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당연히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이지만, 사실 한 가지 더 주목받은 포인트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놀라운 선전이었다. 2020년을 경유하며 코로나19 대응실패와 인종차별 반대 시위 등 온갖 국정의 난맥상이 표출되었음에도, 트럼프는 무려 7,400여만 명의 유권자에게 재신임을 받았다. 이는 그의 재임 기간 미국 사회의 분열이 더욱 심화되었음을 보여준 것이자, 이후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한 셈이다. 

지난 수십 년간 상원의원과 부통령직 등 주요공직을 거친 조 바이든, 그리고 클린턴 혹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오랜 기간 회전문 시스템을 거쳐 온 신행정부의 주요 각료와 백악관 참모진은 기실 트럼프가 그동안 줄기차게 공격해온 “망가진 체제” 혹은 “기득권층” 그 자체이다. 따라서 그만큼 바이든 정권의 대내외 정책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추수하는 복고풍 독트린에 함몰되기 쉽다. 그러나 단명했던 “단극적 순간(unipolar moment)”의 자유주의 컨센서스를 근본적으로 회의했던 트럼프주의자들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내외 정책기조 모두에서 팍스 아메리카나 위기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숙고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외정책 분야에서 “내부자들”의 상식이자 정상 패러다임인 자유패권전략의 오류를 비판한 것은 상당 부분 타당한 트럼프 시대의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고별사에서 자신의 주요 치적으로 임기 중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이 지점만큼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즉 전임 집권세력이 대테러 전쟁의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소위 정권교체 독트린에 대한 기존 엘리트들의 믿음에 통렬한 반성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반개입주의 공약을 지켜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극 체제라는 물적토대가 허물어진 것은 엄연한 구조적 현실이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바이든의 미국이 과잉팽창의 위험이 존재하는 기성 자유 국제주의 대전략으로 회귀하는 것은 파국을 가져오고 말 것이라는 현실주의자들의 경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아가 더 근본적인 국가정체성 차원에서 미국이 보편적 이상을 수호하는 예외적 국가로서 세계의 리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탈냉전기의 기본 가정과 사명의식에 대한 성찰도 요구된다. 특히 선악 이분법을 통해 상대를 악마화하는 예외주의에 내재한 정체성 정치의 위험성을 성찰해야만 한다.

다음으로 국내정치 영역에서도 트럼프 시대는 유사한 형태의 교훈을 제공한다. 2010년대 정치 양극화와 급진적 포퓰리즘의 성장은 사실 제도권 정당들 사이에 강고히 자리 잡은 자유방임주의적 합의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기성 신자유주의적 사회계약의 지속 불가능성이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양대 정당 간 컨센서스에 기반한 미국정치의 맹점이 어디인지, 그 속에서 계급과 인종의 모순이 어떻게 곪아 터지고 있었는지는 트럼프 재임기와 팬데믹 시기를 경유하며 더는 감출 수 없을 만큼 노출되었다. 

결국 관건은 오늘날 정치적 난국의 사회경제적 토대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탈냉전기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신자유주의적 합의의 대안으로서 전후 케인즈주의적 “내장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의 갱신이 가능할 것인가? 물론 이러한 포스트-코로나 시대 새로운 사회계약의 수립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집단면역이 작동해 감염병 대유행이 종식된 후에도 디지털에 익숙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은 자산이 증가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계속해서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는 소위 “K자형” 경제회복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공화당에 자리 잡은 포퓰리즘이 더욱 악성화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토양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개혁가들이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획을 작동시키지 못한다면, 오히려 전간기와 유사하게 반동적 극우세력이 자신들의 배타주의적 민족주의와 권위주의의 기획을 관철하는 역사적 계기로 코로나 이후 환경을 활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새로운 민주당 정권이 과연 오늘날 팬데믹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과거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에 버금가는 개혁정책을 통해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사회경제적 평등이 확대되는 “대압착(Great Compression)” 시대를 재현할 수 있을까? 사상 유례가 없는 1조 9천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경기부양 법안(“American Rescue Plan”)으로 발동이 걸린 바이든표 개혁 드라이브가 앞으로 급진화된 공화당의 저항에 맞서 어떤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러스트ㅣ이승호 외부기자 webmaster@

 

차태서 교수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