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수빈 기자 (tvsu08@skkuw.com)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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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고민 없이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주는 식문화
마케팅 위한 무분별한 용어 남용은 자제 필요해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성균이는 배달 어플에 음식을 검색해보며 한참 동안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어플에는 한식부터 양식까지 분야별로 잘 정돈돼 있었지만 수많은 종류의 음식은 오히려 성균이의 결정을 방해했다.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한 성균이는 전문가에게 저녁을 맡기기로 다짐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마카세’ 식당으로 향했다.


이젠 음식이 아니라 경험을 삽니다
오마카세란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일본어로, 손님이 먹을 음식을 주방장의 재량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주방장 특선’이나 ‘맡김 차림’으로도 불리고 있다. 오마카세를 전문으로 하는 업장에서는 메뉴 선정부터 코스 구성, 손님의 동선까지 주방장이 모든 것을 총괄한다. 영남이공대 글로벌외식산업과 신승훈 교수는 “오마카세는 일반 식당과 같은 식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셰프마다 고유하고 독창적인 음식을 만들어내 고객에게 새로운 식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셰프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된다”고 설명했다.
오마카세는 고급 일식집에서 유래해 10만 원가량의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오마카세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대학생들도 대학가나 번화가 등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이화여대 근처에 위치한 오마카세 스시집 ‘여래여거’의 이승선 셰프는 “20대와 30대 손님의 비중이 80% 정도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젊은 층에서 오마카세 식문화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오마카세가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다양한 오마카세 식당을 방문해온 현다희(의학 19) 학우는 소셜 미디어에 ‘*옴린이의 오마카세 탐방기’라는 제목으로 오마카세 식당에 대한 경험을 기록했다. 현 학우는 “오마카세는 일반적인 한 끼 가격보다 비싸긴 하지만 단순히 밥만 먹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에 걸맞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초밥을 만드는 과정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식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설명을 듣는 등 식사 시간 내내 공연에 관객으로 참여하는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외식을 하려는 사람들은 먹거리 선택지가 많아 행복하면서도 고통스러운 고민을 한다. 전문가 추천에 의지해 선택의 고통을 줄이면서 특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오마카세는 식경험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며 오마카세의 인기 요인을 설명했다.
 

초밥 오마카세,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초밥 오마카세의 가격은 3만 원부터 30만 원까지 업장마다 상이하다. 오마카세가 비싼 이유는 대부분의 오마카세 식당이 한 타임에 네다섯 팀 정도만 받는 소규모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현 학우는 “오마카세는 일반적으로 소규모 예약제인 덕분에 식사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소규모다 보니 셰프가 손님의 특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반영한다고 느꼈다. 실제로 개개인의 먹는 속도를 고려하거나 왼손잡이를 배려해 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비싼 한 끼 가격에도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오마카세 식당의 예약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스시와 수강신청이 합쳐진 ‘스강신청’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현 학우는 “매달 정해진 날짜에 예약을 받는 오마카세 업장의 예약은 특히 치열하다. PC방에 가서 서버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계를 띄워 시도했는데도 안타깝게 실패했다”며 식당 예약이 수강신청처럼 어려웠다고 밝혔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자영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에도 오마카세 영업점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주영애 교수는 “소비자는 오마카세를 통해 남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하고, 이 경험을 다시 SNS에 올려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오마카세는 주로 고가의 상품을 지향하므로 고급화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설명했다.


한우도 커피도... 오마카세의 새로운 해석
일식집을 중심으로 오마카세 문화가 대중에게 관심을 받자 한식이나 중식, 카페 등 다른 업종도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 특급호텔의 한우 전문점에서도 한우 오마카세 코스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한우 오마카세 식당에서도 일식 오마카세 업장처럼 한우의 숙성도나 굽기 정도, 플레이팅 방법 등 사소한 모든 것이 주방장의 손길을 거친다. 건국대 식품유통경제학과 김태경 겸임교수는 “소규모의 손님 앞에서 요리사가 고기를 직접 조리해 내어주는 방식은 20년 전에도 존재했다”며 “오마카세 문화가 유행한 후로 고급 한우 전문점 등에서 해당 용어를 사용해 코스 요리를 선보이면서 한우 오마카세라는 개념이 대중화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오래전부터 한우는 일종의 고급문화로 받아들여져 왔는데, 한우를 최근 유행하는 오마카세와 접목하면서 고급화와 차별화 전략이 잘 들어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바리스타가 선정한 커피와 디저트를 선보이는 오마카세 카페도 등장했다.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카페 ‘펠른’은 하루에 다섯팀 이하의 소규모 예약만 받는 ‘펠른 페어링 코스’를 제공한다. 펠른 페어링 코스란 직접 내린 커피와 그에 어울리는 디저트를 전문가가 직접 선정해 순서대로 내어주는 코스 메뉴다. 이 밖에도 오마카세 문화는 네일샵, 미용실, 꽃집 등 다양한 업종에서 소비자의 결정을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 학우는 “한우, 양고기, 돼지고기 오마카세 업장에 방문해봤는데 앞으로는 고기 이외에도 생면 파스타나 닭구이, 튀김 오마카세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메뉴를 직접 선택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는 점이 오마카세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주 교수는 “앞으로 오마카세는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의 일환이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무분별한 용어 남발은 자제하고, 우리말로 표기하려는 노력과 성숙한 형태의 소비가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옴린이=오마카세와 어린이를 합친 신조어로, 오마카세 초보자라는 의미다.

 

초밥 오마카세와 한우 오마카세 요리.
초밥 오마카세 요리. ⓒ현다희(의학 19) 학우 제공
ⓒ현다희(의학 19) 학우 제공
한우 오마카세 요리. ⓒ현다희(의학 19) 학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