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장현 기자 (zzang01@skkuw.com)
마크 로스코의위키피디아
마크 로스코의 <NO.6> ⓒ위키피디아

 

다양한 경로로 유통되는 미술 작품
가격 신뢰도가 낮다는 지적도 있어

미술품의 어마어마한 가격에 놀라본 적이 있는가. 최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의 가치가 총 3조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삼성그룹이 그의 소장품을 기증하기로 결정한 후 가격 감정이 이뤄지면서다.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미술품의 가격은 대중의 이목을 끌면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미술품의 가격은 대체 어떻게 결정되며, 값비싼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작품의 가격은 천차만별
현대 추상화가인 마크 로스코의 작품 <No.6>는 2014년 약 2090억 원에 거래됐다. 언뜻 보기에 단순한 모양으로 채워진 듯한 이 작품이 그토록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큰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는 2019년 김환기 작가의 <우주(Universe 5-IV-71 #200)>가 약 131억 8000만 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처럼 고가의 작품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하는 한편, 미술계에는 소규모 화랑에 작품을 출품하며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작가도 많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김영석 감정위원장은 “경매로 작품을 파는 데 성공하는 작가는 극소수”라며 “대다수의 작가는 작품을 저렴하게 팔거나 판매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술품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며, 개개인의 주관적인 감상이 평가 기준이라는 특성 때문에 미술품은 가격을 매기기 더욱 어려운 분야로 여겨진다. 김 위원장은 “예술은 정량적인 평가가 쉽지 않다”며 미술품은 객관적인 가격 결정이 어렵다는 성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작품이 그려지고 판매되기까지
미술품이 판매되는 경로는 크게 △경매 △작가 △화랑으로 나뉜다. 우선 경매를 통해 작품이 판매되는 경우, 구매자들의 구매 의사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되고 낙찰 가격은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개된다. 작가가 직접 구매자에게 작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SNS상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며 온라인으로 직접 판매가 이뤄지는 일이 잦아졌다. 이 경우 작품의 가격은 작가가 스스로 설정하게 된다. 작품이 판매되는 가장 흔한 경로는 화랑을 통해서다. 작가는 화랑과 계약을 맺고 화랑에서 주최하는 전시에 작품을 출품한다. 대개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화랑과 작가가 가격을 합의한다. 화랑 측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해 더 많은 고객을 모으기도 한다. 전시회나 아트페어에서 고객이 작품을 관람하다가 구매 의사를 표시하면 현장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한편 화랑을 통해 작품이 판매될 때에는 가격이 결정되는 기준이 모호하고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있다. 김 위원장은 “작가와 화랑이 가격을 임의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보니 가격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가 낮다”며 화랑을 통한 작품 유통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미술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들
미술 시장에서 작품이 거래될 때 통상적으로 가격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요소들이 있다. 우선 작가의 경력이 고려된다. 작가가 전시회를 열었던 횟수 등의 이력이 가격에 반영되며, 신진 작가의 경우 학력과 유학 경험에 따라서도 작품의 가격이 다르게 매겨진다. 일각에서는 작가의 경력을 기준으로 작품의 가치가 평가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갤러리케이 한혜미 아트딜러는 “무조건 경력이 오래될수록 가격이 비싸다기보다는 인지도가 높고 팬층을 확보한 작가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크기도 중요한 요소다. 작품 크기가 클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현재 미술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호당 가격제’는 크기에 비례해 가격이 상승하도록 하는 계산법이다. 호당 가격제는 작품 크기의 단위인 호를 기준으로 가격을 정하는 관습으로, 개별 작품의 가격은 그 작가의 호당 가격에 일정한 비율로 크기 값을 곱해 산출된다. 이처럼 크기에 따라 작품의 값이 달라지는 이유는 재료 비용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작품의 가치를 크기로 평가한다는 것에 의아해하지만,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와 액자 비용이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에 작품 크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희소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작가의 작품 수가 적을수록 작품값이 비싼 경향이 있다. 간혹 같은 작품이 여러 에디션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더 많은 작품을 팔 수 있는 방법이지만 개별 작품의 가격은 에디션이 많아질수록 싸진다. 작가가 사망하면 그가 남긴 작품의 가격이 갑자기 상승하는 ‘사망 효과’도 나타난다. 작가가 더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게 되면서 생전에 그린 작품의 희소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세로보다는 가로로 긴 작품, 어두운 것보다는 색상이 많이 들어간 밝은 작품의 가격대가 더 높은 경향이 있다. 밝은 색상의 가로 작품이 가정에서 장식용으로 걸어두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사용된 재료의 종류와 제작 시기, 주제 등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미술로 하는 재테크, ‘아트테크’의 등장
미술품의 가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술을 재테크 수단으로 고려하는 시각도 많아졌다.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인 ‘아트테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미술품을 사들인 후 가치가 오르면 팔아 시세차익을 얻거나, 화랑에 작품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방식으로 수익이 발생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의 연간 미술품 총 거래금액은 약 4146억 원에 달한다. 2014년에 비해 약 20% 증가한 규모다. 아트테크가 투자자들의 이목을 끈 이유는 경기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미술 시장의 특징 때문이다. 한 아트딜러는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 경제가 휘청거렸지만 미술품의 가치가 한순간에 하락하지는 않았다”며 자산으로서의 미술품의 장점을 설명했다. 또 아트테크는 주식 투자와 달리 항상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동안은 감상하거나 인테리어로 사용하는 등 향유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아트테크에 대해서는 미술 향유층을 넓혔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미술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공존한다. 이에 대해 한 아트딜러는 “실제로 고객 중에서 재테크 수단으로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가 되려 미술 감상에 빠진 분들이 있다”며 “미술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아트테크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평했다. 

명확한 가격 기준을 마련하려는 시도
작품의 가격 설정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점은 미술계의 취약점으로 지적돼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2019년 미술품의 가격을 산출하는 모형을 개발했다. 김 위원장은 “가격을 산출해주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작가와 화랑, 구매자 사이에 가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며 모형을 제안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모형은 작가의 △인지도 △전시 활동 △학력을 각 1~3점으로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작가의 호당 가격을 정한다. 이후 개별 작품의 작품성을 협회 감정위원들이 평가해 최종 가격을 결정한다. 그러나 이 모형 또한 작가의 학력 등이 작품의 가치 평가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학력은 최소한의 숙련 기간을 증명하는 것”이라면서도 “작가들의 피드백을 받아 계속해서 모형을 보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트페어=작품 판매를 위해 여러 화랑들이 함께 모여 개최하는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