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박정대 시인은 <혜화동, 검은 돛배>라는 시에서 “자전거 바큇살 같은 11월 그녀는 술이 먹고 싶다고 노을이 지는 거리로 나를 몰고 나간다 내 가슴의 둔덕에서 염소떼들이 내려오고 있다”고 읊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난 시인이 서울의 혜화동에서 그녀를 만나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11월 노을 지는 혜화동에 염소떼를 몰고 나타난 사람이 시인이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혜화를 새로 만난다. ‘검은 돛배’로 은유화한 혜화동을 타고 이 가을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은유, 모티프, 이미지, 리듬을 타고 우리는 진부한 일상을 떠나 다른 세계로 나간다. 시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밝혀준다.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유와 이미지, 나만의 어법을 발견해야 한다. ‘죽은 은유’로는 나를 찾기 어렵고 낯선 세계로 나가지 못한다.

제53회 성대문학상 공모전 시 부문은 올해도 성황을 이루었다. 157명이 363편의 시를 응모했다. 이렇게 많은 학생이 시를 쓴다는 것이 놀랍다고 그랬다. 우리 청춘은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가 보다. 내면에서 벅차오르는 것이 있는 것이다. 청춘, 불안, 두려움, 외로움, 아픔, 그리움, 사랑, 이별, 연대 등 수없이 많은 상념과 에피소드가 피처럼 흐른다. 많은 응모작은 일기나 떠오른 단상을 단지 행을 나누기만 하면 시가 된다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다. 시는 혼자 중얼거리는 넋두리도 아니다. 가능하면 ‘나’를 내걸지 말고 말하는 법을 취해 보기 권한다. 

시는 타자를 향하면서도 독창적인 어법, 발화법을 원한다.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시인들이 어떻게 자기 언어를 획득하게 되었는지 엿볼 필요가 있다. 자유시도 나름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단순한 감정의 나열이나 푸념이 아닌 것이다. 언어가 하나의 양식을 갖는 과정은 치열한 습작이 요구된다. 

이번에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오랜 습작 경험을 통과하여 만들어진 것이 느껴진다. <담쟁이덩굴>은 덩굴처럼 길이가 긴 호흡과 시조의 절제된 어법을 얽어서 담쟁이의 생태를 표현했다. 어떤 상황도 견디고 넘어서 막무가내로 밀어가는 담쟁이덩굴의 집요한 의지를 지구력 있는 사유와 호흡으로 잘 끌고 갔다. 강, 물, 아이, 유년, 롤러스케이트, 시간, 선이라는 이미지들도 유장한 담쟁이의 운동성을 경쾌하고 신선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다른 작품 <메아리의 무늬>도 좋다. 신뢰가 가고 미래가 기대된다.

우수작 <유령 자매>는 서늘하고 유니크하다. 이 시대 청춘의 처지 혹은 ‘여성 자매’의 상황에 대한 통렬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소위 뉴웨이브 시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시적 당대성을 구현하고 있다. 내공이 만만치 않다. 시인의 다른 작품 <너희 우리>, <코르시카 섬>도 상상력과 사유가 넓고 깊고 유연하다. 청춘의 성장통을 말하면서 거기에 속박되지 않고 거침없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여기의 불안과 고통을 기꺼이 전복해낼 것이다. 

가작 <옷깃 대신 이름을 스친다면 말이야>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자기 정체를 윤기나게 보듬어가려는 간절한 그리움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상대를 두고 말을 거는 어투와 경쾌한 어법이 이런 주제가 자칫 감상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며 담담하게 이끌고 있다. 이것도 이 시인이 시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이어서 신뢰감을 준다. 

입선하지 못했지만 인상에 남는 작품이 여럿 있다. “이담에 죽으면 복사뼈에 나무를 기를 거야/ 봄이면 발갛고 흰 복숭아꽃도 피워내고”(뼈)라는 구절은 마음에 남아 울린다. <밤에 숨 쉴 곳을 잃었습니다>의 시인은 <사이와 공간>과 함께 경계를 탐구하는 자기 세계를 갖고 있었다. <입추>, <오리지널의 세상>, <자서>, <당신과 합정 사이>, <깨진 거울에 대한 고찰>, <가루>, <무지개색 폭포 소리가 들리는 글> 등도 기억에 남는다. 언급하지 못한 더 많은 작품들이 다 나름의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쓰기를 멈추지 말기 바란다.

시를 쓰는 사람들, 광영 있으라. 

                                                                                                                                                                                                                                                                김원중(영어영문학과)·정우택(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