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여준 기자 (yjyj0120@skkuw.com)

첫 방중 활동 때 소재를 찾으면서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천문학, 도시계획학을 넘어 평생 그 존재조차 몰랐던 학문까지 소재로 거론될 때, 고고학이 아이디어로 등장했다. 예전 기사와 소재가 겹치는지 확인하려 성대신문 페이지에 고고학을 검색하자 ‘수중 고고학’이 등장했다. 상상도 못한 소재가 등장하면서 주변 사람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 기사는 마치 “어지간한 소재는 이미 다 썼으니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듯했다. 그 엄포가 너무 단호하게 들린 나머지 나도 웃음이 나왔다.

이번 기사로 이제 나도 4개의 소재를 후대 성대신문 기자 아무개에 앞서 차지했다. 2025년의 누군가는 내 기사 탓에 머릿속에 떠오른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포기 해야 할까. 5년도 전에 쓴 기사 때문에 쓰고 싶은 소재를 못 쓰게 될 누군가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고 싶다. “죄송합니다, 먼저 썼습니다.”

죄송한 마음은 정말 크다. 귀중한 소재를 내가 헛되이 소비하고 만 게 아닌지 후회가 들기 때문이고, 미래의 누군가가 같은 소재로 나보다 더 훌륭한 기사를 써낼 수 있지 않았을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몇 소재는 특히 시의성을 갖추기에 참 좋아서, 내 기사 때문에 소재를 포기할 아무개는 더욱 야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소재를 소비한 내 기사는 항상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어떤 기사는 더 정확히 썼을 수 있었고, 어떤 기사는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번 기사도 나름 최선을 기한다고 최대한 여러 전문가의 말씀을 청취했다. 그랬음에도 여전히 확신이 없다. 여론조사나 이번 버블 경제처럼 전문가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한 분야는 기사화하기 참 고통스럽다. 반도체, 경제, 통계 등 내가 전공하지도 않는 학문을 다루며 정확성과 깊이를 모두 잡으려니 항상 내 역량의 한계가 절실히 와 닿았다. 수습기자 기간을 끝내고 쓴 수습일기에 나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탄한 뒤로 몇 개월, 그때 그. 자리에서 난 고작 몇 걸음 정도를 뗀 것 같다. 이런 내가 귀중한 소재를 먼저 썼으니 죄송해 마땅하다.

“온갖 뉴스를 만들고 온갖 뉴스를 봐야 원하는 뉴스를 향해, 닿지는 않아도 수렴한다.” 이 말을 내뱉은 뒤로 신문사에서 참 많이 휘청거렸다. 내 삶의 태도와 저널리즘 가치관 모두가 그랬다. 기사가 너무 어렵다고, 편향된 것 같다고, 꾸준히 지적받으면서 조금씩 정답에 다가가려 노력 중이다. 그동안 내가 쓴 소재와 기사가 이런 흔들림의 동력으로 쓰여 안타깝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입장도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윽고 모두가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게 돼 보답하겠다고, 5년 뒤에 맛있는 간식이라도 사들고 신문사를 찾겠다고, 이 글을 읽을 리 없는 아무개 씨에게 용서를 구한다.

“지면을 허투루 쓰고 있지 않나요?”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아무개 씨가 계속묻는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기다려주세요. 노력하겠습니다. 시간도, 지면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황여준 기자yjyj0120@skkuw.com
황여준 기자
yjyj0120@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