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수진 기자 (waterjean@skkuw.com)
일러스트 | 김지우 기자 webmaster@

천문 현상은 시·공간을 내포하고 있어
고천문 기록이 현대 천문 현상 규명에 도움 돼

 

인류는 오래전부터 하늘을 우러러봤다. 머리 위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향한 호기심은 여러 형태로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진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시간에 살아간 그들이 바라본 하늘은 어땠을까. 하늘의 역사를 밝히는 고천문학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하늘에 대해 알아보자. 

과거의 하늘을 추적하는 큰 망원경
천문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문 현상을 관측해 실제 하늘의 변화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큰 망원경이다. 큰 망원경은 더 멀리 있고 더 어두운 천체를 볼 수 있게 한다. 이는 천체와 떨어진 거리만큼 과거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고천문학은 천문 연구에 있어 큰 망원경의 역할을 한다. 현대의 천문학자가 오래전에 나타난 천체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듯 고천문학은 남겨진 관측 기록, 천문학적 유물 등을 통해 천문 현상을 규명하고 천문이 문명에 준 영향을 연구한다.

고천문학의 다양한 갈래
고천문학은 주어진 고천문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고고천문학 △역사천문학 △천문학사 △민속천문학 등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 중 고고천문학은 천문학과 고고학이 접목된 분야로 문헌 기록이 아닌 유물·건축물 등 물질 증거의 천문학적 특성을 밝힌다. 서양의 경우 거대한 암석이 배열된 유적인 스톤헨지가 대표적인 고고천문학의 연구 대상이다. 고대인이 태양을 관측한 증거로 여겨지는 스톤헨지의 가운데에서 일출·일몰을 바라보면 그 위치와 일치하는 암석 두 개를 발견할 수 있다. 스톤헨지의 기원이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스톤헨지의 천문학적 시사점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 고고천문학이 성장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한편 역사천문학은 고천문 기록을 현대 천문학적 방식으로 재가공해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한다. 이는 역사서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것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천문 현상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적 위치를 내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태양이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은 관측 주체의 시간과 공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현상 중 하나다.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양홍진 연구원은 “역사서에 일식 기록이 남아있다면 현대 천문학의 천체역학적 계산으로 기록의 진위를 확인해 해당 역사서의 신빙성을 검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식을 실제로 관측하지 않고서는 해당 기록을 지어내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낮에 금성이 관찰된 기록을 통해서도 역사서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금성이 태양 주변을 공전해 밝기가 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계산한 금성의 위치를 당시 낮에도 보일 정도로 금성이 최대로 밝은 시기와 비교한다면 해당 기록의 신빙성과 더불어 정확한 시기를 계산할 수 있다.

문화유산과 우리나라 고천문학 
그렇다면 우리 선조의 천문 연구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이는 오늘날 남겨진 여러 문화유산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문헌 △역법 △유물·유적 △천문의기와 같은 문화유산은 과거 사람들이 천문학적 지식을 얻은 방식을 보여준다. 삼국사기나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문헌은 과거의 천문 관측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하늘의 별자리를 28개의 구획으로 나눈 28수는 과거 천문 관측의 기본 틀로 사용됐다. 따라서 우리 선조의 천문 관측법을 해석하기 위해선 28수에 대한 이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8수는 북두칠성과 함께 우리나라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별자리이기도 하다. 이에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박창범 교수는 “혜성과 같은 천문 현상이 관측된 위치를 기록할 때 ‘각수(角宿)에서 3도 떨어졌다’는 식으로 *적경을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한반도 전반에 고르게 분포한 고인돌 역시 우리나라 천문학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한 유물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유럽의 고인돌이 주로 남동쪽을 향해 배치된 것과 달리 주변 하천과 능선 등 자연환경을 반영해 다양한 방향으로 배치됐다. 반면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겨진 홈인 성혈(性穴)은 대부분 남동향에 위치한다. 남동향은 한 해의 시작점인 동짓날에 해가 떠오르는 방향이다. 이는 오늘날 태양의 위치가 1년을 주기로 움직인다는 태양의 연주 운동으로 설명되는 현상으로 중요한 천문학적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고인돌이 어느 방향으로 배치돼 있든지 성혈이 남동향이라는 일정한 방위로 새겨진 것은 선사시대에도 태양의 움직임을 관측했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와 오늘의 하늘을 잇다
현대 천문학의 기술과 이론만으로 하늘을 관측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 천체가 변화해 온 긴 시간에 비해 우리가 천체를 관측해온 시간은 매우 짧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의 관측 기록을 연구하는 고천문학은 짧은 관측 기간에서 비롯되는 현대 천문학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천문 현상 규명에 이바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풍부한 고천문 기록을 보유한 국가다. 이는 왕실이 주도적으로 천문학을 담당한 결과다. 양 연구원은 “오랫동안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절기를 알 수 있는 천문학은 국가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며 왕실에서 천문 현상을 관측한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임명된 관리를 통해 하늘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파악해 다량의 전문적인 천문 기록을 보유할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왕조가 자주 변하지 않고 비교적 오래 유지돼 천문 기록 양식에 일관성이 확보됐다.

이렇게 확보된 고천문 자료를 바탕으로 현대의 천문 현상을 규명한 대표적인 예로 물병자리 변광성 연구가 있다. 조선 시대에 제작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고려사 의 기록을 현대의 천문도와 비교해 시간에 따라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이 폭발한 시기를 규명한 것이다. 해당 연구를 맡았던 양 연구원은 “별의 밝기를 물건의 크기에 비유해 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1073년과 1074년에 걸쳐 2번의 폭발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별은 폭발할 때 폭발 에너지를 내는데, 이 과정에서 별의 밝기가 변화한다. 따라서 별의 밝기 변화를 관측한 기록을 통해 별이 어느 시기에 폭발했는지 특정할 수 있다.

미래가 기대되는 학문, 고천문학
고천문학은 국내에서 학문으로 자리 잡은 역사가 길지 않아 수행된 연구가 적은 편이다. 이는 앞으로 연구될 흥미로운 주제가 많이 남았음을 의미한다. 예시로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오로라 기록을 들 수 있다. 오로라는 태양 활동이 활발해져 태양의 에너지 입자가 대기로 진입할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태양의 활동 주기와 관련돼있다. 한편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나라 여러 역사서에는 11년을 주기로 오로라 관측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태양의 에너지가 11년을 주기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에 박 교수는 “현대 천문학이 최근에 들어서야 알아낸 태양 활동 주기를 고천문 기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며 “고천문 기록의 분석을 통해 현대에 아직 밝혀내지 못한 규칙이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고천문학의 시사점을 말했다.

석판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
천문관측기 혼천의 사진

 

적경=지구상의 경도에 해당하는 값으로 천체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