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구희운 기자 (cloud@skkuw.com)

【노벨 물리학상 -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

복잡계 통해 알아보는 노벨 물리학상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은 △슈쿠로 마나베 △조르지오 패리시 △클라우스 하셀만에게 돌아갔다. 마나베와 하셀만은 기후 모델링에 관한 업적을, 패리시는 '스핀 글라스 이론'을 포함해 복잡계 연구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키워드는 ‘복잡계’다. 복잡계란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우리 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는 “교통망이나 전력망이 우리 일상생활 속 복잡계의 예시”라며 “최근에는 도시를 하나의 복잡계로 보는 물리학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의 기후를 복잡계로
마나베와 하셀만은 지구의 기후를 하나의 복잡계로 보고 기후 모델링을 진행했다. 마나베는 수학적 이론과 대기의 물리적 특성만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증가했을 때 지구 표면 온도가 얼마나 상승하는지 추정했다. 하셀만은 국소적인 환경 변화에 의해 빈번하게 바뀌는 날씨가 거시적으로 지구온난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스핀 글라스 이론, 통계물리학에 큰 영향
앞선 두 과학자가 기상학 측면에서의 연구를 진행했다면 패리시는 복잡계 자체에 집중했다. 그 대표적인 업적이 스핀 글라스 이론이다. 스핀 글라스는 대표적인 물리 복잡계로, 격자 구조 위에서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스핀들로 구성된 이론모형이다. 이때 스핀이란 원자나 전자와 같은 양자역학적인 입자가 가지는 고유한 내부적 특성이다. 스핀 글라스 안의 스핀 사이에는 일정하지 않은 무작위적인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따라서 스핀 글라스에서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인 에너지 바닥 상태는 하나가 아닌 여러 상태로 존재한다. 

이렇게 복잡한 스핀 글라스의 온도가 변하면서 어떤 *상전이를 보여주는지는 전통적인 이론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였다. 패리시는 스핀 글라스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이는 이후 통계물리학 분야의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유리는 물리학에서는 ‘구조적인 글라스(structural glass)’로 불린다. 스핀 글라스와 구조적인 글라스는 비슷한 에너지를 가지는 여러 상태가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 교수는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더 두터운데, 이는 유리 속 입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중력의 영향으로 조금씩 아주 천천히 아래로 이동하기 때문”이라며 “유리와 스핀 글라스 모두 아주 복잡한 ‘에너지 풍경(energy landscape)’을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처럼 복잡한 에너지 풍경을 가지는 경우에는 물리 시스템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하기 어렵고, 따라서 가장 에너지가 낮은 바닥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덧붙였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밑부분이 두꺼워지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패리시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유에 대해 “패리시는 스핀 글라스 이론 외에도 표면 거칠기에 관한 연구 등 복잡계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왔다”며 “무질서한 물리 복잡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이론적인 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상전이=물질이 온도나 압력과 같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 다른 상으로 바뀌는 현상.

 

스핀 글라스의 구조 도식.ⓒJohan Jarnestad/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스핀 글라스의 구조 도식.
ⓒJohan Jarnestad/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