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혜균 (sgprbs@skkuw.com)

인터뷰 - 봉앤줄 안재현 예술가


서커스를 통해 배운 사고의 확장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봉앤줄만의 서커스 창작하고파

 

“매번 줄에 오를 때마다 목숨을 걸어요.” 서커스창작집단 봉앤줄(이하 봉앤줄)의 안재현 예술가는 본인에게 서커스는 죽음과 맞닿아있을 만큼 위험하지만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봉앤줄은 안 예술가가 2015년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2016년 3월에 설립한 컨템포러리 서커스 단체다. 봉과 줄로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서커스를 하게 된 계기는.
원래는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5년간 활동했다. 당시 몇 년을 연기해도 실력이 오른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 배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대학로 안에 갇혀 매일 보는 사람과 같은 일을 하며 느낀 권태도 있었다. 그러다 2015년에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정 워크숍을 들으며 6m 길이의 봉인 차이니즈 폴과 줄의 한 종류인 타이트 와이어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서커스는 마치 스포츠와도 같아서 연기와 달리 꾸준히 노력하면 실력이 오른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 점에 재미를 느껴 계속해서 연습하다 보니 불가능할 것 같았던 다리 찢기가 2년 만에 가능해졌다.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니 자연스레 생각에도 한계를 두지 않게 됐다. ‘모든 건 시간문제일 뿐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처럼 서커스가 내게 준 긍정적 효과에 매력을 느껴 서커스 예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봉앤줄이 공연하는 서커스에 대해 설명해달라.
창작할 때도 장르에 한계를 두지 않으려는 편이다. 그래서 서커스 기예에 음악, 연기 등 다양한 예술 형태가 결합된 장르인 컨템포러리 서커스를 하고 있다. 새 작품을 구상한 뒤 기타리스트, 판소리꾼, 피아니스트 등 그에 맞는 예술가를 섭외해 협업하며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대표작 <외봉인생>에선 판소리, 대금 등 우리나라 전통 연희에 맞춰 6m 높이의 줄을 타는 서커스를 선보였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 2021에서 공연한 <태움>은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내레이션과 라이트 디제잉이 결합된 공연이다. 이번 서울거리예술축제 2021에서 공연한 <잇츠굿>을 통해선 피아노와 타악기에 맞춰 굿 형태의 서커스를 선보였다.


매 공연을 즉흥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거리예술 자체가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즉흥성이 큰 장르다. 또한 봉앤줄 공연은 6m 줄 위에서 하지만 연습과 리허설은 4m 높이에서 한다. 6m에서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2m의 차이는 줄에 올랐을 때 체감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크게 느껴진다. 4m 높이에서 연습한 세밀한 것들은 실전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미리 짜 놓은 구성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연극배우로 활동할 땐 하나하나 정해진 동작과 대사에 맞춰 연기해야 했다. 당시의 나는 틀에 갇힌 것 같아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보다 자유롭게 서커스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뼈대만 잡고 공연에 임한다.


실내극으로 진행하는 서커스도 존재한다. 거리예술의 형태로 서커스를 창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서커스는 몽환적인 성격이 강하다. 보통 서커스라는 말을 들으면 화려한 분장과 현란한 동작의 향연이 떠오르지 않나. 그래서인지 공연이 끝나면 잠에서 깨듯 허무했고,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건 강하고 자극적인 장면뿐이었다. 마냥 화려하고 현실에서 붕 뜬 느낌의 서커스보다는 그 이면에 현실적이고 나약한 요소도 담긴 서커스를 만들고 싶었다. 서커스를 하는 사람이 초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관객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상 공간에서 공연하며 현실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때 관객은 공연을 보며 서커스의 몽환적이고 상징적인 요소가 현실 공간에 개입해 공존하는 *헤테로토피아의 경험을 하게 된다.


아직까진 서커스가 작품보단 기행이나 이벤트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오랜 시간 서커스는 예술과 분리된 하위 오락 문화로 인식됐다. 아직도 그러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서커스의 매력이 주목받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서커스는 예술공연 중에서도 가장 육체적이고 본능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이다. AI의 등장으로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오가는 현대 사회에서 서커스는 인간성과 몸의 직접적인 부딪침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분들이 서커스의 매력을 느끼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헤테로토피아=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유토피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현실에 존재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장소를 일컫는다.

 

봉앤줄 안재현 예술가.@봉앤줄 사진 제공
봉앤줄 안재현 예술가
ⓒ봉앤줄 사진 제공

 

서울거리예술축제 2021에서 <잇츠굿>을 공연하는 모습.
ⓒ봉앤줄 사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