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 이승호 외부기자 webmaster@
일러스트 | 이승호 외부기자 webmaster@

이번 학기에도 많은 학생들이 내 수업 <사랑과 문학>을 수강신청 해주었다. 내가 이 수업을 교양과목으로 강의한 지도 십년은 된 듯하다. 처음 이 과목을 개설신청 할 때 강의명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는 것에 대한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최고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 강좌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닐까 해서였다. 상아탑 안에서 사랑은 왠지 유치하거나 사치스런 단어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망설이며 시작된 과목이지만 지금은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두루 만나는 내가 애정하는 수업이 되었다. 프랑스문학 전공수업에선 원서를 해석하고 작품을 분석하고 문학이론을 공부하기 바쁘다면 이 수업에선 문학이란 창구를 통해 실질적 삶, 현재적 사랑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과 잠시 숨고르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저서 『사랑의 빛깔들』도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듣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사랑이란 단어에 대한 끌림이 있었을 것이다. 허나 소설을 읽어야 하고 작가에 대한 탐구를 해야 하므로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 말미에 주어지는 토론주제에 대한 학생들의 글들은 진솔하고 뭉클하기도 해 고마울 때가 많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 원제는 ‘하나의 인생une vie’인데 ‘여자의 일생’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 에선 주체를 상실한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한 환상과 무지가 주인공의 불행한 일생의 원인이라는 점을 꿰뚫어 보았다. 또 소설말미에 나오는 문장,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에선 작가의 염세적 사고가 녹아있어 젊은 학생들에겐 크게 어필하지 못할 것 같았음에도 환상은 버리되 희망은 버리지 않겠다고, 불행 속에서도 얼마든지 희망을 찾을 수 있음에 동의한다고 평을 달아주었다.

스탕달은 ‘행복’을 단순히 소원하는 것을 넘어 삶의 지향으로 승격한 작가다. 그것은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인생관으로 정의되는 ‘베일리즘’ - 본명 앙리 베일에서 파생된 단어 - 의 토대가 되었다. 그의 행복추구는 자유로운 지성의 훈련과 정열의 발산에 주력한다. 그 결과 소설 속 주인공들은 권력과 사랑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과 흑』의 주인공은 영민하면서 출세욕 강한 한미한 가정의 청년이다. 출세를 위해 당시 유망직업인 성직자의 길을 택하고 귀족여인들을 만나면서 사랑을 성공의 도구로 삼는 야망의 젊은이다. 학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계층 간의 벽을 실감하며 우리 시대에 성공을 위한 길은 무엇일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비추기도 한다. 또 주인공의 흑심으로 시작된 정열적 사랑에의 행보를 이해하거나 비판한다. 한편 이른바 ‘소확행’을 원할 때 주인공의 야망과 출세욕은 걸림돌이라는 견해도 신선했다.

반면 스탕달의 에세이집 『연애론』에 대한 관심은 항상 뜨겁다. 오래 전 쓰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감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치 않는 인간의 근원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많은 실연을 경험하며 터득한 사랑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책의 키워드 중 하나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아름다움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결정작용’일 것이다.

이 강좌는 한두 해 후면 더 이상 개설되지 않을 것이다. 내 정년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이러저러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이 수업에 대한 소회를 말하게 되었다. 이 주제로 타 대학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대학에선 온라인 강의라 학생들의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는 점이 무척 아쉽다. 한 학생이 설렘의 미소를 머금고 강연장을 나가는 모습에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라는 말이 특히 좋았다고 했다. 그렇다 오늘 사랑이 내 곁에 없다고 느껴져도 혹시 모를 내일의 사랑에 대한 희망은 품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 포기하지 않는 청춘의 사랑과 열정이 수월치 않은 현실의 에너지원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이지순 교수프랑스어문학과
이지순 교수
프랑스어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