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장현 기자 (zzang01@skkuw.com)

초기에 기대 모았으나 오랫동안 부진
스마트 기기의 보편화와 함께 성장
구독제 통해 진입장벽 낮춰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을 남겼다. 훌륭한 격언이지만 오늘날 그 후손들의 독서량은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과 대비해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10.8권에서 7.5권으로 줄었고, 책을 1년에 한 권이라도 자발적으로 읽은 사람의 비율은 65.4%에서 55.7%로 감소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증가한 지표가 있다. 바로 전자책 이용률이다. 9년 새 11.2%에서 16.5%로 늘어난 전자책 이용률, 20여 년 전 처음 등장한 전자책은 어째서 이제야 그 매력을 뽐내게 됐을까.

만년 기대주’에 그쳤던 전자책 
1971년, 미국의 철학자 마이클 하트가 독특한 계획을 구상했다. 인류가 여태껏 쌓아온 자료를 모아서 전자 정보로 저장하려는, 이른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였다. 인쇄술을 발전시켜 지식 확산에 혁명을 가져온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딴 이 계획은 전자화된 문서를 인터넷에 저장하고 배포했다는 점에서 전자책의 시초가 됐다. 

이후 전자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전자책은 꾸준히 발전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부터 책의 내용을 담은 CD가 발매됐고, 곧이어 *PC통신을 통해 책 내용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시작됐다. 2000년대 초에는 인터넷이 급속히 대중화되며 전자책이 크게 주목받았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전자책 기업들은 “2005년에 전자책이 전체 출판 시장의 10%를 차지할 것”이라며 전자책의 보급으로 출판 혁명이 일어난다고 장담했다.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전자책은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2010년대 초까지 전자책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2010년에 전체 전자책 단말기의 누적 판매량이 10만 대를 밑돌았고, 2013년에도 국내 도서출판 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그쳤다. 종이책의 질감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쉽사리 전자기기를 독서의 수단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자책 단말기가 따로 필요하다는 불편함도 문제였다. 원광대 행정·언론학부 권호순 교수는 “소비자들은 전자책을 보기 위해서 *전용 단말기를 따로 구입해야 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며 전자책을 볼 이유가 없었다”고 당시의 단말기 문제를 설명했다. 

전자책의 구세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2010년대 말, 마침내 전자책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전자책 플랫폼 앱의 흥행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밀리의 서재’의 누적 회원 수는 현재 250만 명 이상이며, ‘리디북스’에는 누적 판매액이 1억 원 이상인 작품이 470여 종 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주요 대형서점도 대부분 전자책과 자체 독서 앱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자책의 부상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상용화가 큰 영향을 줬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는 “이전에는 전자책을 읽기 위해 전용 단말기가 필요했지만, 스마트 기기가 보편화된 지금은 다르다”며 추가적인 기기 없이도 간편한 독서가 가능해진 것이 전자책 시장이 확대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전자매체의 활용에 익숙해진 사회 분위기도 독자들이 전자책에 친숙해지도록 도왔다. 오늘날의 *MZ세대 소비자는 전자기기를 통해 글을 읽는 데 익숙하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MZ세대가 기술에 대한 거부감 없는 태도와 다양한 앱을 사용해보는 소비 성향을 전자책 이용에 한껏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기술적 개선과 소비자 인식 변화에 발맞춰, 생산자 또한 전자책의 종류와 양을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여 오늘날의 전자책 시장이 조성됐다. 

‘구독’의 시대, 독서도 마찬가지
넷플릭스의 대성공은 콘텐츠 시장 전반에 구독경제 트렌드를 촉발했다. 이는 전자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밀리의 서재, 리디셀렉트 등 주요 전자책 유통사들이 월 구독제 형태로 전자책을 제공한다. 접근성이 높고 많이 읽을수록 저렴하다는 구독제의 특징이 오늘날 소비자들의 소비 경향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권 교수는 “제한된 비용으로 한정된 책을 구입하던 ‘소유’의 개념이 약해지고, 편리한 접근성과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는 ‘공유’의 소비 경향이 강해졌다”며 “가격 장벽이 낮고 무제한으로 전자책을 이용할 수 있는 구독제는 이러한 소비 경향을 간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독제가 이용자의 독서량을 늘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YES24가 자사 전자책 구독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용자의 73.3%가 구독 후 책을 더 많이 읽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구독제가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백 대표는 “구독제는 이용 가능한 전자책 권수에 비해 가격이 매우 저렴하긴 하지만, 첫 달 무료 체험 이후 유료로 전환해 계속 사용하는 이용자의 비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며 지속성에 우려를 표했다. 신간을 보기 어렵다는 점도 구독제의 단점이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수익성이 약하기 때문에 작가나 출판사가 구독제 플랫폼에 신작을 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백 대표는 “전자책 플랫폼에서 적정한 수익 비율로 투명하게 정산해, 구독제가 저자와 출판사에도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가볍고 손쉽게 맞춤형 독서를
평소 전자책을 애용하는 박이현(통계 16) 학우는 “무겁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어서 편하다”며 전자책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처럼 전자책을 이용하면 시공간적 제약 없이 방대한 종류의 책을 읽을 수 있다. 전자책이 ‘손 안의 도서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읽을 때 편리할 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의 제약이 적다는 점도 전자책의 장점이다.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 황호덕 교수는 “배송이 오래 걸리는 외국 서적이나 구하기 어려운 절판 서적이 필요한 경우에 전자책으로 확보할 수 있어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며 편리함을 밝혔다. 

전자책은 글자 크기와 자간 등을 맞춤형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중장년층에게도 매력적이다. 노안으로 인해 종이책의 작은 글자를 보기 어려운 독자도 쉽게 설정을 조정해 독서 피로도를 낮출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음성으로 들려주는 오디오북 기능은 눈으로 책을 읽기 어려운 여건의 독자에게 더욱 효과적이다. 

전자책이 그리는 미래
전자책은 다양한 형식으로 정보를 보여줄 수 있다는 특성상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채팅 형태로 책의 내용을 들려주는 ‘챗북’도 등장했다. 이에 대해 백 대표는 “독서 선호도가 낮은 독자에게 흥미를 느끼게 해 원서를 보도록 유인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전자책이 언젠가는 종이책을 대체하게 될까. 이는 전자책 등장 초기부터 대두된 오래된 논제다. 한때 종이책의 종말이 예고되기도 했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전문가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권 교수는 “종이책과 전자책은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 기술이 지금보다 고도화된다고 해도 전자책과 종이책은 서로 보완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봤다. 백 대표 또한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에도 라디오가 건재한 것처럼, 종이책과 다양한 형태의 전자책은 공존하며 상생할 것”이라며 조화로운 미래를 전망했다. 
 

*PC통신=개인용 컴퓨터를 다른 컴퓨터와 전화 회선으로 연결해 자료를 주고받던 통신 네트워크 서비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많이 사용됨.
*전용 단말기=전자책 독서 용도로 만들어진 기기. 반대로 범용 단말기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하며 전자책 독서 기능이 포함된 태블릿PC 등의 기기를 말함. 
*MZ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말로, 현재 소비 시장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세대로 알려짐.
 

국내 첫 전자책 단말기 '하이북'
국내 첫 전자책 단말기 '하이북'
ⓒ중앙일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