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평온한 농촌의 평범한 농부 갑(甲)은 하루 8시간 일하며 연간 100포대의 쌀을 생산한다. 하루는 촌장이 무리와 함께 찾아와 경작한 쌀의 절반을 달랜다. 대신 다른 농부들 것도 반씩 거둬 합친 후 총 농부숫자(n)로 나눈 양을 갑에게 ‘무조건’ 준다고 약속한다. 계산해보니 그 양은 갑이 내는 50포대와 같다고 가정하자. 이른바 ‘1/n(n빵) 룰’의 일종이다.

내 것을 이웃과 공유(共有)하되 공동체도 날 확고히 보장해준다는 시스템이다. 경제학도의 눈으로 이 공유시스템을 한 번만 더 생각해본다. 핵심을 짚기 위해 보통사람인 갑의 본성과 관련해 경제학에서 늘 상정하는 두 기본전제만 수용하자.

첫째, 첫 포대의 쌀 소비에 가장 만족하며 이후 만족감은 점차 떨어진다. 이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 부른다. ‘한계’는 ‘추가 한 단위로부터의’를 뜻한다. 쌀생산이 경작시간에 비례한다면, ‘경작이 가져다주는 한계효용도 체감’한다[전제 1]. 한편 경작에는 고생(비용)이 따른다. 오래 일할수록 대개 시간당 힘이 더 들므로 경작의 한계비용은 체증한다.
둘째, 합리적인 갑은 추가 효용과 고생이 같아질 때까지 일한다. 즉 딱 ‘한계효용=한계비용’이 될 때까지의 경작이 최적이다[전제 2]. 8시간씩 일했던 이유는 9시간째에서는 한계비용이 반대로 7시간째에서는 한계효용이 더 컸기 때문이다.

‘n빵 룰’ 이후 갑은 어떻게 될까. 마을에서 50포대는 주므로 이전처럼 8시간 일해 절반 내주고 결국 총 100포대 소비? 과연? 우리 보통사람의 본성상 이게 그렇게 되질 않는다. 
먼저 경작의 한계효용은 모든 시간대에서 떨어진다. 두 요인이 작동한다. 수확한 쌀 ‘전체’가 아닌 ‘잔량’을 이제 생각하므로 경작의 시간당 한계효용이 감소한다. 게다가 경작할 때 갑이 느끼는 효용은 (이미 확보된 50포대 때문에) 실제로는 51번째 포대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전제 1]에 의해 한계효용은 더욱 줄 수밖에 없다.

한계효용은 이렇게 쪼그라들지만 경작의 수고로움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예전 8시간째 경작의 한계비용은 한계효용을 초과해버린다. 따라서 [전제 2]에 의해 경작시간을 줄이는 것이 최적이다. 예컨대 6시간으로 단축하며 생산량도 한 해 80포대로 줄어든다.

다른 평균적 농부 을(乙)도 동일 유인을 갖는다. 결국 마을 전체가 덜 일하며 덜 먹게 된다. 갑과 을의 생각: “집에 쌀이 줄었군. 근데 일을 더 하려 해도 내게 별 이득이 없네. 헐 마치 무슨 덫에 갇혀버린 기분이군. 근데 어쩌겠나 그냥 이렇게 살자.”

나라 단위로 확장해보면, ‘내 것과 네 것을 무조건 섞는’ 법제를 강화하면서 시민들의 삶이 찌든다는 함의가 도출된다. (이전에도 일정 세금은 있었으나 편의상 논외로 하였음.) 물론 이런 악영향은 ‘마구 섞는 비율’ 즉 나눠먹기와 중과세강탈의 정도에 비례한다.

혹자는 갑과 을의 이런 행동을 결여된 시민의식이니 무임승차 따위로 치부할지 모른다. 이런 걸 시쳇말로 억까라고 불러야 하나. 공유시스템의 강화가 근본패착이었는데 합리적으로 반응했을 뿐인 시민들에게 덤터기 씌울 게 아니다. 

되레 이 현상은 『사이언스』지 발표논문에서 Garrett Hardin이 설명한 ‘공유의 비극’과 일맥상통하다. 재산권이 미확립되면 비극을 낳는다는 주장이었다. 이미 훨씬 전 『리바이어던』에서 Thomas Hobbs가 그렸던 ‘정글’이 주는 함의도 결정적이다. 가난, 외로움, 불결, 잔인, 단명 등으로써 그는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없는 정글에서의 우리 삶을 묘사했다.

나아가 혹자는 ‘6시간 경작 & 80포대 생산’의 균형에 이른 위 추론이 심하게 비관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가령 “공동체의식이 충일하다면 더 열일하는 갑을 기대해할 수도?!” 그러나 비록 이타심이 존재하더라도 순수 본성의 힘은 실로 강하다는 점을 역사는 여실히 보여주곤 하였다. 또 “시민의 유형은 다방면에서 다를 것”이라는 지적도 핵심과의 거리는 멀어 보인다. 심지어, “이전 생산량(100 포대)을 강제하는 제도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하면?!” 아니다, 이런 상상 자체가 우리 체제의 부정이며 역사의 후퇴이다.

사실 위 추론은 아직 대단히 낙관적이다. 악화요인들이 허다하다. 촌장과 옆의 조력자들이 자기네 노임이라면서 뺏은 포대마다 각자 쌀 몇 움큼씩 빼낸다. 세상에 공짜가 있겠나. 또한 농사보다는 지원받으려고 노력하는 게 더 남는 장사라는 점을 이내 갑은 깨닫는다. 그래서 나눠먹기에 열중하며 특히 촌장 주변에 꼬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전투구가 격화되면서 완장 찬 꾼들은 급히 늘지만 농부는 점점 사라진다. ‘n빵 마을’의 황폐화를 부추키는 치명적 요인들이 이말고도 지금 꼬리를 물며 머릿속에 떠오른다.

대한민국의 사회부조와 사회보장 수준을 올리자는데 누가 어깃장을 놓겠는가. 단 그 방식은 열악한 계층들에 대한 선별지원이어야 한다. 또는 시장에서 혼자 대비하기 벅찬 위험들을 집단적으로 보장하되 보험의 형태를 엄수해야 한다. 각종 밑장을 무조건 깔아준다지만 실상은 비극적 공유시스템으로 치닫게 하는 장밋빛 구호들을 엄중 경계한다.

일러스트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일러스트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김일중 교수경제학과
김일중 교수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