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지우 편집장 (wldn9705@skkuw.com)

고등학교 졸업이 끝나고 막 대학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재수를 결심한 친구와 술집에 갔다. 친구는 다음날 재수학원에 들어간다며, 빨간 상표가 달린 소주를 들이켰다. 이내 한 병을 통째로 비우더니 재수하기 싫다며 엉엉 울었다. 완전히 뻗어버린 친구의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끌고 가려 술집에 등장한 엄마를 보며 친구는 또 엉엉 울었다. 친구는 비수도권 대학에 합격한 상태였다. 

대학 가기 정말 어렵다. 정정하자면, 원하는 대학 가기 정말 어렵다. 학문의 상아탑이 취업사관학교로 변모하면서 학생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수도권 대학이 됐다. 올해 지방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개교 이래 가장 충격적인 충원율을 기록했다. 전체 대학의 평균 충원율이 91.4%로 떨어졌는데, 미달 4만 586명 중 75%가 비수도권 대학이었다. 수도권 쏠림이 심해지면서 올해 입학생 중 수도권 일반대 비중이 40.4%였다. 2010년에는 34.8%였다. 강원, 경남, 경북, 전남, 전북, 제주의 대학 신입생 평균 충원율은 아예 90% 밑으로 떨어졌다. 

이 지경인 상황인 만큼 비수도권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역대학이 속속 문을 닫게 되면 지역도 쇠퇴할 수밖에 없다. 지역의 공동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지역경제도 황폐화된다. 결국 지역 소멸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방대의 위기는 개별 대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구조적인 원인이 크다. 각종 자원이 수도권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해법을 각 대학과 지역의 자구노력 및 시장원리에만 맡겨선 안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웃픈 말은 외면 못할 현실이다.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에 위기를 느낀 교육부가 지난 20일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을 내놓은 이유다. 비수도권 부실 대학의 퇴출 방침을 공식화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학 구조조정 방안이 핵심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비수도권뿐 아니라 수도권에도 해당하는 대학 정원 감축이다. 

대학 정원 감축의 경우 전국 5개 권역별로 이뤄진다. 권역별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하위 30~50% 대학은 학생 선발 규모를 줄여야 한다. 이에 응하지 못하면 정부 재정 지원이 중단된다. 지역 예외는 없다. 권역별 기준은 신입생 및 재학생 충원율인 유치충원율을 얼마나 충족했는지 따져 결정된다. 지역별 여건을 반영해 각기 다른 유치충원율이 제시된다. 학생들의 진학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은 다른 지역에 비해 충원율 기준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이 유효할 것 같다. 수도권 대학 정원이 줄어든다 해서 학생들의 목표가 비수도권 대학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수도권 대학 입학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뿐이다. 지금까지 모집 정원에 구애받지 않고 정원 외 선발로 뽑아온 사회적 배려 대상자 및 외국인 전형을 정원 내 선발로 일부 전환하겠다는 방침도 수도권 대학 입시 과열에 한몫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근본적인 교육 혁신 없이는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을 타개하긴 어려울 것이라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벚꽃이 제일 늦게 피는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일 년 새 폭삭 어두워진 낯빛으로 여전히 빨간 상표의 소주를 마셨다. 

 

김지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