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여준 기자 (yjyj0120@skkuw.com)

우리가 사용하는 부적절한 언어를 좀 더 적절한 표현으로 대체하려는 작업이 많이 보인다. 최근의 예시로는 '-린이' 표현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떠오른다. 어떤 일에 있어 미숙한 사람을 지칭할 때 활용되던 '-린이'가 아동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이 큰 공감을 얻은 적이 있다. 어린이가 반드시 성인보다 미성숙하지 않은 데 반해 '-린이'는 어린이에게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이미지를 덧씌운다는 게 주장의 골자로 보인다. 

잠시 관용의 태도를 갖고 로베르트 팔러가 『성인언어』에서 위와 같은 작업을 향해 제기한 문제의식을 들여다보자. "레즈비언 형상의 신호등을 통해 감수성을 표출하고 심지어 국제적인 박수갈채를 받을 수만 있다면, 무엇하러 새로운 빈곤에 대해 논하고 이에 맞서 무언가를 행하겠는가?" 이 비판은 독일 뮌헨 시내에 동성애자 캐릭터를 넣어 만든 신호등이 드러내는 정체성 정치와 강박적 포용을 겨냥한다. 레즈비언과 게이의 형상을 넣은 신호등은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포용의 정신을 상징한다. '-린이'라는 표현을 제거하려는 작업도 시내에 동성애자 신호등을 세우는 일과 비슷한 목적을 지닌다. 어린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낙인찍을 우려가 있는 표현을 지양함으로써 어린이를 어른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인간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포용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향유하는 문화 콘텐츠가 포용의 감수성을 위배하는 일이 없게끔 대중은 눈에 불을 켜고 상징 속에 숨겨진 혐오를 찾는다. 

'-린이' 표현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의 사용을 막기 위해 SNS 피드와 신문지면 한구석을 채우는 만큼, 우리는 학대 받는 아동이 방치되게 만드는 시스템의 미비함에 관해 얘기할 공론장을 상실한다. 우리가 성인으로서 능히 통제해야 할 상호작용 영역에서의 문제를 정치 영역에서 다루는 만큼, 극심한 양극화 해소나 거대재벌의 세금 탈루를 저지할 방안에 관해 논의할 시간은 줄어든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해 팔러는 '정치적 올바름'을 두고 "포스트모더니즘적 신자유주의" 기획의 결과물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팔러는 정치란 모름지기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다뤄야 함을 주장하며 독자에게 “객관적 추론을 위하여 이 모든 것(개인의 정체성, 감수성)을 잠깐 동안 억제할 능력”을 “시민권의 최고의 미덕으로 인정”할 것을, 즉 ‘성숙’한 태도를 견지할 것을 주문한다. 특히 정치인들마저 다른 정치인이 올린 SNS 글에서 ‘불편한 표현’ 찾기에 골몰해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실종된 성숙함을 되찾기 위한 팔러의 외침에 좀 더 진지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정된 지면에서 『성인언어』 속 저자의 핵심 주장만 간신히 간추려봤다. 철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문화이론을 아울러 활용하는 팔러의 정치적 올바름 분석 및 비판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혐오 표현이 보일 때마다 검열하려는 불편한 태도를 불편하게 바라볼 준비가 됐다면 『성인언어』는 충분히 읽어봄 직하다.

 

황여준 부편집장yjyj0120@
황여준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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