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수빈 기자 (tvsu08@skkuw.com)

 

일러스트ㅣ김지우 기자 webmaster@
일러스트ㅣ김지우 기자 webmaster@

코미디의 역할은 웃음을 통한 사회 문제 비판

건강한 콘텐츠 위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 필요해

10년 전 일요일 밤이 찾아오면 선물 같은 <개그콘서트>가 우리의 웃음을 책임졌다. 그러나 <개그콘서트>의 코너 후미를 장식했던 이태선 밴드의 음악은 더 이상 방송으로 들을 수 없다. 거실에 모여 온 가족과 함께 즐기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이제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 매체는 변화했지만 여전히 코미디는 우리 삶과 함께하며 지친 일상에 재치를 더해준다. ‘봉숭아 학당’부터 ‘B대면 데이트’까지 코미디의 발자취와 변화무쌍한 매력을 알아보자.

코미디,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끌다
코미디란 사회의 문제점을 경쾌하고 해학적으로 다룬 극 형식을 이른다. 코미디의 어원인 코모이디아(comoedia)는 떠들썩한 축제를 뜻하는 코모스(komos)와 노래를 의미하는 오이데(oide)의 합성어다. 미디어에서의 코미디는 무성 영화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1920년대 서구에서는 배우의 행동을 과장스럽게 표현한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이 과정에서 찰리 채플린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가 배출되기도 했다.

1926년 한국에서도 최초의 코미디 영화인 <멍텅구리>가 개봉했다. 이필우 감독은 주인공 최멍텅을 통해 세태를 풍자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지만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1950년대에 이르러 다양한 희극영화가 등장하며 코미디 붐을 일으켰고, 코미디는 한국의 주류 장르로 편입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의 코미디는 영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이전과 달리, 드라마나 시트콤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며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가 됐다.

텔레비전 코미디의 역사는 1960년대 KBS의 <유머 클럽>을 시작으로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 등 단편적인 코미디 코너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던 1999년 KBS의 <개그콘서트>는 공개 코미디 형식을 도입하며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공개 코미디는 기존의 개그 프로그램에 방청객을 초대해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방식이다. 이후 SBS와 MBC에서도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지상파 3사가 경쟁을 벌이던 소위 ‘개그 삼국지’ 시대가 형성됐다. 공개 코미디는 높은 인기에 힘입어 수많은 유행으로 대중문화를 선도하며 웃음을 일상화했다. “고~뢔?”, “소~는 누가 키울 거야”, “테니스, 테니스, 스파이크, 리시브…” 등과 같은 유행어는 물론, 희극인 정종철의 옥동자나 정태호의 정여사와 브라우니 등 개성 강한 캐릭터가 탄생했다. 텔레비전 코미디는 사회문제를 경쾌하게 비틀어 공론화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개그콘서트>의 코너 ‘Go! Go! 예술 속으로’는 줄기세포 조작으로 논란을 낳았던 황우석 사건을 패러디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황하지 않고 끝”, 공개 코미디 톺아보기
공개 코미디의 화려한 전성기는 지났다. 지난해 6월에 종영한 <개그콘서트>를 끝으로 지상파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방송국의 구조적인 문제가 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출연자와 제작진 간의 수직적인 관계, 열악한 투자 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공개 코미디의 내용이 관객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류웅재 교수는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정의나 진정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며 “얕은 수준의 비판이나 유행어를 강요하는 듯한 콘텐츠는 수용자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류 교수는 “OTT(Over The Top)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도 공개 코미디의 인기 하락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며 앞으로도 OTT의 영향력 아래 방송 콘텐츠의 소멸 및 공진화가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열정, 열정, 열정!”, OTT 코미디의 화려한 데뷔
코미디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의 OTT 플랫폼을 새로운 무대로 삼았다. OTT란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모바일 기기의 보급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OTT 사용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태보라 교수는 “콘텐츠가 풍부한 OTT를 통해 시청자 개개인이 자신의 유머코드에 맞는 영상을 취사선택해서 볼 수 있게 됐다”며 일명 개인 맞춤형 코미디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심현재(수교 21) 학우는 “모바일 기기로 간편하게 시청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OTT 코미디를 많이 접하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유튜브는 아직 얼굴을 알리지 못한 신예 희극인에게 언제든 열려있는 기회의 땅이다. SBS와 KBS의 공채 개그맨 3명이 모여 만든 채널 ‘피식대학’은 입소문을 타고 채널을 개설한 지 2년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했다. 2000년대 초반의 감성을 재현한 ‘05학번 이즈백’, 산악회 소속의 중년들의 모습을 패러디한 ‘한사랑 산악회’ 등 풍부한 소재를 활용한 코미디 영상을 제공한다. 특히 영상통화로 다양한 인물과 소개팅을 진행하는 구성인 ‘B대면 데이트’는 느끼한 카페 사장 최준이나 거만한 재벌 3세 이호창 등 독보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그 인기에 힘입어 유튜브에서 지상파 안방 예능으로 역진출하기도 했다. 또한 유튜브는 기존 공개 코미디 희극인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이기도 하다. 약 50만 명의 구독자를 지닌 희극인 김대희의 채널 ‘꼰대희’가 그 예다. 그는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대화가 필요해’를 각색해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성격을 더한 ‘밥묵자’ 영상을 공개하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편 2016년 한국에 정착한 넷플릭스는 미국의 코미디 양식으로 인식되던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국에서도 대중화하는데 일조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 명의 희극인이 마이크 하나만을 들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주로 일상생활과 결부된 시사이슈를 소재로 삼는다. 넷플릭스는 ‘유병재: B의 농담’,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공개 예정인 ‘이수근의 눈치코치’ 등의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제작하며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다.

OTT 코미디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류 교수는 “수용자의 취향과 관심사, 이념적·정치적 성향이 이전과는 다르게 빠르게 분기하고 다원화되고 있다”며 “OTT 코미디는 신선함이나 진정성 등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다양한 기대와 욕망을 적절하게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태 교수는 “코미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매체에서의 경쟁이 필요하다”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건강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개그콘서트 마지막회 단체 사진
개그콘서트 마지막회 단체 사진
넷플릭스의 스탠드업 코미디.
넷플릭스의 스탠드업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