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농구 좋아하세요?” 채소연이 묻는다. “네. 아-주 좋아합니다. 난, 스포츠맨이니까요.” 강백호가 대답한다. 대사나 인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한 부분이다. 워낙 명장면이 많은 만화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손에 꼽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슬램덩크는커녕 농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KBL, 국가대표 경기, 심지어 농구 웹툰까지 보는 내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뭔가 엄청난 사연으로 이렇게 된 것 같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작은 정말 사소했다. 우연히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쏜다>를 봤는데 꽤 재미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농구 표를 예매해버렸다. 그렇게 혼자 지하철 4호선을 50분이나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 안양 실내체육관에 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주말 오후에 집 밖에 나가는 것은 더 싫어하는데 무언가 나를 경기장으로 이끌었다. 경기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선수도, 규칙도 잘 모르는 상태라서 그냥 내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팀이 졌다는 사실만 선명하다. 그래도 그 공기와 느낌은 뚜렷하게 남아있다. 경기장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바닥에 신발이 끌리는 소리, 공 튀기는 소리, 울려 퍼지던 음악 소리까지 좋았다. 바깥세상과 차단된 느낌은 밀린 강의, 과제에 대한 걱정을 잊게 할 만큼이었다. 이것이 내 인생 최초의 직접 관람한 농구경기였다.

그 이후에 몇 번 더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내 팀이 되어버린 그 팀이 플레이오프 6강에서 탈락해버렸다. 결국, 나의 첫 시즌은 그렇게 단 한 번의 직관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리고 10월 9일, 새로운 시즌이 열렸다. 10월 31일 1라운드 경기가 끝났다. 비시즌간 착실하게 쌓아온 농구 지식을 바탕으로 감히 우리 팀의 우승을 예상한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느낌이 좋다. 아마 다음 시즌에도 그럴 것이다.

농구의 매력은 1초의 소중함이라고 생각한다. 농구에서 4쿼터에 남은 마지막 1초는 세상에서 가장 긴장되는 1초 중 하나다. 동점이라면 승부가 결정되고 2점이나 3점 차이라면 동점, 또는 역전까지 가능하다. ‘그런 일이 얼마나 있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난 시즌 허훈 선수가 1초도 안 남은 상황에서 버저비터로 연장행을 이끌었다. 최근 경기에서는 김영환 선수가 한 경기에서 2쿼터와 3쿼터 마지막에 버저비터를 2개나 넣었다. 그중 하나는 22m에서 던진 공이다. 이런 작은 순간을 위해 선수들은 뜨거운 여름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 열정이 아마도 나를 농구장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공 하나를 잡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저렇게 열심히 한 적이 과연 있었을까?’ 되돌아본다. 고3 때 꽤 최선을 다한 것 같기는 한데 다시 보면 막상 그렇게 노력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항상 적당히 살아왔지만, 진심인 사람들 앞에서는 나도 결국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틀 뒤 다시 경기장으로 갈 예정이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강백호는 채소연에게 말한다. 위의 장면에 이 대사까지 합쳐졌을 때 비로소 우리 기억에 남겨진다. 한국 농구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들을 때면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속이 상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바스켓볼 맨’이 된 강백호들로 경기장이 가득 채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서울 연고 팀에는 sk 나이츠와 삼성 썬더스가, 수원에는 kt 소닉붐이 있으니 한 번쯤 농구장에 가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