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장현 기자 (zzang01@skkuw.com)

 

신진 작가가 살아남기 어려운 기성 미술계
신생공간으로 자생 시도했으나 경제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대형 경매사와 갤러리로 단단히 점철된 미술계는 젊은 신진 작가들이 그들의 삶을 걸고 뛰어들기에는 가혹한 환경이다. 한편 경력과 인지도를 좇는 기성 미술계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생적으로 전시를 만드는 젊은 작가들이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우후죽순 등장해 미술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신생공간’이다. ‘청춘과 잉여’, ‘룰즈’ 등 신진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신생공간 ‘위켄드’를 공동 설립한 최정윤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생공간이란 무엇인가. 
신생공간을 명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전개된 운동이라기보다는 동시기에 개별적으로 진행됐던 일들을 임의로 묶어 신생공간이라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통된 특징은 미술계의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에 의해 주도된 전시공간이라는 점이다. 기성 미술계에서 젊은 신진 작가들은 작품을 전시할 곳을 구하기 어려웠고 기회를 얻었더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대항해 신진 작가들은 2010년대 중반 무렵부터 자생적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유통하고자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로 공장지대나 미개발 지역, 재래상가같이 월세가 싼 곳에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이후 모바일 기기의 보급과 SNS의 활성화를 통해 신생공간은 더욱 주목받을 수 있었다. 곳곳의 작은 전시공간들에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신진 작가들이 미술계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신진 작가에게는 전시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고 대우가 열악했다. 물론 경력이 있고 실력이 검증된 기성 작가들이 신진 작가에 비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유명한 작가들도 젊은 시절에는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미술 업계의 규모가 비교적 작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이미 포화상태인 미술계에 매년 많은 전공자들이 입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날의 신진 작가들은 작품을 선보일 통로 자체가 거의 없는 처지다.

인건비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전시공간들은 젊고 경력이 없는 작가와 기획자에게 헌신을 강요했다. “돈을 받지 않더라도 여기서 일하는 것이 좋은 기회고 큰 명예다”라는 논리로 대가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이 합리화됐다. 2014년에 열렸던 ‘공장미술제’가 그 예다. 공장을 빌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였는데, 출품했던 작가들에게 보수는 지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작품의 운송과 보호 등의 일도 모두 작가가 직접 해야 했다. 물론 선배 기획자들도 적은 예산을 쪼개 젊은 작가들을 위한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들이 받은 처우에 대해 비판이 일었다. 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은 이러한 경험과 불만을 공유하고 있었다. 부당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신생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신생공간은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주요 전시공간에서는 경력이 길고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게 당연하다. 반면 신생공간은 잃을 게 없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무명작가와 신진 기획자가 대다수기 때문에 실험적인 시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감상자 입장에서는 기성 전시공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작품을 신생공간에서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신생공간이 장기적으로 운영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신생공간을 통해 작품을 직접 판매하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고객이 실제로 신생공간에 방문해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신생공간들이 전·월세 계약기간인 2년 동안만 운영하고 문을 닫았다. 남아있는 신생공간 운영자들도 대개 부업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신생공간 ‘위켄드’에 공동 설립자로 참여했지만 운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 우려돼 그만뒀다.

주로 젊은 작가들과 전시를 기획했던 이유는.
‘청춘과 잉여’, ‘룰즈’, ‘페인팅 네트워크’ 등의 전시를 또래 작가들과 협업해 기획했다. 기획 일을 하기 전에 미술 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여러 연령대의 작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공감대가 비슷한 또래 작가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전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또 충분히 뛰어난 역량을 가진 젊은 작가들이 많음에도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는 상황이 아쉬웠다. 또래의 젊은 작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성세대와 다른 신선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 작가만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대중에게 미술을 어렵지 않게 소개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문득 “우리 엄마와 남편도 이해하지 못하는 미술이 무슨 의미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이 전문가들만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으면 좋겠다. 미술의 근본적인 의미는 보는 즐거움과 치유, 행복 같은 감각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반 대중도 느꼈으면 한다. 복잡한 이론으로 무장돼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전시가 일반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깊이 있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미술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 일환으로 ‘미술가이드 미술랭’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영화, 광고 등 미디어에 등장한 미술품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네이버 블로그에 게재하는 프로젝트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친근함을 느꼈으면 한다. 

'페인팅 네트워크' 전시회 모습.최정윤 큐레이터 제공
'페인팅 네트워크' 전시회 모습. ⓒ최정윤 큐레이터 제공
신생공간 '위켄드' 전경. ⓒ최정윤 큐레이터 제공
신생공간 '위켄드' 전경. ⓒ최정윤 큐레이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