랑해. 너도 나를 조금만 좋아해 주면 안 될까?”

 

어느새 내 눈물은 뚝뚝 떨어져 매끈한 피터의 피부에 번졌다. 다른 손으로도 쓰다듬어주고 싶어 손을 올렸을 때 피터는 놀라 고개를 털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물 밖에 머리만 빼꼼 올리고 트위티 소리를 냈다.

 

-

 

피터는 그 이후로 내가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젠 내가 먹이를 줄 때 몸을 우뚝 세워서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피터를 만지기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다만 내 팔을 어깨 위까지 올리면 피터는 놀랐다. 내가 개발한 방법은 먼저 허리춤에 팔을 붙이고 허리에서부터 손을 조심스럽게 뻗는 것이었다. 피터가 나의 행동이 악의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면 자신의 입을 내밀어 내 손에 댔다. 그러면 나는 성심성의껏 피터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사랑과 미안함을 표했다.

팀장은 나와 피터의 모습에서 가능성을 엿보았다. 아마도 상품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주변 선배들은 피터의 교화 과정에 관해 물어보았다.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딱히 수단은 없었어요. 진심으로 사랑을 줬는걸요.” 이 말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거짓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 상대를 향한 경멸이 있었다.

 

피터를 어느 정도 핸들링 할 수 있다고 해도 아직 공연 연습을 할 정도는 되지 않았다. 피터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거부했다. 심지어 같은 돌고래조차. 나 역시도 아직 피터가 공연을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대대적인 페스티벌 준비로 한창 바쁠 무렵 모든 훈련사와 돌고래들은 메인 풀장에서 훈련이 한창이었다. 나는 이 틈을 타 공연을 하지 못하는 피터가 예비 풀장에서 놀 수 있도록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위에서는 흔쾌히 허락했다.

아주 오랜만에 평소보다 넓은 공간을 누릴 수 있는 피터는 신이 났다. 나는 피터에게 공을 던져 주며 놀아주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피터가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황망하게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피터는 입을 벌리고 끼룩끼룩 웃었다.

 

피터야. 너 정말.” 내가 피터 쪽으로 물을 튀기며 말했다. 피터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 쪽에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행동에 어리둥절했다. 피터는 계속 그대로 나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무심코 피터의 지느러미를 잡자 그는 헤엄을 쳤다.

햇빛이 물의 표면을 관통하고 있었다. 빠르게 갈라지는 물살 속에서 믿을 건 피터뿐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푸른 하늘 속에서 피터와 나는 춤을 추고 있었다.

 

-

 

해가 바뀌고 피터와 함께한 지 9개월 즈음이 지난날이었나.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하고 피터에게 갔을 때 피터는 배가 뒤집어진 채로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아주 차가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로 소리를 질렀다. 다른 훈련사들과 팀장이 달려왔다. 나는 피터를 가리켰다. 그때 피터는 여유롭게 물 위로 올라와 나에게 물을 뱉었다. 그러고는 다시 끼룩끼룩 웃기 시작했다. 1주 동안 피터에게 삐져 차갑게 대하자 피터는 나에게 애교를 부렸다. 그렇게 내 화가 풀리고 잊을 만하면 피터는 죽은 척하기 놀이를 계속했다. 이 행위는 팀장의 흥미를 자극하게 되어 저것으로 공연을 하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명령했다.

그 후로 피터는 죽은 척하기 묘기로 공연에 서게 되었다. 물론 언제나 내가 함께 있어야 했다. 내가 없을 때 피터는 절대 묘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피터의 공연을 지시하면서 나는 언제나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공연을 잘 마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잘 키운 아들이 유치원 학예회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는 학부모의 심정이었다. 회사 쪽에서는 드디어 밥값을 하는 피터에게 만족함을 보였다. 피터 덕분의 나의 입지도 올라갔다. 가장 말을 안 듣는 돌고래를 교육했다며 공로패까지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는 않았다. 우선 이 공로패를 나에게 주는 이유를 몰랐다. 나는 단순히 피터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

 

피터는 언제나 나를 찾았다. 나 역시도 언제나 피터를 찾았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보고 싶은 존재는 피터밖에 없었다. 피터와 작은 풀장에서 노는 일이 잦아졌다. 언젠가부터 그는 나에게 몸을 비벼댔다. 나는 그 몸짓을 받아주면서 사랑을 속삭여줬다. 우연히 회사 내의 수의사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 수의사는 나를 불러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피터가 몇 살이지?”

아마 세 살일 거예요.”

세 살. 자기한테 하는 행동들 있잖아. 몸 비비고 막.”

.”

그거. 돌고래들 발정 났을 때 하는 행동이야.”

?”

피터 아무래도 접붙여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위에 보고해볼게.”

잠깐만요. 죄송한데 보고는 나중에 해주시면 안 될까요? 피터가 이제 막 사회성을 갖기는 했는데, 다른 돌고래랑은 안 친해서요. 그러니까. 그 과정이 좀 걱정되는.” 나는 피터가 걱정되어 횡설수설하며 수의사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피터에게 다시 왔을 때 피터는 다시 죽은 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등을 돌리며 관심이 없는 척을 하자 피터는 슬며시 올라와 나를 툭툭 쳤다. 그리고는 다시 접촉을 했다.

피터의 스킨십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자신의 몸을 내 다리 쪽에 계속 비볐다. 어떤 때는 자신의 성기를 비빌 때도 있었다. 나는 온몸으로 피터의 사랑을 느꼈다.

 

돌고래가 발정 났을 때 하는 행위.’

 

그게 뭐 어때서. 나는 피터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래서 그가 나에게 비빌 때면 자연스럽게 받아주고 쓰다듬어 줬다. 그리고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

 

신체적인 대화를 주고받은 후로 우리 둘은 더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저 서로 같이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나는 보는 사람이 없을 때면 피터의 사랑 어린 응석을 받아줬다. 그리고 마치 이 깊은 관계에 신이 반응한 것처럼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 , 분명히 피터의 입에서 난 소리였다.

피터야 뭐라고?” 나는 발작하듯이 피터에게 물어보았다.

, ,

 

그 말은 영락없이 사랑해였다. 피터는 내가 속삭여줬던 말을 기억했다가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 사랑에 감격했지만, 우리의 대화는 신체적인 것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는 묘한 기대감이 더 강했다. 너와 대화할 수만 있다면, 그러면 세상이 필요 없을 텐데.

 

-

 

그 이후로 나는 더 열성적으로 피터에게 말을 가르쳤다. 먼저 기본적인 단어들을 가르쳐보았다.

 

하나, ,

, ,

 

피터는 놀랍게도 습득 능력이 빨랐다. 기대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피터와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 낙관적인 미래가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피터에게 말을 가르치는데 하루 온 종일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기대감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피터의 의사소통 능력을 팀장이 알아챘다. 팀장은 곧장 나를 불렀다.

 

곧 페스티벌 열리는 거 알지?” 팀장은 온화한 미소로 나에게 물어봤다. 나는 최대한 경계하며 팀장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소름 끼치도록 아주 온화한 미소였다.

알고 있습니다.”

왜 나에게 진작 말하지 않았지.” 팀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표정을 굳혔다.

자네 피터 1년 유지비가 얼마 정도 되는지 알고 있나?”

잘 모르겠습니다.”

글쎄다. 3000만 원쯤 될 거야 얼마 안 돼 보이지? 그럼 이 건물 유지비는 얼마 정도 할까? 대략 10억은 넘겠지. 피터도 이 건물 안에 있어. 게다가 자네 월급도 나가는구만.” 팀장이 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얼른 속셈을 듣고 싶어서 팀장의 말을 잘랐다.

용건이 어떻게 되시는 건가요?” 팀장은 내 말에 냉소를 띄었다.

피터도 페스티벌 나가야지?”

기존에 했던 것들 다시 재정비하겠습니다.”

아냐. 아냐. 이번 페스티벌에 국무총리가 오는 거 알고 있나?”

몰랐습니다.”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야지. 예를 들면. 말하는 돌고래라든가.” 나는 팀장의 계산에 숨이 막혔다. 그때서야 내가 피터에게 독을 주입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피터는 아직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섣불리 내보내서는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피터가 페스티벌에서 메인이 되는 것을 만류했다. 그러나 팀장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 피터 사랑하지? 소문이 자자해. 근데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 안 해. 동물은 우리 가족인데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자네의 그 사랑 덕에 피터가 공연에도 설 수 있게 되었어. 자네를 믿네. 자네가 옆에 있으면 되지 않아?” 팀장은 이 말을 마치고 다시 창가를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치만.”

됐고. 피터를 이번 페스티벌에서 체험용 돌고래로 쓸 생각이야. 말하는 돌고래. 생각만 해도 멋져. 만약 이게 안 된다면.” 팀장은 말을 멈췄다. 동시에 내 심장도 같이 멎는 듯 했다. 팀장은 담배를 끄며 말했다.

피터는 어디로든 보내야 하겠지.” 이 말을 마지막으로 팀장은 내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리고 자리를 떴다.

 

-

 

팀장의 보고는 곧바로 위에 올라갔다. 회사에서는 내 옆에 보조 훈련사를 붙여줬다. 총구는 이미 내 머리 뒤에 겨눠져 있는 상태였다. 불안정한 피터를 페스티벌의 마스코트로 내세워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도 가슴 아팠지만, 피터를 잃는 것은 나에게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피터에게 단어들을 가르치는 동안 제발 피터가 습득하지 못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나 피터는 야속하게도 단어 습득 능력이 빨랐고, 회사는 이 모습에 만족했다. 피터가 페스티벌의 간판이 될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피터의 습득 능력에 때로는 감탄하면서 나는 전략을 바꿨다. 피터를 제대로 페스티벌에 내세워 무사히 마치고 다시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그렇게 정신없이 페스티벌 준비에 박차를 가하다 보니 어느덧 회사에서 자랑하는 행사가 열렸다. 그동안 피터는 사랑해’, ‘힘내세요.’ 40개 정도의 단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공연장의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덩어리 같았다. 귀빈석에는 국무총리가 앉아있었다. 디너쇼까지 돌고래들은 각 개체 당 최소 3개의 공연을 해야만 했다. 첫 공연에서 피터는 예전과 똑같이 죽은 척 연기를 했다. 사람들은 피터의 연기에 역겨울 정도로 폭소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돌고래 체험이었다. 피터는 이 체험의 핵심이었다. 현수막에는 말하는 돌고래 피터!’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었다. 나는 피터의 옆에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피터에게 다가왔고 내가 수신호를 주면 피터는 그에 맞춰 말을 했다.

 

, , , !” 피터가 이렇게 외치면 체험의 사회자는 옆에서 장단을 맞춰주는 식이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여러 사람이 체험을 마치고 돌아갔다. 내가 피터의 눈을 보았을 때 처음 피터를 마주했을 때의 그 눈과 똑같았다. 피터의 눈에는 바다가 서려 있었다. 이런 생각이 더 깊어지기도 전에 이 행사의 최고 귀빈이었던 국무총리가 왔다.

국무총리가 피터에게 왔을 때 회장이 동행했다. 회장은 이 돌고래가 우리 회사에서 가장 자랑하는 돌고래라며 연신 침을 튀겨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해졌다. 국무총리가 피터의 앞에 섰고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팀장이 나를 툭툭 쳤다. 나는 피터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 , 피터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니 묘한 질투심이 생겼다. 그러나 팀장은 나를 다시 한번 쳤다. 그렇게 여러 번, 팀장은 피터에게 구비된 40개의 단어를 모두 국무총리에게 보여줄 심산인 것 같았다. 계속되는 감정 노동에 내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피터와 국무총리, 회장이 사진을 찍고 마무리가 되어갔다. 이제 내 역할은 피터가 날뛰지 못하도록 피터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는 것만 남았다.

내리쬐는 햇빛이 내 눈을 가격했다. 나는 하얀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때 국무총리가 피터를 쓰다듬으려 했다. 총리는 흘러내린 옷소매를 위로 올리기 위해서 팔을 어깨 위까지 올렸다. 내 손은 피터에게 닿지 못한 상태였다.

 

-

 

물속에 빨간 물감이 번졌다. 그러나 물감이 퍼지기도 전에 미끄러운 꼬리가 물을 휘저었다. 나는 이상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돌고래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매끄러운 피부, 은빛 총알. 총알이 총리에게 꽂혔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긴급 대원이 다가와 마취 총을 쐈다. 물속을 마구 휘저었던 총알은 회전을 멈췄다.

 

-

 

페스티벌은 모두 중단되었다. 인터넷에는 국무총리와 피터, 회사의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수백 개의 기사가 나왔다. 피터를 향한 비난, 피터를 향한 옹호가 뒤섞였다. 회사는 해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해고되었다. 회사는 나에게 책임을 돌렸다.

나는 며칠 동안 습관적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피터가 어떻게 되었는지, 피터가 살아있는지, 피터는 밥을 잘 먹는지, 피터가 울고 있지는 않은지 모든 게 걱정되었다. 회사는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아쿠아리움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피터가 괜찮다는 말.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그러나 회사는 절대로 나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회사 앞에서 약 3주간 일인 시위를 벌였다. 피터의 생존 여부를 알려달라는 팻말을 들고서 멍하니 서 있었다. 시위는 어느덧 의무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의무를 다하러 아쿠아리움에 가는 중이었다. 회사 앞에서 어떤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돌고래 보호단체 소속이라고 했다.

 

-

 

우리는 카페에 갔다. 식어가는 커피잔을 바라보면서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의 정적 후에 드디어 그가 말을 꺼냈다.

 

피터 전 책임자 맞으시죠?”

. 맞아요.”

몇 주 동안이나 피터 때문에 OO 아쿠아리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고 들었어요.”

. 그것도 맞는데요.”

저희가 이번 사건 이후로 감사를 나갔거든요.”

.”

다름이 아니라. .” 그는 목이 타는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이걸 보실 수 있을까요?” 그가 나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가 보여준 것은 CCTV 영상이었다. 영상 속 날짜는 2주 전이었다. 흑백 화면 속에 피터가 있었다. 나는 얼른 스마트폰을 내 얼굴에 붙이다시피 가까이 뒀다. 바다에서 온 피터는 콘크리트 수족관 안에 갇혀있었다. 피터는 물속에 있었다. 물거품이 위로 솟을 때를 제외하면 화면은 변화가 없었다. 정지된 화면처럼 가만히 있는 피터와 대조적으로 화면 아래의 시간은 계속해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갔다. 그리고 피터는 계속 물속에 있었다. 어느새 물거품은 솟지 않았다. 화면 속 시간이 두 시간가량 흘러갈 때까지 피터는 올라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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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태엽 장치 돌고래는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가라앉는다. 피터에게 내 손이 닿았다면 피터는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태엽을 달아준 것은 누구일까. 피터는 내가 죽였다. 아니 피터는 우리가 죽였다. 화면 속의 너를 보며 가는 시간조차 잡을 수 없는 지금. 내게 스쳐 가는 지난 2년간의 주마등.

 

박효준(국문 16)
박효준(국문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