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재원 기자 (magandsloth@skkuw.com)

대마류 의약품 및 거점약국 도입 통해 환자의 권리 증진돼
아프지 않을 권리를 위해 꾸준한 사회적 논의 이뤄져야

당신의 약을 선택하세요! 누구든 손쉽게 필요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요즘, 그 누구보다도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의료용 대마초, 즉 대마류 의약품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이다. 아프지 않을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대마류 의약품, 2년 동안 순항했나
마약류 의약품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마약류관리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마약성 진통제나 일부 향정신성의약품이 이에 해당하며 대마는 국내에서 어떤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18년 12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이듬해부터 의료 목적에 한해 대마의 △매매 △보관소지 △섭취 △수출입 등이 가능해졌다. 

국내에서 사용 허가를 받은 대마류 의약품으로 △에피디올렉스 △사티벡스 △시스매트 캐노메스 △마리놀 등 4종이 있다. 현행법상 대마류 의약품의 국내 생산은 불가하기 때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마류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의사 처방을 받은 후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이하 희귀의약품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다. 

희귀 뇌전증 치료제인 에피디올렉스와 다발성경화증의 경련 완화제로 사용되는 사티벡스는 합법화 이후 실제로 처방이 이뤄졌다. 반면 항암치료 시 구역·구토 증상에 효과를 보이는 시스매트 캐노메스나, 해당 증상과 더불어 에이즈 환자의 식욕 부진 문제에 쓰이는 마리놀의 경우 아직 처방된 사례가 없다. 희귀의약품센터 관계자는 “해당 두 의약품에 대한 신청 또한 현재까지 접수된 바 없다”고 밝혔다. 

2019년 기준 총 608건의 대마류 의약품 처방 중 에피디올렉스가 606건으로 99%에 달한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에피디올렉스는 363건 처방된 반면 사티벡스 처방의 경우 0건으로 감소했다. 이에 대해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강훈철 교수는 “100% *CBD 성분으로 이뤄진 에피디올렉스와 달리 나머지 대마류 의약품의 경우 *THC 성분이 포함된다”며 “부작용을 우려해 처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법안 개정 전까지 대마류 의약품 처방의 효율성과 수급 속도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있었다. 이에 희귀의약품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약품을 수령할 수 있는 지역별 거점약국이 도입됐다. 인천광역시 거점약국 이우철 약사는 “거점약국 선정 후 희귀의약품센터에서 직접 방문해 대마류 의약품의 종류와 처방 방법을 교육했다”고 말했다. 이 제도로 환자는 희귀의약품센터에 대마류 의약품을 신청하면서 수령하고자 하는 거점약국을 지정할 수 있다. 이후 해당 약국으로 배송된 대마류 의약품은 거점약국 약사가 본인 확인을 거쳐 환자에게 전달한다. 

국내에서 대마류 의약품이 처방 가능해짐에 따라 효능에 대한 연구 또한 함께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세브란스어린이병원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에피디올렉스 처방이 일부 유의미한 효과를 거뒀음이 확인됐다. 

환자들을 가로막는 경제적 장벽 
대마류 의약품은 비급여항목으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에피디올렉스의 경우 1병이 약 165만 원 정도다. 소아 환자의 경우 1년에 약 18병이 필요해 한 해 약값만 3000만 원 내외에 달한다. 강 교수는 “환자의 체중에 따라 처방량이 정해지므로 성인 환자의 부담은 더욱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일부터 일부 의약품에 대한 급여 항목이 개정되며 에피디올렉스의 급여기준이 신설됐다. 이에 따라 2세 이상의 뇌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특정 조건에 한해 급여가 적용된다. 
희귀의약품센터의 예산 문제도 꾸준히 지적돼왔다. 지난해 희귀의약품센터에서 요청한 예산은 100억 원대였으나 정부에서 최종 편성한 예산은 29억 원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약 6개월간 지역별 거점약국 운영이 중단되며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도 서울에 위치한 희귀의약품센터를 방문해 대마류 의약품을 수령해야 했다. 부산광역시 거점약국 차상용 약사는 “가까운 곳에서 약을 받아 가던 환자들이 다시 서울에 직접 가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예산 문제로 에피디올렉스 등 대마류 의약품의 사전 물량 확보에도 제동이 걸렸다. 환자가 의약품을 신청한 이후에 해외에 주문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며 실제 약품 수령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예산 감축으로 인해 기존처럼 재고를 비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귀의약품센터 관계자는 “이후 추경 예산이 편성돼 긴급도입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해졌다”며 “현재는 다시 재고량이 확보돼 신청 후 빠른 수령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더불어 거점약국의 운영도 재개되며 이전처럼 지방에서 대마류 의약품을 수령할 수 있다. 이 약사는 이에 대해 “희귀질환 환자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며 “예산이 부족해 사회의 필수 보건의료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일반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대마류 의약품 역시 이를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제때 공급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문제점 있어 
여전히 아쉬운 점은 남아 있다. 많은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CBD 대마오일의 경우 에피디올렉스와 동일한 성분이지만 법안이 개정된 후에도 수입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구매하더라도 국내로 반입하면 마약류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 에피디올렉스의 경우 특정 뇌전증 환자에게만 처방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뇌전증 환자들은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에 CBD 대마오일의 국내 수입을 가능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 대마류 의약품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논문이 발표되며 치매 등의 질환에 대한 처방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인식 개선에 대한 필요성 대두돼 
법안 개정을 통해 대마류 의약품 사용이 합법화됐지만 이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강 교수는 “다른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대마류 의약품의 효과와 부작용을 균형 있게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료대마운동본부 강성석 대표는 “대마에 대한 탈낙인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대마류 의약품이 환자 치료를 위한 의약품이라는 목적에 초점을 맞춰 논의가 진전됐으면 한다”고 부연했다. 

CBD=칸나비디올. 뇌전증 발작에 진정 효과가 있는 대마 추출 성분.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디올. 중독 위험성이 있는 향정신성 대마 추출 성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