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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자매

김진숙(인과계열 20)

 

동생은 괴롭다는 말을 알지도 못할 적부터 자해를 했다.

금이 쩍쩍 가서 좋아하는 동화책을 다 담지 못하는 낡은 책꽂이가 서러웠고

그 튼튼한 목재가 다 부서지도록 손을 휘둘렀던 아빠의 취기가 미웠을테다.

우리 자매는 티비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오직 환상동화만이 가득한 집에 덩그러니 갇혀 있어서 그게 자해인 줄도 몰랐다.

 

물어뜯은 손톱으로 온몸을 피가 나도록 긁었던 어제들.

때로는 울음으로 때로는 피 젖은 휴지로 코가 단단히 막힌 채

입으로 텁텁한 숨을 쉬며 어렵게 내일을 남겼다.

 

아마 우리는 우리가 아니고 싶었나봐.

생존이라는 장엄하고도 지루한 숙명을 지닌 육체를 다 긁어 없애버리고

다정한 여자애의 이불 아래 잘 웃는 유령 자매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 자란 몸에게 아직도 우느냐며 혼나는 게 무서워서

사지를 부러뜨리고 자라지 않은 척.

 

그는 왜 우리를 반쯤 죽여놓고 사랑한다며 가슴을 내밀었을까

왜 우리는 짐승에게서 태어나고서도 사람임을 증명받으려 안간힘을 부렸을까

왜 우리는 지을 줄도 모르는 죄 앞에 무릎꿇고 어리고 뜨거운 목구멍을 억지로 빼앗겨야 했을까...

 

동생은 평소에 물을 자주 마시더니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잔뜩 쏟아버렸다.

나쁜 패턴의 역할극을 또 시작해야겠구나

네 역할은 세상이 다 무너지도록 거대한 울음과 무거운 비명을 주머니에서 꺼내 늘어놓는 거였고

나는 그걸 죄다 사다가 입안에 욱여넣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먹어치웠지.

눈물이 지나간 일대는 더럽기 그지 없으니까. 축축하고 뜨거운 것은 금방 썩어빠지기 마련이니까.

시체처럼 덤덤하게 코피를 닦는 내 몸짓에 너는 이유 모를 죄책감과 외로움을 느꼈고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벌초 때 따라갔던 할아버지의 봉분 아래 뭐가 묻혀있는 줄도 모르면서,

다람쥐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묻어둔 도토리가 저만큼이나 숨겨져 있다고 했던 내 거짓말을 아무 의심없이 믿었으면서,

죽는 게

버리는 게

뭔지도 도대체 모르면서 그렇게 말했다.

 

기적처럼 자란 네가 그렇게 며칠을 뒤채일 줄 알았다면

나는 그냥 세상을 버티지 말고 너와 함께 울어주는 거였는데.

쓰러지는 거였는데.

이 수치스러운 울음을 네가 먼저 터뜨리게 두지 말고 내가 먼저 더러워지는 거였는데.

너는 둘로 태어나고서도 혼자 울었다. 평생을 혼자 울었다.

그리고 더는 울지 않는다.

나는 그게 너무 서러워서 이제야 혼자 몰래.

 

김진숙(인과계열 20)
김진숙(인과계열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