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자연스럽게 집어 든 카디건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유난히 선선한 바람에 가볍게 동네 한 바퀴만 돌고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던 발걸음이 자꾸 다른 곳으로 튀는 날. 그런 날이면 가로수 가지에는 어느새 꽃눈이 달려있고, 무심코 지나쳤던 아파트 화단은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비꽃 같은 풀꽃까지 벌써 피어있다. 그제야 아 요새 해가 빨리 뜨더라니, 싶어 핸드폰을 켜면 네이버 로고는 귀여운 그림과 함께 오늘의 절기를 알려준다. 춘분. 봄이란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꽃이야 다른 계절에도 피지만, 하얗고 검은 것이 대부분이던 겨울의 끝에서 피는 색들이 더 극적인지 어째 꽃 하면 봄이고 봄 하면 꽃이다. 늦가을부터 봄 노래를 틀어놓고 봄을 기다리는 내 이상한 취미도 굳이 따지자면 봄보다는 꽃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렇게 벚꽃엔딩을 수백 번쯤 반복해 듣고 꽃병의 꽃을 8번쯤 바꾸고 나면 봄이 온다. 길가의 회양목은 묘하게 색이 밝아지고, 아무 색도 없던 옛 등굣길에는 산수유 노란색이 칠해진다. 성질 급한 벚나무는 제 가지 위의 분홍빛 팝콘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렇게 달에 3만 원씩 꽃에 돈을 쓰지 않아도 길에서 꽃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직 안 돼!’다.

겨울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기다리던 3월이지만, 막상 봄이 다가오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이유는 알고 있다. 벚꽃이 너무 이르게 져버리기 때문이다. 세 계절을 꼬박 기다린 대가는 2주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피어나는 벚꽃을 보면 이 열흘을 완벽하게 누려야겠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이다. 1분이면 도착할 스터디 카페를 굳이 벚꽃이 더 많이 핀 길로 돌아가고, 정면보다 살짝 위를 쳐다보며 걷는 시간은 다른 계절에 비해 훌쩍 늘어난다. 눈에 분홍빛 장면을 온전히 담아내려 하루를 빽빽이 꽃으로 채워보지만 초조함은 가실 줄을 모른다.

정말이지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삼백예순날을 기다린 날들은 열흘 만에 끝나버리고, 남겨진 나는 꽃이 진 자리를 올려다보며 괜한 서운함에 한숨을 내쉬는 봄. 끝이 정해진 아름다움의 허무감을 알면서 또 일 년을 꼬박 그리워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찬란한 계절. 

하얗게 꺼져가는 노을은 눈에 충분히 담지 않아도 크게 슬프지 않다. 해가 다 지기 전에 이 순간을 머릿속에 전부 집어넣어야 한다는 초조함도 덜하다. 내일이면 또 해가 뜨고 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번의 밤과 삼백 번의 밤은 슬픔의 농도가 다르지만, 영원한 밤이 아니기에 절망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노을을 찬란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몇 분 뒤면 밤에 섞여 사라진다는 사실이고, 찬란함이 절망에까지 치닫지 않고 슬픔에 그치는 것은 오늘의 노을이 마지막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다. 피기도 전에 질 것을 걱정 받는 저 꽃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필 것이다. 삼백예순날을 지나, 내 슬픔이 무색하리만치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그래도 역시 올해 벚꽃은 좀 늦게 폈으면 좋겠다. 아직 열흘을 누릴 준비는 안 됐으니까!
 

이승미(경영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