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혜원 (nanchoc09@skkuw.com)

흑백, 2개의 색으로 해석은 2n개로
색깔로 분산되는 시야를 내러티브로 모으다
 

영화계의 거장 봉준호 감독의 2019년 <기생충>은 약 1,031만 명에 달하는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이러한 흥행세에 더해 그는 <기생충:흑백판>(2020)을 제작하며 색다름을 선사했다. 그는 왜 다채로움을 덜고 단조로움을 택했을까. 놀랍게도 그의 선택과 상영에는 다 계획이 존재한다. 흑백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흑과 백, 시각의 자극은 빼고 낯설게 다가가다
인간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사물의 색을 인지한다. 다채로운 색은 심리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감정을 환기한다. 한편 검은색과 하얀색은 채도 없이 오직 명도만 존재한다. 다른 색과 달리 채도가 없어 단조로워 보일 수 있으나, 흑백만이 구현해내는 효과도 있다. 서일대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송영애 교수는 “흑백은 색 없이도 무언가를 강조하거나 숨기기에 유리하고 관객이 낯설다고 느끼도록 유도한다”며 “감독이 이러한 관객의 반응을 시각적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단순한 무채색으로 상상의 지평은 넓히다
과거 영화의 흑백 화면은 장비의 기술적 문제로 인한 한계에 해당했다. 그러나 오늘날 흑백 영화는 컬러 영화를 흑백으로 바꿔서 제작된다. 흑백 영화의 제작 의도는 관객과 감독의 취향이나 영화 산업적인 측면 등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 예시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흑백판>이 있다.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서대정 교수는 “<기생충:흑백판>은 감독판 영화라 개인적 취향이 반영돼있다”며 “흑백으로 전환돼 영화에서 선악의 이분법, 빈부의 차이, 조화와 혼란 등이 극대화됐다”고 전했다. 기우가 학력을 속이고 고액 과외를 하러 연교의 집에 들어가 처음 조우하는 장면에서 이런 효과가 잘 나타난다. 이때 기우는 검은 옷을 입고 연교는 하얀 옷을 입고 있다. 악의를 품고 있음을 암시하는 기우의 차림새와 여유로운 연교의 모습이 대비돼 인물의 본질이 부각되는 것이다. 서 교수는 “흑백을 사용하면 대립하는 감정과 개념을 보여주기에 용이하다”며 “다른 시각적인 요소는 배제되고 인물의 감정과 동작에 시선이 집중된다”고 전했다. 또한 서 교수는 “흑백 화면을 사용해 사회구조의 계급화를 시사하는 영화의 함의가 극명해진다”며 “흑백의 클리셰를 활용해 선악과 계급 구분이 쉬워진 것”이라 평가했다.

역사 영화도 역사성과 실재성을 드러내기 위해 흑백으로 연출하곤 한다. <동주>(2016)와 <항거:유관순 이야기>(2019)가 대표적이다. 송 교수는 “감독은 관객들에게 역사적 인물의 삶의 궤적이 무게감 있게 다가올 수 있도록 흑백 영화를 활용한다”며 “색 때문에 사소한 장면에 관객들의 집중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 전했다. 또한 그는 “일반적으로 흑백 사진은 과거의 것으로 여겨진다”며 역사 영화가 흑백으로 구현되면 관객이 과거의 일임을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흑백 영화에서 부분적으로만 색을 넣어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도 한다. <쉰들러 리스트>(1993)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 중 빨간 코트를 입은 여아의 옷 색만 살린 장면이 일례다. 송 교수는 “이후 등장하는 시신 더미 속 빨간 옷을 입은 시체를 *롱 숏으로 보여주며 당시의 참혹함을 표현한 것”이라 전했다.


명암으로 덜어내고 핵심은 강조하다
광고는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면서도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감독의 개인적인 예술 취향보다는 더 논리적인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안의진 교수는 “제품의 색은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흑백이 광고의 전략적 측면에서 더 효과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광고를 흑백으로 제작하는 것은 일종의 차별화 전략에 해당한다. 안 교수는 “컬러 광고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흑백 광고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는 장점이 있고, 흑백의 이미지가 갖는 개성으로 인해 다양한 맥락에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며 “광고 대상을 강조하거나 시선을 빼앗는 요소를 없애는 수단”이라 말했다.

흑백 광고의 종류는 다양하다. 네이버에서 자사의 웹소설 플랫폼 광고를 전면 흑백으로 제작한 것이 일례로 꼽힌다. 해당 광고는 웹소설 중 『하렘의 남자들』, 『재혼 황후』 등의 핵심 대사를 배우가 읽는 형식으로 구현됐다. 안 교수는 “컬러 광고에 비해 흑백 광고는 소비자에게 무게감 있게 대사와 행동을 전달할 수 있다”며 “색이 제거되며 소비자가 배우의 대사와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고 광고가 의도한 효과를 설명했다.

한편 일부만 컬러로 표현되고 나머지는 흑백으로 처리되는 ‘컬러 스팟’ 광고도 있다. 블랙핑크의 제니가 광고한 ‘갤럭시S20+ 제니레드’가 그 예다. 안 교수는 “이는 색이 있는 제품만 강조하려는 의도로 이해된다”며 “제품 고유의 색상이나 로고, 포장 용기를 강조할 때 사용한다”고 전했다. 


무난하지 않은 모노톤, 그 전망은
흑백으로 제작된 영화는 *작가주의 감독의 자기표현 욕구를 드러낼 수 있다. 서 교수는 “자신의 영상을 흑백으로 제작하는 것은 감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예술가적 욕구를 투영한 것”이라며 “컬러 매체와 차별화된 새로운 문학적 취향이다”고 전했다. 한편 송 교수는 “과거보다 디지털 장비와 작업 공정이 발전하며 감독은 다양한 방법으로 *영상 후반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그중에서도 흑백 작업은 영상 매체들의 지평을 넓히는 데 효과적으로 쓰일 것으로 전망했다. 


◆롱 숏=피사체를 원경에서 넓게 잡아 찍는 촬영법.
◆작가주의=예술 작품을 제작할 때 그 작품을 만든 작가의 특징 및 개성을 드러내는 창작 태도.
◆영상 후반 작업=영상 촬영 이후 필름 현상, 편집, 색 보정 등이 이뤄지는 것을 통칭하는 용어.

 

영화의전당 홈페이지 캡처
기우(최우식)와 연교(조여정)가 처음 조우한 장면.
ⓒ영화의전당 홈페이지 캡처

 

갤럭시S20+ 제니레드 광고.KT 홈페이지 캡처
갤럭시S20+ 제니레드 광고.
ⓒKT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