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혜균 (sgprbs@skkuw.com)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시대정신 담아 대중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든 거리예술
공공성 띠지만 자생력 갖춘 거리예술시장 필요해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됐던 거리예술공연이 하나둘 개최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노들섬 △문래 △서대문 일대 △용산역에서 열린 서울거리예술축제 2021(이하 서울거리예술축제)이 대표적이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공연된 다양한 형태의 거리예술은 시민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오늘날 거리예술이 거리와 대중에게 전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버스킹, 보도블록 위가 공연장으로 변하는 마법
‘버스킹’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거리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원래 버스킹은 ‘길거리에서 공연하다’라는 의미로 거리 음악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행하는 예술 전반을 일컫는 말인 버스크(busk)에서 유래됐다. 오늘날에는 아마추어 예술인이나 인디 가수, 소규모 단체가 즉석으로 펼치는 거리 공연이라는 축소된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 버스킹 문화가 정착한 건 2000년대 이후부터다. 홍대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던 인디 밴드 십센치(10CM), 버스커버스커 등이 성공하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버스킹 문화가 알려지면서 △홍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청계천 일대를 중심으로 버스킹 공연이 확산됐다.

버스킹은 서 있는 거리가 무대고 가로등이 곧 조명이다. 극장을 빌리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공연할 수 있어 인디 가수와 취미로 예술을 즐기는 일반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정기적으로 버스킹 공연을 진행하는 연합동아리 높은음자리에 소속된 이승빈(반도체 19) 학우는 “적은 홍보와 비용으로도 많은 대중과 상호작용하며 공연할 수 있어 버스킹 공연을 즐겨 한다”고 전했다. 대중은 버스킹을 감상하며 일상 공간에서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평소 버스킹 관람을 즐기는 박수연(아동 16) 학우는 “색다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버스킹의 매력”이라고 밝혔다. 용인대 연극학과 김종석 교수는 “버스킹은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민에게 공간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한다”고 설명했다. 

광장에서 꽃피고 축제로 향유하는 거리예술
거리예술은 1968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근대 엘리트 예술이 미술관이나 극장처럼 정형된 장소에서만 향유되도록 규범화된 점을 비판했다. 예술이 일상과 동떨어져 소수의 특권층만 이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누구나 문화예술을 소비하고 감상할 권리가 있다는 정신에서 거리예술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거리예술은 버스킹을 포함해 △공공미술 △그래피티 △서커스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그중 공공재단이 지원하는 대규모 공공 축제도 시민 사회에 자리 잡았다. 올해 서울거리예술축제를 총괄한 서울문화재단 축제팀 김영규 과장은 “거리예술축제는 많은 대중이 문화예술을 접하고 주체적으로 즐길 기회를 제공한다”며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진 못했지만 대신 축제 공간을 나눠 여러 일상 공간에서 서울 시민이 거리예술을 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서울거리예술축제가 진행되던 노들섬에선 저마다의 방법으로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얼음땡’ 게임을 입체적인 놀이판으로 재구성한 관객 참여형 설치미술 ‘즐거운 놀이-판’과 재생 플라스틱 화분으로 숲을 형상화한 설치미술 ‘서울숲’ 사이를 뛰노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계단 아래 잔디마당에는 헤드셋을 끼고 영상 작품을 감상하는 시민도 있었다. 평소 바쁜 직장 생활과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했던 A씨는 지난 13일 주말을 맞아 가족과 거리예술축제에 참여했다. 그는 “집 근처에서 거리예술축제가 열렸다길래 가족과 함께 노들섬에 방문했다”며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거리예술은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현재 서울, 안산뿐만 아니라 부산, 포항 등 다양한 지역에서 거리예술축제를 유치해 대중이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거리예술, 대중에게 질문을 던지다
일상 공간을 무대로 삼는 거리예술은 삶과 밀접한 소재를 다루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기도 한다. 김 교수는 “거리예술공연은 예술가와 관객의 상호작용을 전제하므로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관객의 참여를 효과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공연하는 장소나 시대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정신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거리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마당극 또한 시대정신을 담았다. 1970년대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기였다. 이에 우리 학교를 비롯한 서울대, 연세대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통 연희를 복원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마당극이 등장했다. 2001년 이래 거리예술창작을 지원해온 경계없는예술센터의 이화원 대표는 “1970~80년대는 민주화 열망이 들끓던 시기이자 인간 소외 등 자본주의 사회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기되던 때였다”며 “마당극은 이러한 현실을 비판한 공연으로서 큰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현대 거리예술도 대중에게 삶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거리예술창작집단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관객 참여형 공연 ‘거.리.끼.다’는 공연 절반 이상이 ‘거리’라는 단어를 소재로 한 언어유희와 만담으로 이뤄졌다. 두 명의 배우는 만담을 통해 관객에게 거리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환기하고 코로나19로 사람들이 거리를 둬야만 하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공연을 관람한 직장인 김재희(29) 씨는 “‘사람들끼리 거리끼는 것을 거리낀다’는 배우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며 “코로나19로 소원해진 인간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밝혔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김승언 연출가는 “서로 거리두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음의 꽃을 주고받으며 위로하고자 공연을 기획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거리예술은 시대 화두를 다루며 관객에게 예술을 통한 공감과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

거리예술, 만개하기 전 남은 과제들
몇 년 사이 우리나라 거리예술공연계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거리예술이 대중의 일상 거리에 깊이 자리잡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현재 거리예술공연의 대부분은 공연료를 받지 않고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거리예술이 대중에게 예술 감상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현재 거리예술공연계는 거리예술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지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원금이 부족해지면 거리예술 창작 및 공연 또한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거리예술이 부흥하기 위해선 거리예술시장이 어느 정도 자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원 형태가 한정돼 있다는 문제도 남아있다. 김 과장은 “거리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선 지원금뿐만 아니라 창작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며 “서울문화재단의 경우 광진구에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마련했지만, 그 외 창작 공간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단순한 지원금 확대 외에도 거리예술가들이 다양한 거리예술을 개발하고 실험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이 마련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거리예술축제 2021 설치미술 '서울숲'.
서울거리예술축제 2021 설치미술 '서울숲'.
설치미술 '즐거운 놀이-판'.
설치미술 '즐거운 놀이-판'.
관객 참여형 공연 거.리.끼.다.사진ㅣ김혜균 기자
관객 참여형 공연 거.리.끼.다.
사진ㅣ김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