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지윤 기자 (nanana@skkuw.com)
일러스트 | 서여진 외부기자webmaster@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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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새벽, 전남 여수시 덕충동의 한 아파트에서 한 30대 남성이 윗집의 40대 부부를 살해하고 그들의 부모를 크게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불만을 품던 남성이 소지하던 등산용 도구를 온 가족에게 휘둘러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웃 간의 살벌한 전쟁 소식이 들려온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산다면 그저 견뎌야만 할 문제일까? 우리 사회의 층간소음 문제에 대해 알아보자. 

소음에 취약한
벽식 구조의 아파트들
보복성 층간소음은
법적으로 불리해

쿵쿵, 윗집은 아직도 쥬라기 시대인가요?
빠른 도시화의 진행과 인구의 과밀화로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이 우리나라의 주된 주거 형태가 됐다.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층간소음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이하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상담 신청 건수는 4만 2250건으로, 전년 2만 6257건보다 60.9%나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었다. 

층간소음은 뛰거나 걷는 동작 등으로 발생하는 직접충격 소음과 음향기기, TV에서 발생하는 공기전달 소음으로 구분된다.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소음의 *수인한도를 주간(6시~22시)에는 43데시벨, 야간(22시~6시)에는 38데시벨로 규정하고 있다. 몸무게 20~30㎏의 아이가 1분 동안 집안을 뛰어다닐 때 발생하는 소음이 약 40데시벨 정도다.

소음에 취약한 구조로 건축된 
우리나라 아파트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웃사이센터의 현장 진단 결과에 따르면 층간소음의 발생 원인은 상당수 뛰거나 걷는 소리(67.6%)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웃 간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상호이해가 필수적인데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공동체 의식이 약해지고 대화가 단절되는 점이 문제다. 빈번히 주의를 줘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 윗집, 슬리퍼와 매트를 이용해도 계속 화만 내는 아랫집 간의 소통 부족은 갈등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층간소음을 단순히 입주자들의 인식과 태도만의 문제로 보아선 안 된다.

현재 우리나라 아파트는 대부분 벽식 구조다. 기둥으로 천장의 하중을 지탱하는 기둥식 구조와 달리 벽식 구조는 벽면으로만 천장을 받치고 있는 형태다. 기둥이 소음을 분산하는 기둥식 구조와 달리 벽을 타고 소음이 전달되는 벽식 구조는 층간소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바로 윗집뿐만 아니라 옆, 대각선 등 인접한 집들의 소음까지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 벽식 구조는 80년대부터 대규모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등장했다. 기둥식 구조는 전용 85㎡ 기준으로 벽식 구조보다 500만 원 정도의 공사비가 더 들어가고 공사 기간도 길다. 실제로 2007년부터 10년간 공급된 아파트 중 98.5%가 벽식 구조를 채택했으며 최근에도 주상복합과 몇몇 고급 아파트를 제외한 대부분이 벽식 구조로 지어지고 있다. 

부실한 시공 역시 층간소음의 고질적 원인이다. 층간소음을 줄이려면 콘크리트부터 완충재, 마감 모르타르 등을 규정 두께에 맞춰 제대로 된 소재로 깔아야 한다. 이에 국토부는 2014년에 바닥충격음 최소 성능 기준을 강화하고, 사전인증제도를 도입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사전인증제도는 건설업자가 공동주택 바닥의 소음 차단 성능을 사전에 인증받고 인증 내용에 따라 시공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2019년 5월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공사가 바닥구조를 사전에 신고한 내용과 다르게 시공했으며 시공상의 편의를 이유로 일부 절차를 생략하기도 했다. 실제 LH, SH가 시공한 22개 공공아파트의 94%가 사전 인증 때보다 등급이 하락했고, 이 중 53%는 최소 성능 기준에도 못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차상곤 소장은 “입주자들의 태도와 더불어 구조적인 문제까지 거론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야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며 “20년간 주 소음원이 발걸음 소리였듯 건축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년 후에도 변함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층간소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소음은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기능을 저하한다. 쉽게 벗어나기 힘든 주거 공간 속 지속적인 소음은 스트레스로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수면을 방해해 생체 리듬을 망가뜨린다. 특히 층간소음은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고통을 준다. 지난해 성남시로 이사한 A 씨는 “이사 온 날부터 윗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서 너무 힘들다”며 “아기를 재워도 갑작스러운 큰 소음에 금방 깨버리고, 모든 식구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오랜 시간 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겪으면 아주 작고 이전에는 개의치 않았을 정도의 소음에도 예민해지는 귀트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여름밤의 모기 소리처럼 특정 소리가 집중적으로 귀에 들어오는 것이다. 차 소장은 이를 ‘칵테일 파티 효과’로 설명한다. 그는 “시끄러운 칵테일 파티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귀에 쏙 들어온다”며 “무의식적으로 익숙함을 찾는 인간의 특성상 익숙한 소리에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소음을 들어도 그 소리에 계속 노출됐던 경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음 피해를 호소하며 윗집과 소통을 시도한 것이 감정 다툼으로 번져 더 큰 고통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소한 말다툼이 참혹한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위층에 대한 불만으로 아래층에서 막대기, 고무망치로 악의적으로 소음을 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여러 포털사이트에는 층간소음 보복용이라며 저음용 스피커인 우퍼스피커를 판매 중인데 일부 층간소음 피해자들은 이를 천장에 설치해 위층에 복수하기도 한다.

층간소음 상처는 어느 병원에서 고쳐주나요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은 정확한 발원지를 찾아내 측정하기가 어렵고 소음에 대한 민감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분쟁이 심해져 당사자 간 해결이 어려워지면 관리사무소, 경찰서 등을 찾게 된다. 여기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웃사이센터나 지자체의 민원상담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해당 단체들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에 대해 상담을 진행하고 해결을 돕는다. 그러나 A 씨는 “이웃사이센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며 “소음 측정 시 윗집 동의가 있어야 하고 1주간 집을 비워야 하는 점도 몰랐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규정한 기준이 까다로운 탓에 층간소음으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층간소음 기준을 초과했다고 인정된 사례는 1654건 중 122건(7.4%)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측정 시점에 소음이 발생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층간소음 문제를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는 없을까. 일부 피해자는 극심한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주장하며 상해나 폭행죄로 형사 소송을 걸기도 한다. 김지영 변호사는 “폭행죄는 어느 정도 근거리에서 일어나야 하기에 천장을 사이에 두고 상해나 폭행이 성립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손해배상으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김 변호사는 “변호사 선임비 대비 위자료 액수도 적을뿐더러 생활 소음에 대해서는 고의과실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며 “수인한도를 초과한 소음이 났다는 사실과 그 원인이 고의적 행위 때문이란 점을 아래층에서 모두 입증해야 한다”고 전했다. 오히려 우퍼스피커 설치와 같이 보복성 소음을 낼 때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래층의 소음이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고 고의성이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층마다 행복이 가득한 미래를 위하여
국토부는 내년 7월부터 사전인증제 대신 완공 이후 바닥충격음을 측정해 입주 전 소음을 확인하는 ‘사후확인제도’를 시행한다. 완공 이후 평가된 바닥충격음 차단성능이 기준에 미달하면 보완 시공 등을 권고할 수 있다. 해당 제도의 도입과 함께 건설사들은 슬래브 두께를 늘리는 등 소음 저감 기술 개발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단순한 소음 스트레스를 넘어 이웃 간 감정 다툼, 나아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까지 이어지는 층간소음. 여전히 뾰족한 묘수는 없다. 더불어 사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국가, 건설사를 포함한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할 때다. 

 

왼쪽부터 벽식구조와 기둥식구조.
왼쪽부터 벽식구조와 기둥식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