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오유진 (5dbwls5@hanmail.net)

고등학생 때까지 평생 써온 일기는 ‘기록’ 그 자체였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어 일기장을 펼쳤던 어느 날, 몰아치는 감정을 담아낼 표현을 찾고 글을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마침내 내 인생에 새로운 출발선을 그었다. 그날부로 과학 전문 기자를 꿈꾸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기는 ‘대화’로서의 의미를 얻었다. 언제고 불러낼 수 있는 대화상대가 생긴 것이다.

그런 내가 수습기자가 되어 처음 써 본 기사라는 글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대화는 철저히 걷어내고 오로지 사실과 자료를 기반으로 기록만을 담아야만 했다. 첫 고난이었다. 이때 참 많은 사람과의 대화가 오갔다. 내게는 성대신문에 첫 애정을 갖게 해준 아주 소중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참 예쁜 말들로 나를 다독였고 어떤 결단을 내릴 용기와 힘을 줬다. 이외에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존경하는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결론에 도달했고, 그 과정이 다소 버거웠던 만큼 강한 확신을 얻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 또 한 번의 고난이 찾아왔다. 이전과 다를 게 있다면, 이번엔 나 자신에게 대화를 청했던 거다. 오랜만에 느껴본 괴로움에 대해 차근히 설명했다. 끝내 글을 완성해내진 못했다. 그래서 아직 남겨진 숙제가 많고, 의심과 혼란은 여전하다. 하지만 중요한 가르침들을 얻었다. 그것들을 잘 정리해내고 나니 이윽고 사람들이 떠올랐다. 신문사 사람들. 그들 한명 한명에 관한 생각들은 나의 어지럽혀진 감정을 가라앉혔고, 유난히 쌀쌀했던 새벽 공기는 달아오른 불안을 식혀주었다.

현재로선 여기까지다. 초등학생 때 숙제 검사 이후 처음으로 일기장의 한 면을 누군가의 앞에 펼쳐 보인다. 재밌으면서도 무척 낯설고 두렵기까지 해서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부디 지나갈 어느 한순간을 담은 일기일 뿐임을 알아주기를, 이 글로 내 모든 걸 판단 혹은 단정 짓지 않기를 바라며 나와 나 자신 그리고 당신, 우리 셋의 대화를 마쳐본다. 원한다면 언제든 이 대화를 이어가 주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