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수빈 기자 (tvsu08@skkuw.com)

인터뷰 - 재담소리보존회 최영숙 회장

재담소리는 관중과 함께 호흡하는 종합예술

우리 전통의 재담소리극 널리 알리고파

현대에는 미디어를 통해 간단히 코미디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레코드마저 신문물로 소개되던 옛 시절, 우리 조상은 어떻게 개그를 즐겼을까. 1900년대 초 조선 최고의 스타라고 불렸던 박춘재 명창은 공연물로서의 재담극을 대중화시키며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속에서 우리 민족에게 웃음을 선물했다. 그를 이어 우리의 전통 웃음을 보존·전승하는 데 힘쓰는 재담소리 *예능보유자 최영숙 명창을 만나 재담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재담소리, 한국 전통의 개그와 소리를 담다
일반적으로 재담이란 재치 있는 말이나 이야기를 의미하지만, 작품으로서의 재담이란 재담극이나 재담소리, 재담이야기 등 웃음을 주조로 한 독립적인 공연물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재담소리란 1인 또는 2인이 북이나 장구를 치는 고수와 함께 △가창 △몸짓 △화술로 이끌어가는 *소리극이다. “재담소리는 경기와 서도지역에서 전승된 민요나 잡가 등의 소리를 바탕으로 과장, 방언, 풍자, 해학 등을 활용해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요. 관중과 함께 호흡하는 재담소리는 서울의 판소리이자 오늘날의 코미디 뮤지컬인 셈이죠.” 

본격적인 재담소리는 고종 황제 시절의 박춘재 명창으로부터 유래했다. 당대의 뛰어난 소리꾼이자 재담꾼으로 인정받았던 박 명창은 최초의 경기와 서도지역 소리극인 <장대장타령>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광무대와 같은 당대의 신식 극장에서 박춘재 선생의 재담소리 공연이 오랜 기간 진행됐어요. 작품은 여러 차례 녹음돼 음반으로 나올 정도로 당시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어요.”

오늘날에는 △장대장타령 △각색장사치흉내 △개넋두리 등의 재담소리극이 전해진다. 대표적인 작품인 <장대장타령>은 40분 분량의 소리극으로, 서울 지방의 방언이나 은어 등 조상의 생활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대장타령>은 양반 집안의 5대 독자인 장대장이 부임지로 떠나는 길에 무당 만신을 만나 겪는 일로 구성돼 있어요. 굿거리나 자진모리장단과 같은 서울지방의 무속음악 장단으로 짜여 있는 게 특징이죠.” 이 밖에도 <각색장사치흉내>는 장터에서 생활하는 장사꾼들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낸 작품이며, <개넋두리>는 개의 영혼이 무당의 몸에 들어가 손자 강아지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재담소리 작품들은 엉뚱하거나 과장된 이야기, 말재간, 패러디 등을 통해 청중의 웃음을 유발해요. 관중은 그 익살스러운 말투, 몸짓과 표정에서 재미를 느끼죠.”

복원부터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선정까지, 재담소리보존회의 고군분투
박 명창에 의해 전성기를 누리던 재담소리는 해방 이후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재담소리는 신식문화나 만담에 밀려 잊히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 약 50년 동안 재담소리의 역사를 이을 전수자가 없었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백영춘 선생님께서 재담소리 복원 작업을 시작하셨어요.” 백영춘 명창은 박 명창의 제자였던 정득만 선생으로부터 <장대장타령>을 사사한 바 있다. 그는 재담이 실린 고서적과 고음반, 증언 등을 수집하고 연구해 재담소리를 복원했다. 최 명창은 스승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던 백 명창으로부터 이를 사사했다. 이후 그는 1999년 개인 발표회에서 복원된 <장대장타령>을 성공적으로 대중에게 선보이며 재담소리의 부활을 알렸다. 2008년에 이르러 재담소리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됐다. 

재담소리보존회는 2006년 재담소리를 전문적으로 보존하고 전승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재 재담소리보존회에서는 재담소리를 알리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전국 재담소리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해마다 정기 공연을 열고 있죠.” 전국대회는 2017년 최 명창이 재담소리 예능보유자로 선정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편견을 딛고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아 지금은 전승에 힘쓰고 있어요.” 그는 재담소리전수관에서 후학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담소리가 피울 웃음꽃
재담소리보존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재담소리의 발굴 및 대중화다. 최 명창은 “역사 속에서 잊혀가는 또 다른 재담소리극을 발굴해 대중에게 우리 전통의 재담과 소리를 알리고 싶다”며 대학에도 재담소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과가 생기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재담소리는 우리 전통의 해학과 풍자를 담고 있어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 그는 재담소리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재담소리의 대중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최 명창의 다짐처럼 재담소리의 봄이 우리 곁에 성큼 찾아오길 바란다.

사진 I 서수연 기자 augenblick@
사진 I 서수연 기자 augenb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