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다솜 기자 (manycotton@skkuw.com)

인터뷰 - HB기획 독고정은 대표이사

독고정은 대표이사의 모습.

 

첨단 미디어아트의 활용으로 배리어프리 공연문화의 새로운 막 열어
앞으로도 지금처럼 혁신적이고 새로운 페스티벌 나다 만들어가고파

 

여기 조금 특별한 예술축제가 있다. 불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공연장에서 무대를 펼치는 뮤지션. 춤을 추며 공연을 통역하는 수어 통역사. 휠체어에 앉아 손을 흔들거나 다 함께 뛰고 춤추며 공연을 즐기는 관객. 이 모든 사람이 하나가 돼 탄생하는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나다’는 우리나라의 대표 배리어프리 축제다. 10년째 페스티벌 나다를 기획해 온 HB기획 독고정은 대표이사는 이 밖에도 복합문화예술공간 ‘네스트나다’를 세워 장애·비장애 예술인의 안정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달 20일, 홍대에 있는 네스트나다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해온 독고정은 대표이사를 만났다

어떻게 공연기획자의 길을 걷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공연기획자의 꿈을 꿔 온 것은 아니었어요. 부모님의 권유로 수능이 끝난 뒤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됐는데, 홍보 관련 업계에 종사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마케팅을 전공하게 됐어요. 당시 외환위기 때문에 미국이나 한국 모두 취직이 어려웠던 탓인지 주변 유학생 모두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자연스레 대학원에 진학해 마케팅과 관련된 미디어 생태학을 전공하게 됐죠.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였어요. 당시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일본 방송사 tvk의 인디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를 맡게 됐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레 인디밴드의 매력에 빠지게 됐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한밤’이라는 한ㆍ일 교류 행사를 열었던 거예요. 재일교포, 일본인, 한국 유학생 등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던 행사였죠. 교류 행사는 매달 마지막째 주 토요일 시부야의 가장 큰 클럽에서 진행됐어요. 처음엔 30명 남짓의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클럽 안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여했어요. 한국 영화 상영회를 열고 다 함께 막걸리를 마시거나 한국 노래에 맞춰 ‘도리도리 춤’을 추기도 했죠. 그때 깨달았던 것이 있는데, ‘한 공간에서 재미있게 같이 놀며 부딪히면 서로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진다’는 거예요. 서로를 진정으로 알게 되면 자연스레 오해나 편견도 사라지죠. 지금도 페스티벌 나다를 기획할 때 어떻게 해야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될지 매번 고민해요. 그래야만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니까요.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옥외광고 관련 일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로 한 아트센터에서 잠시 일을 하게 됐죠. 그 후 본격적으로 예술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됐어요. 마케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저도 아트센터가 다루는 미디어아트에 대해 잘 알아야만 했죠. 그래서 일찍 출근해 책을 찾아 읽고 남는 시간에 스터디를 하며 관련 지식을 쌓았어요. 오전 7시 반 전에 출근해 오후 10시 반이 돼서야 퇴근하는 일 중독자였죠.

페스티벌 나다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한 집단에 소속돼있으면 안정감을 얻을 수 있지만, 연속성을 잃게 돼요. 기획자로서는 연속적인 작업을 해야 실력도 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데, 유행에 맞춘 단발적인 작업만 하다 보니 점차 일에 흥미를 잃었어요. ‘내 열정과 시간을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어느 날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청각장애인이셨던 한 일행분이 TV에 나오는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보고 무심히 물으셨어요. “라이브 공연장에 가면 정말 저렇게 눈물이 나나요?” 그때 처음으로 ‘청각장애인은 정말 공연장에 갈 일이 많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곧이어 ‘청각장애인이 라이브 공연을 즐길 방법이 정말 없을까?’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어요. 조사해 보니 영국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클럽에서 자유롭게 공연을 즐기더라고요. 진동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사운드 시스템을 구축하고 여러 시각적 무대 기법을 적용하면 장애인도 충분히 공연을 즐길 수 있겠다는 영감을 얻었죠. 그 생각이 2012 제1회 페스티벌 나다 개최로 이어졌고, 페스티벌 나다는 올해로 10번째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어요.

이곳 네스트나다는 어떤 공간인가.
네스트나다는 장애ㆍ비장애 뮤지션 및 아티스트들을 실질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제1회 페스티벌 나다가 끝난 뒤 설립된 복합문화예술공간이에요. ‘나다’는 소중한 ‘나’가 모여 소중한 ‘다’가 된다는 의미로, ‘네스트나다’에는 장애ㆍ비장애 예술인들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을 지원하는 둥지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당시 KBS 밴드 경연 프로그램 ‘탑밴드’에서 3차 예선까지 진출했던 ‘4번출구’라는 시각장애인 밴드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예선을 통과한 다른 팀들이 여는 홍대 클럽 공연에 초대를 받아 함께 갔어요. 4번출구 멤버들이 공연을 즐긴 후 자신들도 홍대에서 공연을 열고 싶지만 녹록지 않아 아쉽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장애인 뮤지션들도 마음껏 공연을 펼치고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네스트나다를 만들게 됐죠. 그리고 네스트나다에서 활동하던 배희관밴드는 지난 2018 평창 패럴림픽 폐막식에서 공연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일반 공연과 비교해 페스티벌 나다의 기획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첫 번째로 공연장 선정에 있어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가장 먼저 신경 써요. 기본적으로 휠체어의 이동이 가능한지 살펴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경사로를 설치해 해결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요. 또 공연장에 휠체어가 많이 들어갈 수 있는지, 유사시엔 불편함 없이 나올 수 있는지 체크해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역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공연장을 정하려고 노력하죠. 두 번째로 한쪽에만 치우치는 공연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페스티벌 나다는 어떤 프로그램들로 구성되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여러 장애인ㆍ비장애인 뮤지션이 펼치는 뮤직 페스티벌이에요. 우퍼 조끼, 진동쿠션, 증강현실을 이용한 실시간 가사 자막 서비스 등 최신 미디어아트 기술을 적용해 장애인 관객이 자신의 감각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또한 뮤직 페스티벌 도중 이뤄진 ‘암전 공연’은 우리 페스티벌 나다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이에요. 모든 조명을 가려 공연장을 완벽한 암전 상태로 만든 뒤 4~5분가량 공연을 진행하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시각이 없어진 상태의 세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이러한 감각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죠.

장애 공감 부스에서는 특수 제작한 안경과 증강·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해 다양한 시각장애를 느껴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증강현실 기기를 착용하면 *망막색소변성증이 전맹으로 악화되는 과정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식이죠. 이외에도 페스티벌 나다에는 장애인 작가들의 실시간 드로잉쇼,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회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요.

아쉽지만 지난해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최소한의 장애인 관객분들을 오프라인으로 모시고 뮤직 페스티벌만 진행했어요. 공연은 온라인으로 생중계해 집에서도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죠. 발달장애가 있는 분들이나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휠체어 사용자분들께는 저희가 직접 찾아가 생중계를 시청하실 수 있도록 컴퓨터나 TV 환경을 설정해드리기도 했어요. 작년과는 또 다른 새로운 축제를 선보이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니 올해의 페스티벌 나다도 기대해주세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페스티벌 나다의 포스터에 금이 해마다 하나씩 추가되다가 2019년의 포스터부터 금이 아예 사라진 것을 발견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처음에는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포스터를 벽으로 표현하고 매년 금을 하나씩 추가해왔어요. 2019년부터 포스터의 금을 삭제했던 이유는 페스티벌 나다가 만들어낸 변화가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페스티벌 나다의 배리어프리 공연 환경은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2018년부터는 ‘찾아가는 페스티벌’을 도입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까지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과 춘천에서도 페스티벌을 진행했죠. 또한 이전 페스티벌에서 겪었던 아쉬운 점을 매년 보강하거나 과감히 제외함과 동시에 새로운 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초기에는 노래 자막이 무대 한쪽에 스크린으로만 제공되었다가, 이후 스마트 글라스를 이용한 증강현실 자막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기도 했어요. 지금은 스마트폰 같은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자막을 볼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미디어아트작품과 함께 한글ㆍ영문자막이 나오는 형식이죠.

시각장애를 느껴볼 수 있도록 특수제작한 안경도 우리 회사에서 국내 최초로 제작했어요. 또 홀로그램으로 제작된 장애 작가의 작품을 손바닥 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체험 부스도 있죠. 매년 새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페스티벌 나다의 배리어프리 공연 문화가 점점 퍼져 당연한 것이 됐으면 해요.

페스티벌 나다의 기획자로서 가장 뿌듯할 때는 언제인지.
배리어프리 존에 들어가지 않고 비장애인과 섞여 수어로 호응하며 공연을 즐기는 장애인의 모습. 중얼중얼 혼잣말하시는 장애인 관객을 불편해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비장애인의 모습. 이 모든 광경이 자연스럽고 당연해진 페스티벌 나다를 볼 때면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껴요. 춤추고 뛰어노는 장애인 관객분들, 다음 페스티벌은 언제냐고 물으시는 관객분들을 볼 때도 뿌듯하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가.
다름이 차별의 이유가 되어선 안됩니다. 나와 너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서 장애와 비장애를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면 좋겠네요. 우린 다 같은 사람이잖아요.

공연기획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많이 경험하고 상상할 수록 그것이 정보로 바뀌어 축적되기 마련이죠. 좋은 기획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얼마나 잘 변형하고 가공하느냐에 달려있어요. 정보를 어떻게 시대에 맞게 활용하고 내 목소리에 맞게 가공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세요.

‘이런 아이디어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걸 실행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좋아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라도 그것을 제일 먼저 실행에 옮긴 사람이 내가 되면 되니까요. 만약 주변 사람들이 안 된다고 말리더라도 기죽지 마세요. 지금은 안 되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가능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단편적인 기획이 아닌, 연속성 있는 기획을 생각해보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후속 사업이 있는 기획이 풍부해지는 법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모든 기획은 예산이 확보된 후에 이뤄져야 하고, 예산이 확보된 뒤엔 그것을 투명하게 집행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열정페이를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되며, 능력은 정당히 대우해야 합니다. 정직한 태도가 롱런의 지름길임을 잊지 마세요.
 

망막색소변성증=안구의 망막시세포층이 퇴행하며 발병하는 질환으로, 시야의 범위가 점차 좁아지는 시야협착이 대표적 증상이다.
 

페스티벌 나다에서 사용되는 우퍼조끼의 모습
ⓒ페스티벌 나다 홈페이지 캡처.
페스티벌 나다의 메인 포스터. 순서대로 2012년, 2018년, 2019년 포스터.
포스터의 금은 2012년 한 개에서 시작해 2018년 일곱 개로 늘어났고, 마침내 2019년엔 모두 사라졌다.
ⓒ페스티벌 나다 홈페이지 캡처.
크라잉넛의 공연을 즐기며 수어로 떼창하는 관중들.​​​​​​​HB기획 제공.
크라잉넛의 공연을 즐기며 수어로 떼창하는 관중들.
ⓒHB기획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