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지윤 기자 (nanana@skkuw.com)
서여진 외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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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을 넘어 불평등을 
만드는 문해력 부족

많이 읽고 쓰고 대화하면서 
향상시켜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포털사이트에는 ‘음성 양성 뜻’이라는 검색어가 오르내렸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취업준비생이 ‘금일’을 ‘금요일’이라고 이해해 인사 담당자와 갈등을 겪었던 사례가 알려지면서 우리 국민의 문해력 부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으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소통을 가로막고 격차를 발생시키는 우리 사회의 문해력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낫 놓고 기역 자’는 알지만
문해력(文解力)이란 단순히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넘어 글의 의미를 파악해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에 국립국어원에서는 문해력을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최소한의 능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글의 뛰어난 가독성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이하로 거의 모든 국민이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상태지만 문해력의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2017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따르면 전체 성인의 22%인 960만 명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실질적 문맹’이라고 조사됐다. 실질적 문맹은 읽고 쓸 수는 있어도 어휘력과 논리력 등의 부족으로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3년마다 OECD 79개 회원국의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는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 현상이 드러났다. 2006년에 556점으로 1위였던 우리나라의 읽기 점수가 2018년에는 514점으로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이는 비단 어린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기업 191곳을 대상으로 MZ세대 직원들의 국어 능력에 관해 묻자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인 56.5%가 ‘국어 능력이 이전 세대보다 부족하다’고 답한 것이다. 우리 학교 학부대학 원만희 교수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글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과거에 비해 요즘 학생들이 긴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낮은 문해력, 단순히 소통만의 문제일까
우선 낮은 문해력으로 인해 오독과 오해가 일상화된다면 기본적 소통에 큰 불편함이 생긴다. 긴 글을 이해할 수 없어 전문이 아닌 요약된 글만 읽는 경우 내용을 곡해할 수 있고 잘못된 정보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원 교수는 “다각적 사고와 새로운 생각들은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며 “제대로 읽고 사고할 수 없다면 구성원 간의 소통이 어려워지고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학습의 기본적 도구기도 하다. 이에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의 경우 부진한 학업 성취도를 보이고 학습 자체에 큰 장벽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해력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학습과 학력의 격차는 일상적 소통에서의 어려움을 넘어 경제·사회적 격차를 만들어내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기초 수준의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 노동을 위한 교육 및 훈련에 어려움을 겪기 쉬운데, 이는 추후 취업 시장에서 임금 격차를 넓혀 경제적 양극화를 일으킨다. 실제로 OECD에서 24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문해력이 높은 상위 12%의 사람들은 최하위 3.3%보다 60% 이상 높은 평균 시급을 받고 있었으며, 문해력이 낮은 사람은 실업자가 될 확률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해력은 경제력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개인의 인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2017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성인문해능력조사’에서는 문해력이 높을수록 정치관심도 및 생활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문해력이 필수적이다. 사회적 문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와 문장이 잦아지면 이에 대한 흥미나 관심도가 떨어질 수 있다.
 

세 줄 이상은 카드뉴스로 주세요
실질적 문맹이 증가하는 원인으로는 다양한 매체의 부상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동영상과 인터넷 검색을 통한 정보 습득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지난 4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조선일보가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의 교사들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낮아진 원인으로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익숙해졌기 때문’을 꼽았다. 책 대신 정보를 집약해 가공한 영상 매체를 주로 소비하면 수동적 사고에 익숙해지고 글을 읽고 스스로 정보를 이해해 활용할 능력을 기르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보의 형태뿐 아니라 양도 문제다. 세계정보산업센터에 따르면 한 사람이 매일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평균 34GB에 육박하는데 이는 영어 단어 10만 개에 가까운 양이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디지털 시대의 과잉 정보에 노출된 인간의 뇌는 인지적 과부하에 빠지지 않도록 ‘훑어보기’를 선택한다.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많은 정보 중 몇몇 단어만 재빨리 훑어 대략적인 맥락을 파악한 후 결론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경우 전체적인 글의 흐름이나 논리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고 긴 문장보다 더 짧고 단순한 문장만 찾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렇게 뇌의 읽기 회로가 디지털 매체에 적응한다면 종이책이나 인쇄물을 읽을 때도 건너뛰면서 읽게 되는 것이다.


이제 시간을 들여 책을 읽지 않아도 전자기기만 있다면 필요한 정보를 간편하게 얻을 수 있다. 이에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 습관을 형성하지 못한 채 책과 멀어지고 있다. 독서량의 감소는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들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7.5권으로 2년 전보다 1.9권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원 교수는 “책을 읽는 경우 그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 이해하고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빠른 디지털 환경에서는 그러기가 힘들다”며 낮아진 독서량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모두가 읽고 이해하는 세상을 위하여
전문가들은 문해력 향상을 위해 다독과 정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구교대 국어교육학과 윤준채 교수는 “문해력은 공기와 같이 우리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이다”며 “글을 제대로 읽고 스스로 써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것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공유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국민의 문해력 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출생 직후부터 만 8세까지 초기 아동기 문해력이 발달하는데 문해력 교육이 부족한 환경에 놓인 아동들에는 국가 차원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또한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학습 부진이 늘어나고 격차가 커지기 전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사전에 파악해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전남교육청에서는 ‘기초 학력 전담교사제’를 운영해 부진 학생을 대상으로 문해력을 포함한 기초학습의 전문 교사를 추가 배치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점차 다른 지역에도 도입되고 있다. 윤 교수는 “초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저하된다는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가정, 국가를 포함한 모든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뿐 아니라 성인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국가문해교육센터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성인문해교육을 지원하는 등 평생교육법에 의거해 공공의 문해력을 위한 여러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문(文)해력, 시대적 변화에 눈을 맞추다
기술이 발달하고 변화한 세상 속에서 문자의 이해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문해력 개념은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 문자의 발명을 통해 의미의 전달이 말에서 글로 바뀐 것처럼 이제는 정보를 읽고 쓰는 시대에서 보고 찍기도 하는 세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우리는 이제 문자만이 아닌 이미지, 영상 등 다양한 상징체계를 활용해 의미를 만들고 이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글을 읽고 이해한다는 전통적인 문해력의 개념이 보다 확장돼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