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하진 (noterror0404@skkuw.com)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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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없이 자율적으로 유지되는 비트코인
암호화폐, 자산과 화폐의 갈림길에 서다

 

기존 화폐를 대체할 새로운 화폐로 야심 차게 세상에 나왔던 비트코인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투기 자산의 대표 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5월 △엠브레인퍼블릭 △코리아리서치 △케이스탯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수행한 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 이상이 비트코인을 ‘실체 없는 투기라고 본다’고 응답했다. 최근 들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의 도입이 늘어나며 비트코인이 건전한 화폐로 이용될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과연 비트코인은 투기 자산의 오명을 벗고 탈중앙화 화폐로 거듭날 수 있을까?


비트코인, 초심으로 돌아가나
비트코인이 우리 일상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달 26일 글로벌 신용카드사 마스터카드(Mastercard)가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 백트(Bakkt)와 협력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비자(VISA) 이후로 또 다른 거대 글로벌 신용카드사가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결제 서비스 업체인 베리폰(Verifone)까지 암호화폐 결제 도입을 결정하며 베리폰의 결제 서비스 단말기를 사용하는 상점이라면 어디든 암호화폐 결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암호화폐 ‘페이코인’의 운영사 다날핀테크가 지난 6월부터 CU, 교보문고, 버거킹 등 주요 프랜차이즈와 제휴해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화폐로서의 비트코인 대중화가 어쩌면 막연한 꿈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여러 기업으로부터 주목받는 비트코인의 시작은 기사 한 줄이었다. 2009년 1월 3일,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 1면 헤드라인은 “은행들의 제2차 구제금융을 앞둔 재무장관”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파산 위기에 처해 있는 은행을 영국 정부가 공적 자금으로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 헤드라인과 함께 50 비트코인을 전송함으로써 비트코인의 제네시스 *블록을 생성했다. 제네시스 블록이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처음 생성된 블록으로, 해당 블록체인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의 기존 금융 시스템을 비판하려는 의도와 함께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비트코인 개발의 동기임을 시사한다.


중앙은행의 날씨는 가끔씩 흐림
중앙은행은 독점적인 화폐 발행권을 바탕으로 금융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화폐 발행량을 정하고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한다. 이때 직접적으로 발행량을 증가시키기보다는 기준금리를 조절하는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상황에 맞게 통화정책을 시행한다. 인플레이션일 경우 기준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이고 물가를 안정시키며, 반대로 디플레이션일 때는 기준금리를 인하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펼친다. 잘못된 통화정책을 시행할 시에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베네수엘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사태다.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 최대의 원유매장량을 기반으로 풍족함을 누리던 국가였지만 유가 폭락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됐다. 이때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가 수익의 감소를 메꾸기 위해 화폐를 과도하게 발행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했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결국 물가 수준이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급등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사태까지 발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베네수엘라의 2018년 물가 상승률은 6만 5374%로 지금까지도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우리 학교 경제학과 이승덕 교수는 “중앙은행이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할 수 있는 현재의 화폐 시스템은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베네수엘라의 경우와 같이 통화정책을 잘못 시행할 시 제일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국민이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의 법정통화인 볼리바르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베네수엘라에서의 살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세계적인 경제위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위기를 맞은 것이 미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세계의 문제로 확산했던 원인은 달러가 기축통화였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는 국제 거래 혹은 금융 거래에 표준적으로 사용되는 화폐다. 과거에는 세계 경제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동시에 달러와 금의 교환 비율이 정해져 있는 금본위제 체제였다. 이후 미국이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하며 달러는 가치를 보장해줄 실물 담보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니는 국력에 기반한다. 일국의 통화가 기축통화로 지정되었을 때 생기는 트리핀 딜레마로 인해 미국은 항상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트리핀 딜레마란 기축통화국이 *경상수지 적자일 때는 기축통화의 공급량이 증가해 기축통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흑자를 볼 때는 기축통화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세계 경제가 위축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선택을 해도 위험 상황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기축통화국으로서의 딜레마다.


화폐혁명의 선봉장, 비트코인
비트코인은 세계 최초의 탈중앙화 암호화폐다. 중앙기관이 화폐를 발행하는 대신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제시한 암호를 컴퓨터 연산을 통해 가장 빨리 해독한 이용자에게 코인을 지급하기 때문에 화폐의 발행량을 조절할 수 없다. 따라서 비트코인은 중앙기관 없이 수평적이고 분권적인 화폐 시스템을 형성한다. 발행하는 중앙기관이 없으니 기축통화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금융위기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가 흔들릴 일도 없을뿐더러 트리핀 딜레마에서도 자유롭다는 뜻이다. 기존 화폐와 달리 비트코인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2100만 개로 발행량이 제한된 것 또한 특징이다. 동국대 경제학과 이철환 교수는 “발행량의 제한을 통해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이라며 “중앙은행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기존 중앙화 시스템의 단점을 암호화폐가 극복했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는 한 블록 당 담을 수 있는 거래 정보량이 제한돼 거래량이 많아질수록 블록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때 블록이 얼마나 빨리 생성될 수 있는지가 관건인데, 비트코인의 경우 블록 하나가 생성되려면 10분이 필요하다. 이는 초당 7번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속도다. 이승덕 교수는 이에 대해 “현재 전 세계 신용카드 점유율 1위인 비자카드의 네트워크는 초당 2만 4000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턱없이 느린 속도”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비트코인의 가격 불안정성이다. 비트코인은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명목 화폐다.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비로소 가치를 지니는 화폐이므로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 여부에 따라 화폐로서의 존폐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는 기존의 화폐도 마찬가지지만 비트코인의 경우 화폐의 가치를 보장하는 중앙기관이 부재한다. 따라서 규제 정책 발표나 유명인사의 말 등의 사소한 요인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변동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변동성으로 널뛰는 가격을 이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 세력이 모이게 된다. 현재 비트코인이 투기 자산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디지털 세상으로의 막을 열다
암호화폐가 투기 자산으로 인식되는 현재 상태를 벗어나 본래의 목적대로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승덕 교수는 “기존의 화폐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며 “현재 암호화폐는 △가치의 저장 △가치의 척도 △교환의 매개라는 화폐의 3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며 오히려 자산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이철환 교수는 “자율적인 글로벌·디지털 시대로 나아가는 추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화폐는 기존 화폐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보다는 탈중앙화의 특성을 가진 암호화폐”라면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암호화폐 또한 진화를 거듭해 궁극적으로는 승자가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관점을 드러냈다. 실제로 비트코인 이후로 다양한 형태의 화폐들이 등장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기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알트코인은 비트코인에서 특정 요소를 변형하거나 추가해 새로운 암호화폐를 형성한다. 블록 생성 속도를 15초로 단축하고 *스마트 컨트랙트의 확장성까지 지닌 이더리움이나 가격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담보 요소를 추가한 스테이블 코인이 그 예다. 민간 암호화폐가 많아지는 현실에 대응해 각국의 정부도 CBDC 도입을 서둘러 검토하고 있다. 이승덕 교수는 여러 가지 화폐의 미래에 대해 “사회구성원 개인마다 다른 선호와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단일화폐로의 통일보다는 소수의 암호화폐가 CBDC나 현금과 함께 공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블록=데이터의 집합을 세는 단위.
◆경상수지=국가 간 기업이나 정부가 행한 모든 대외적인 거래에 의한 수입과 지출의 차액.
◆스마트 컨트랙트=계약 조건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조건이 충족됐을 경우 계약이 실행되게 하는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