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지윤 기자 (nanana@skkuw.com)

색을 구분하기 어려운 색각이상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줄여야해

 

다시 찾아온 가을, 화려하고 다채로운 단풍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색안경을 벗으면 조금 불친절하면서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목적지로 향하는 차에서 신호등의 가장 오른쪽 불이 켜질 때 페달을 밟는다. 색은 몰라도 진한 잎과 연한 잎들로 가득한 계절, 파란지는 알 수 없어도 넓은 하늘이 보인다. 색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색각이상자들에 대해 알아보자. 



색각이상, 일곱 빛깔이 아닌 무지개
우리 눈의 망막에는 빛을 감지해 명암을 구분해주는 막대세포와 색에 대한 신호를 감지하는 원뿔세포가 존재한다. 빛의 삼원색으로 모든 색을 만들 수 있듯 우리의 눈도 △녹색 △적색 △청색 세 종류의 원뿔세포가 자극받는 비율에 따라 색을 구분한다. 색각이상은 이런 원뿔세포에 문제가 있을 때 발생하는데, 특정 원뿔세포의 기능이 약한 경우 색약, 원뿔세포 자체가 없는 경우는 색맹이라고 한다. 어떤 원뿔세포에 문제가 있느냐에 따라 녹색맹, 적색맹 등으로 나뉘며 세 원뿔세포 모두의 기능 이상으로 색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전색맹으로 분류한다.

특이한 점은 색각이상이 남성에게 훨씬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남성 색각이상자는 153만 명, 여성은 10만 명으로 전체 인구 중 남성의 약 5.9%, 여성의 0.44%가 색각이상을 앓고 있다. 이처럼 성별 간 발생 비율이 다른 이유는 색각이상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성염색체인 X염색체 위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염색체는 XX이며 남성은 XY다. 따라서 여성은 두 개의 X염색체 중 하나라도 정상이면 색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지만, 남성은 하나뿐인 X염색체가 색각이상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색각이상이 발현되는 것이다. 이외에 시신경이 약하게 태어난 경우에도 선천적 색각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후천적 원인으로 색각이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녹내장 △당뇨망막증 △황반변성 등 망막 관련 질병들로 인해 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019년 10월에는 대만 가오슝시의 16세 여학생이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인해 후천적 색맹이 된 사례가 최초로 보고되기도 했다. 그를 진단한 의료진은 매일 10시간 이상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에 과다 노출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2호선은 초록색, 한글날은 ‘빨간 날’?
서울시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최 씨는 적색과 녹색의 구분이 어려운 적록색맹을 갖고 태어났다. 그는 “전자기기를 충전할 때 충전표시등의 색을 구별할 수 없다”며 “매번 완충 여부를 모른 채 막연히 사용 가능 시간을 짐작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색으로 중요도를 구분해놓은 요점 정리 책에서 중요하다고 표시된 부분을 알아보기 힘들고 종이의 배경색으로 인해 글자를 읽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생활 속 불편함을 토로했다.

이들은 일상 속 불편함을 넘어 직업 선택에서 제약과 불리함을 겪기도 한다. 항공기 조종사나 약제사와 같이 색의 식별이 중요한 직업의 경우 색각이상자의 채용을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엄격한 색의 구분이 업무 진행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으로 채용 기회를 박탈하는 경우다. 과거보다 완화됐지만, 여전히 일부 채용과정에서는 필요 이상의 제한을 둔다는 지적이 있다. 소방공무원과 달리 경찰 공무원 채용에서는 아직도 중도 이상인 색각이상자들을 전면 배제하고 있다. 인권위는 “색각이 필요한 업무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채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고용 차별이다”며 “모든 업무에서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업무수행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색각이상자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발언은 불편함, 불리함에 불쾌함까지 더한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 씨는 “학교에서 검사를 통해 색약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후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며 “매번 이건 어떻게 보이냐며 묻는 사람들 때문에 색약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고 전했다.


색안경, 한번 껴볼까요?
지난해 5월 튀빙겐 대학병원의 연구팀은 망막에 정상 유전자인 CNGA3을 주입해 결함 유전자를 대체하는 실험에 성공했으며 현재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처럼 선천적 색각이상 치료를 위해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아직 없다. 대신 착색 콘택트렌즈나 안경을 통해 색각이상을 부분적으로 보정해줄 수 있다. 미국 엔크로마가 개발한 색맹 교정 안경은 원색 사이의 빛을 차단하는 필터를 이용해 색의 경계를 만들어 이를 통해 원뿔세포의 색 구별을 돕는다. 그러나 색 구분 능력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아닌 일시적·부분적 교정에 불과하며, 야외의 빛을 기준으로 설계된 안경의 특성상 실내 사용이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olor Binoculars’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모니터 디스플레이에 출력되는 사진에서 특정 색을 강조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안경을 쓰지 않아도 색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는 것
런던 올림픽 당시, 한국 남자 축구팀은 한일전에서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붉은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색각이상자들의 시청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경기에서 양국이 채도 차가 큰 유니폼을 입게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색각이상자들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8월 27일, 김민기 의원이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색각이상자들을 배려한 투표용지 제작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윈도우10의 색맹·색약 설정 지원 및 색각이상자용 지하철 노선도와 같은 *컬러유니버셜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는 추세다. 다양한 도형을 이용해 의미를 전달하는 등 색뿐만 아니라 숫자, 기호를 통해서도 이해를 돕는다면 색각이상자들의 불편이 줄어든다. 이 씨는 “색맹, 색약의 경우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는 것일 뿐이다”며 “우리가 보는 것이 오답이라고 섣불리 비난하거나 동정하는 차별적 시선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컬러유니버셜디자인=성별, 연령, 장애유무에 관계없이 색각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