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도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작은 문제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외견상 가장 단순하고 확실해 보이는 해결책이 거꾸로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의료과오 소송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증명하기도 어렵고, 의사의 책임이 인정된다 해도 손해액이 크지 않은 편입니다. 이에 따라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최근에 통과되기도 했고, 과실이 없었다는 점의 증명책임을 의사에게 지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의사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고 손해액을 높이면 무조건 환자에게 좋을까요? 미국의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증거개시, 배심,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어 우리나라보다 의사의 책임을 증명하는 것도 용이하고 손해배상 규모도 큰 편입니다. 그러나 위험발생 확률이 높은 전문과목일수록 제소당할 위험이 높아지고 책임보험료도 매년 수십만 불에 이르러 의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의사들은 점차 위험한 전문과목을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산부인과입니다. 산부인과 의사 부족현상이 심화되자 결국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의 각주들은 의사의 손해배상책임에 상한을 설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30여 개의 주가 손해액 상한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 주들의 책임보험료는 상한제도가 없는 주의 1/4 정도에 불과합니다. 의사들은 당연히 상한제도를 둔 주를 선호하고, 해당 주 주민들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시행 2년째를 맞은 개정 고등교육법(일명 강사법)도 그렇습니다. 법 개정의 취지는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시간강사 채용절차를 전면 공개채용으로 전환하여 공정성을 높이며, 학기마다 체결하던 계약을 1년 단위로 연장하여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하고, 3년간 재임용을 보장하여 고용안정을 확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행 첫해부터 시간강사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했고, 강좌 통폐합으로 강좌당 학생수와 전임교원의 강의부담이 증가하였으며, 학문후속세대의 시간강사 진입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교육부가 시간강사 고용지표를 대학평가에 반영하면서 시간강사 채용인원이 약간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개정법 시행 전의 수준에는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온 국민의 관심사라 할 수 있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 7월부터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되면서, 임대인은 임대차기간 만료 시 추가로 2년을 연장해줄 의무를 부담하고 전월세도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법 개정의 목적은 경제적으로 약자인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주거안정을 도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월세 매물이 급감하고 전세금이 폭증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약자를 보호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데에는 비용과 노력이 듭니다.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없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떠안기면 그 누군가로서는 어떻게든 이를 최소화하고자 할 것입니다. 산부인과 선택을 기피하고, 시간강사 고용규모를 축소하고, 올릴 수 있을 때 전세금을 한꺼번에 올리는 등은 모두 추가된 부담에 대한 나름의 대응입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먼저 제도개선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아니면 부작용이 더 클 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제도개선을 추진하기로 한다면, 그로 인한 부담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게 맞을지 특정인에게 전가시키는 게 맞을지, 만약 특정인에게 부담을 지운다면 부담을 떠안는 측에서 순순히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라면 그에게 어떠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지, 다시 하나하나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의 공감을 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단순한 해결책을 섣불리 믿지 마십시오. 복잡한 문제에 대해 튀어나온 단순한 답은 대개 틀린 답입니다. 

일러스트 I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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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라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한애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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