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오유진 (5dbwls5@hanmail.net)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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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초의 정의를 바꾸다
우리 몸속에도 시계가 있어 시계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 학기 그리고 2021년의 끝이 다가온다. 현대사회는 1초 단위로 바삐 흘러가고 있다. 그렇게 3153만 6000초가 모여 1년을 이룬다. 1초란 무엇을 기준으로 측정되는 것일까. 우리 몸속 시계인 ‘생체 시계’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걸까. 이번 학기 마지막 발간을 맞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시계에 대해 알아봤다.

시계는 1초마다 ‘똑딱똑딱’
세 개의 시곗바늘 중 가장 바삐 돌아가는 건 초침이다. 1초는 누가, 언제, 어떻게 정한 걸까.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과학적 시간의 표준은 ‘세계협정시(Universal Time Coordinated, UTC)’다. 이는 국제도량형국(Bureau International des Poids et Mesures, BIPM)에서 관리한다. 현재 1초의 정의는 2018년에 정해진 것으로, 원자시계를 기준으로 측정된다. 원자시계란 원자 내의 전자가 변하지 않는 고유한 진동수를 지니는 것을 활용한 시계다. 현재 1초의 정의에 쓰이는 원자는 원자번호 55번의 세슘(Cs)이고, 세슘 원자 내 전자의 진동수는 91억 9263만 1770Hz다. 즉 이러한 세슘 원자를 이용해 정의한 1초는 세슘 원자 내의 전자가 약 91억 번 진동하는 시간인 것이다.

1초의 기준이 바뀐다?
이러한 1초의 정의는 2030년 즈음부터 바뀔 예정이다. 1초의 재정의에 우리나라가 개발한 시계가 함께하게 됐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orea Research Institute of Standards and Science, 이하 KRISS)이 개발한 광시계인 ‘KRISS-Yb1’이 그 주인공이다. 광시계도 원자시계와 같이 하나의 원자를 기준으로 하는데, KRISS-Yb1은 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원자번호 70번의 이터븀(Yb)이 쓰인다. 광시계 역시 원자시계와 마찬가지로 원자 고유의 진동수를 활용한다. 다만 광시계는 기체 상태로 떠다니는 원자의 진동수를 측정하는 원자시계와 달리 레이저 냉각기술을 이용해 원자를 격자 모양 안에 포획한 뒤 진동수를 측정한다. KRISS 물리표준본부 소속 시간표준그룹 허명선 그룹장은 “이터븀 원자는 1초에 약 500조 번 진동해 세슘 원자보다 진동수가 약 5만 배 크다”며 “시간의 간격이 조밀한 만큼 약 100배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1초인 만큼 이를 결정하는 시계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과 시계의 장기적인 시간 측정 데이터가 관련 전문 연구자들의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장기적 심사 과정을 통과한 결과 지난 10일부터 우리나라가 세계협정시 개발에 참여하게 됐다. 이는 프랑스, 일본,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다. 허 그룹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의 표준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돼 정말 자랑스럽다”며 “이는 수십 년간 많은 연구진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으로 일군 성과”라고 밝혔다.

우리 몸속 시계도 읽을 줄 알아야
1초가 8만 6400번 지나서 하루를 만드는 동안 하루를 주기로 쉬지 않고 돌아가는 시계가 우리 몸속에도 존재한다. 바로 ‘생체 시계’다. 생체 시계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김경진 석좌교수는 “오래전부터 뇌 시상하부 속 ‘시교차 상책(Supra Chiasmatic Nucleus, 이하 SCN)’이라는 세포 집합체가 생체리듬과 연결고리가 있음은 알려져 있었지만 생체 시계라는 개념이 특정돼 있지는 않았다”며 “1980년대에 지금 우리가 생체 시계라고 부르는 유전자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유전자가 생체리듬과 연동돼 있다는 것이 계속해서 증명되는 중이며 관련 연구는 끊임없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생체 시계는 SCN이 속한 중추 신경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생체 시계 연구가 급물살을 타는 데 일조했다. 김 교수는 “말초 신경계, 즉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가 전부 생체 시계를 갖고 있음을 20여 년 전 발견했다”며 “이는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생리적 현상을 재해석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해당 연구의 교훈을 “물건도 아닌, 계속 흐른다는 사실뿐인 시간을 유전자가 자체적으로 감지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라고 짚었다. 밥을 주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작동하는 시계인 셈이다. 정리하면 생체 시계란 생체리듬을 유도하는 내인성 메커니즘이다.

생체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는 크게 두 개의 순환 고리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순환 고리가 동시에 돌아가면서 하루를 주기로 유전자의 촉진 및 억제를 관장한다. 가장 큰 톱니바퀴는 상위 유전자인 CLOCK과 BMAL1이 하나로 결합한 이합체가 해당한다. 첫 번째 순환 고리에서는 하위 유전자들의 이합체인 PER:CRY가 CLOCK:BMAL1 이합체의 활성을 억제하며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 두 번째 순환 고리에서는 BMAL1에 두 가지 하위 유전자들이 작용한다. 그 중 하나인 RORα는 BMAL1 발현의 촉진을, 나머지 하나인 REV-ERBα는 억제를 각각 담당하는 구조다.

생체 시계의 째깍거림에 귀 기울일 때
최근 들어서는 생체 시계의 오작동과 다양한 질환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에 생체 시계의 교란을 암과 대사 질환 발병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공인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밤이 되면 우울 및 불안 증세를 보이는 ‘일몰 증후군’ 현상의 원인을 생체 시계로 규명했다. 해당 증후군은 파킨슨 환자의 도파민 합성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김 교수는 “파킨슨 환자에 관한 데이터 자체는 풍부했고 증상도 잘 알려져 있었다”며 “데이터를 살펴보던 중 도파민 합성 유전자가 활동하는 위치가 생체 시계 유전자인 REV-ERBα가 작용하는 위치와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즉 생체 시계가 도파민의 합성에 영향을 주고 그것을 조절할 수도 있다는 걸 규명했다.

뇌인지과학 분야 이외에도 관련 연구의 확장 가능성은 무한하다. 김 교수는 피부 세포의 생체 시계를 이용해 특허를 낸 한 화장품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모든 세포에 생체 시계가 있다는 지식의 발견은 의학적인 치료 목적이 아니더라도 화장품 등 얼마든지 새로운 관점에서의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17년에는 생체 시계를 연구한 세 명의 과학자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 △제프리 홀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됐다. 김 교수는 “보통 노벨상 수상 이후 10~20년 사이 해당 분야가 굉장하게 발전한다”며 “현재는 수상 이후 4년밖에 지나지 않은 초기 단계로, 다양한 분야의 후학들이 생체 시계와 관련한 연구를 시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덧붙여 “설명이 어려웠던 수많은 현상을 생체 시계를 이용해 새롭게 들여다보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생체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