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여준 기자 (yjyj0120@skkuw.com)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속 10가지 원칙을 지배하는 본령은 하나인 듯하다.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다”라는 두 번째 원칙을 그것으로 꼽는다. 심지어 첫째 원칙인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마저도 결국은 시민을 위한 기능적 진실을 추구하라는 잠언을 담고 있다. 저널리스트는 철학에서 말하는 절대적 진실을 좇는 직업이 아니다. 시민이 자치하고, 자유를 얻는 데 기여하는 기능적 진실이 저널리즘이 좇을 목표다. “진실성(객관성)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려는 수많은 시도는 결국 공익에 탁월하게 기여하기 위한 수단을 정교화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그런데도 시민이 아니라 진실이 저널리즘의 첫째 원칙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저널리스트를 다른 직업과 구분하기 위함이다. 저널리즘은 다른 수단이 아니라 진실로써 시민을 이롭게 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취재 대상으로부터 독립하라, 공공의 비판과 타협을 위한 포럼을 만들어라, 포괄적이면서 비중에 맞게 보도하라, 그 밖의 모든 원칙은 결국 저널리즘의 본령인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 이 당연하다 못해 진부한 본령이 점점 자취를 감추는 것 같다. 성대신문 수습기자를 교육하는 문서 속에 “기자는 본질적으로 ‘기록하는 놈’이다”라는 경구가 있다. 기록은 자칫 사적인 작업이 될 수도 있기에, ‘기록하는 놈’보다는 ‘전달하는 놈’이 기자의 정의로 더 정확한 것 같다. 기자는 자신이 기록할 대상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기록이 누구에게 전달돼 무슨 일을 일으킬 수 있을지를 항상 떠올려 봐야 한다.

학보 위에 기사를 쓰지 않는 이제야 후회가 든다. 기사에 쫓기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 다른 사람이 마음속에 있을 자리가 없다. 무엇을 위해 기사를 썼는지 돌이켜보면, 그저 기사 쓰기 좋은, 당장 눈에 보이는 소재를 먼저 골랐다. 그렇게 기사를 쓴 다음에 이 기사가 가질 수 있을 법한 의미를 부여했다. 새내기 시절을 ‘올인’한 기사들이다. 출고 후면 늘 남던 씁쓸한 뒷맛은 기사가 본질에서 멀어져 있음을 암시하지 않았나 싶다. 대학생과 청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저녁을 먹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기사에 쫓기는 중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표현하는 놈’은 앞서 말한 ‘전달하는 놈’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지금껏 독자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한 건지, 이 지식에 관한 자신의 관심을 ‘표현’했을 뿐인지 점검했다. 지금 성대신문 기자들의 마음속에는 독자가 들어있는지 걱정한다.

성대신문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밑 작업이 분주히 진행되는 중이다. 곧 출범하는 뉴미디어부는 성대신문과 독자를 잇는 교량이 될 것이다. 새로 뽑힌 수습기자는 재건된 교량 위를 걷는 첫 기수가 된다. 교량이 완공되기 전에 성대신문은 자문해야 한다. 첫째로 자신이 무엇을 위해 기사를 쓰는지 물었으면 한다. 기사를 읽는 독자에 앞서 기사에 기록되는 대상에 봉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기사로 자기 관심을 표현하는 데에 치중해오지는 않았는지 점검했으면 한다. 교량이 건설된다면, 남은 일은 기자들이 독자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성대신문, 이제 대원칙으로 돌아갈 때다.

 

황여준 부편집장 yjyj0120@skkuw.com
황여준 부편집장
yjyj0120@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