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지우 편집장 (wldn9705@skkuw.com)

얼마 전, 발렌타인데이. 편의점 앞에는 보란 듯이 화려한 초콜릿이 즐비하다. 명동 한복판에는 꽃다발과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무장한 연인들이 여럿 보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 날 무엇을 보았는가. 평소와 다름없지만 조금은 들뜬 그 날, 기사에서 우연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을 접했다. 카카오 농장에서 눈물 섞인 초콜릿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16세 미만의 나이에 카카오 농장으로 끌려가 수년간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한다. 무게가 45kg이 넘는 카카오 열매 자루를 나르고, 보호 장비는 사치인지라 맨몸으로 농약을 뿌리는 일에 투입된다. 카카오나무에 올라가 '마체테'라고 불리는 큰 칼로 카카오 열매를 자르는 일을 한다. 전 세계 코코아 공급량의 45%를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이뤄지고 있는 아동 착취다.

45%라는 숫자가 두렵다. 전 세계는 연결돼있는지라, 누가 저 45%에 속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겠는가. 

더 무서운 숫자가 있다. 지난해 미국 시카고대학 연구팀은 2018~2019년 아동 노동자 156만 명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노동한 것으로 집계했다. 대부분 5~16세인 이들 중 40%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코트디부아르는 멀다. 그 나라에서는 아동들의 40%가 학교에 다니지 않으며, 카카오 농장으로 끌려가 국제노동법과 유엔 협약 위반을 의심케 하는 '노예 노동'을 당한다. 한국의 아이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같은 아이들의 고통을 우리는 저 멀리 떨어진 채 쳐다본다. 

사실 저 먼 서아프리카의 나라의 아이들을 보고 연민과 같은 감정의 동요가 일어날 수는 있어도, '나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생각을 갖기는 힘들다. 우리는 아이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추지도 않았고, 애초에 아동들이 겪는 고통에 우리는 일조하지 않았기에 무고하다는 생각에서다. 『타인의 고통』 저자 수전 손택의 말처럼,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글로벌한 지구촌 사회는 모두가 연결돼있답니다'라는 21세기 강령을 피부 속 깊이 새기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자도생하기에도 힘이 드는 지금의 사회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민의 수준에서 그치면 안 된다. 우리가 가진 능력의 부채를 망각하면 안 된다.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대학에 입학해 오랜 기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경제적이고 관계적인 지지, 또는 우연한 행운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들은 늘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누군가는 외친다. 그 누군가는 소위 '무능력자', 혹은 '저능력자'에게 연대할 책임을 가질 의무를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된다. 자신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능력을 갖췄고, 능력이 없는 이들은 본인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즉 능력위주사회의 치명적인 위험성이다. 

마체테를 휘두르며 카카오를 따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 태어난 것은 순전히 우리의 운 덕분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봐야 한다는 수전 손택의 역설은 오늘날 메리토크라시에 날카로운 화두를 던진다. 

김지우 편집장wldn9705@skkuw.com
김지우 편집장
wldn9705@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