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시험 종료 5분 전입니다.’ 언제 들어도 긴장되는 이 목소리와 함께, 시험지를 마지막으로 검토하고 내려놓았던 그때였다. 나는 비로소 풀지 못한, 아니 풀지 않았던 마지막 4문제를 발견했다. 3번이나 확인했는데 무엇에 홀려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보지 못했을까. 내 생에 가장 짧았던 5분 동안, 나는 나를 수없이 자책하며 동시에 한 문장이라도 풀자 다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제출 후에는 우느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평소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았었기에 나는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데 꽤 힘들었다. 다른 것을 탓해보고자 찾았지만 명백한 ‘나의 실수’였다. 그것을 인정하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나는 실수에 두려워졌고, 완벽하지 못한 완벽주의자가 되어갔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완벽하지 못한 완벽주의자의 어느 날,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깐’ <이하이-한숨>

실수를 해도 된다는 말은 나에게 마치 모순 같은 문장이었다. 나를 돌이켜보았다. 지금까지 경험한 나의 실수가 살아가는 데 어떠한 영항을 주었는지, 그것이 정말 실수였는지, 실수는 무엇인지. 그 어떠한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크나큰 실수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소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를 오랜 시간 힘들게 했던 시험에서의 실수는 누군가에게는 ‘겨우’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였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실수가 두려운 이유는 실수를 절대 악(惡)으로 치부했기 때문이었다. 실수는 절대 악이 아니며, 도전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증거였다. 나는 실수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기로 했다. 절대 악이 아니듯 절대 선(善)도 아니기에 실수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하며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했다. 친구가 언젠가 선물해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문제를 안고도 살아가는 법을 배울 것.’ 실수하지 않는 법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실수를 하면서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나는 더이상 완벽하지 못한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완벽함만을 쫓다 보면 결국 놓치는 것이 있었다. 후회하지 않도록 살자는 나의 좌우명에 따라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충실하고, 어쩔 수 없었던 실수를 보완할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놓쳤는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행복을 얻었다는 것이다.  

가끔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나를 칭찬해보고, 실수하더라도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는 게 어떨까?
 

이정은(한교 19)
이정은(한교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