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떠나기 전 수십 번 들었던 질문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백신도 없던 당시에 외국에 가서 생활하겠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모하다싶기도 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로 향했다.

나만한 캐리어 두 개를 들고 처음 로테르담에 도착했을 때, 저녁이었지만 여름이라 해가 길어 따뜻한 햇빛을 받을 수 있었다. 로테르담은 네덜란드 안에서 그래도 나름 큰 도시이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생각보다 더 작았고 평화로웠다. 자전거를 안 타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웠고, 학교에 있는 분수에서는 백조나 거위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기숙사는 깔끔했으며 모든 게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기숙사 옥상에서는 밤낮없이 파티가 계속되어 꼭대기 층에 살던 나는 수면부족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결국 계약을 해지하고 나왔어야 했다.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거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그 때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넓고 시설 좋은 학교에 가본 횟수가 손에 꼽았다. 학교 지리를 다 외우지도 못했는데 내 교환학생은 끝나버렸다.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로 계획했지만, 코로나 케이스가 급증해 락다운이 걸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집에서 맞이해야 했다. 유럽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사히 귀국하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다사다난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교환학생을 갈 때부터 각오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정신 없었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걸 알고 있어도 다시 가고 싶냐고 누가 물어보면 나는 망설임없이 가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네덜란드에서의 시간이 나에게 준 경험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생활을 온전히 설계해보는 것은 자립심을 키우는데 중요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크게는 핸드폰 요금이나 건강 보험, 작게는 오늘 먹을 메뉴까지 하나하나 다 내가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너무 익숙하거나 이미 되어있던 것들을 네덜란드에서는 바닥부터 내가 다시 쌓아올려야했다. 그만큼 생활하는 것 자체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지만, 지금 자취를 해보니 교환학생을 다녀온 그 시간이 더 값지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특별한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그런가, 그 무엇보다 특별한 인연들이 되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기만 해도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친구가 되었다. 룸메 언니들에게는 지금 생각해도 울컥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 일상의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했고 지금도 내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같은 수업을 들었다가 친해진 친구들과는 버블티 맛집을 찾아다녔다. 헤이그로 여행도 다녀왔고, 내가 떠날 때 기차역에서 누구보다 슬프게 울어주고, 지금도 서로 가끔 영상통화를 하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이 모든 친구들 중에는 같은 나라 출신이 거의 없었고, 그만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개성이 뚜렷했다. 그럼에도 그 시간동안 우리는 정말 행복했고, 서로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을 거라 의심하지 않는다. 

너무나 고마운 시간들이었고,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시간 속의 나는 정말 행복했었다.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이런 특별한 순간을 남겨도 좋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조예은(글경제 19)
조예은(글경제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