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naraekim3460@naver.com)
일러스트|서여진 외부기자webmaster@

오랜 숙원 끝에 시행된 스토킹처벌법
진정한 피해자 보호를 향해 나아가야

지난 3월 23일 노원구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가 끈질기게 스토킹을 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가해자의 처벌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22년 동안 발의 단계에 머물던 스토킹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빠르게 통과됐다. 지난달 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약 한 달이 흘렀다. 스토킹처벌법의 내용은 무엇이며 충분한 해결 방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자.

몇 동 몇 호인지는 알려준 적 없는데…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25세 여성 A씨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가해자 김태현(25) 씨를 알게 됐다. 김 씨는 A씨의 거절 의사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만남을 요구해왔다. 정확한 집 주소를 알려준 적도 없는데 집을 찾아온 김 씨로 인해 A씨는 지인들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3개월간의 스토킹 끝에 김 씨는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해 A씨와 그 여동생, 어머니까지 살해했다. 

스토킹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과 그의 동거인 또는 가족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주거·직장·학교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인터넷·전화로 연락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스토킹처벌법 적용 이전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에 의거해 10만원 이하의 벌금형만을 내릴 수 있었다. 인터넷·전화를 통한 불안감 조성이나 폭력, 협박이 동반됐다면 정보통신망법과 형법에 의해 해당 행위에 대해서만 범죄로 처벌할 수 있었고, 스토킹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달 21일부터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스토킹 행위의 반복을 직접적인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이제 일련의 스토킹 행위들이 쌓여 어떻게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주는지를 따져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토킹 신고 접수 시 경찰은 ‘긴급응급조치’를 통해 100m 이내 접근금지 및 정보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재발이 우려될 때는 ‘잠정조치’를 통해 서면 경고 및 구치장 유치까지 가능하다. 스토킹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흉기를 휴대하거나 이용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스토킹 신고 4배 이상 증가, 기대효과는?
지난달 21일 오전 2시 30분경 전북 덕진경찰서는 스토킹 신고로 경고를 받았던 자가 다시 피해자 집에 찾아가자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첫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한 달간 총 2744건, 하루 평균 약 103건의 스토킹 신고가 접수됐다.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총 6339건, 하루 평균 24건이었던 것에 비해 약 4.3배 증가한 수치다. 경찰대 행정학과 한민경 교수는 “그동안의 스토킹을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스토킹 사례 중 다수는 경찰이 개입해 범죄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시키고 경고하는 수준에서 중단된다”며 “잠정조치에 해당하는 서면경고로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법률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스토킹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실제로 스토킹의 상당수는 전 연인이나 배우자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김 부연구위원은 “스토킹처벌법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서도 스토킹이라는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질 것이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진실의 박진실 변호사는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들이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상황을 스토킹 범죄라고 인식하고 대신 신고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실효성엔 여전히 빈틈
일각에서는 스토킹처벌법이 실질적으로 스토킹 범죄를 예방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있다. 한 교수는 “스토킹의 정의 자체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처벌 역시 스토킹 상대방의 의사에 기초해서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천지인의 배수진 변호사는 “피해자가 진정한 의사와는 반대로 명시적인 처벌 불원 의사를 나타낼 수 있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다시 접근하거나 괴롭혀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처벌법의 경우도 과거에는 반의사불벌죄에 포함됐으나 가해자가 합의 종용을 위해 피해자를 압박한 사례가 있어 2013년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한 바 있다. 

현재 스토킹행위자가 긴급응급조치를 어길 시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처분이 강화돼야 한다고 본다. 조치 불이행을 중하게 처벌해 스토킹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교수는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의 처분은 과태료에 불과하다”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정도의 형벌로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토킹처벌법, 끝이 아닌 시작
여성가족부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체계를 형성하기 위해 지난 11일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을 예고했다. 해당 법안은 국가가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 지원할 의무를 담은 것으로 공공기관의 스토킹 예방 교육 의무화, 피해자의 불이익 방지 조치 등이 포함된다. 해당 법안은 내년 시행을 목적으로 발의를 준비 중이다. 스토킹 피해 방지를 위해 국가가 민간 업체의 지원을 활성화하는 방법도 제시된다. 김 부연구위원은 “인력 문제로 경찰이 모든 피해자를 보호하기 어렵다면 훈련받은 지원업체나 민간 보안업체가 출퇴근과 같은 일상 필수활동에 동행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배 변호사는 “스토킹행위가 여러 차례 신고되는 경우 접근금지 조치나 서면경고 외에도 스토킹 예방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스토킹이 특정 성별, 연령, 계층 등에 한정돼 나타나는 범죄 현상은 아니다”며 남녀노소 누구나 스토킹 피해를 당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신고를 망설이는 동안 더 큰 피해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빠르게 신고하고 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