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철오 편집장 (cokim05@skku.edu)

2004년 성균관대를 이끌어 나갈 각 자치단체의 선거유세 활동이 지난주에도 계속됐다. 특히 제36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높이뛰다’와 ‘해밀’ 양 선본은 교내 곳곳에서 합동 유세, 정책 공청회를 비롯한 활발한 선거운동을 펼쳤다. 학내 다양한 인터넷사이트에서도 이에 따른 수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는 상태이다. 2004년을 희망하는 동시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온라인에 결집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오프라인에서는 학우들의 목소리가 실종된 것 같아 아쉽다.

최근 수 년 간 총학생회 선거의 투표율은 50%를 힘겹게 넘어 반쪽짜리 선거라는 오명이 이어졌다. 이는 본교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가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이러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몇몇 대학에서는 선거가 무산되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대는 지난주 총학생회 선거가 사상 처음 투표율 미달로 인해 무산돼 내년 3월 보궐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이밖에 정해진 투표일을 넘겨 연장투표에 들어간 대학도 대부분이다. 이에 대한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모든 이의 공통된 의견은 바로 학우들의 ‘무관심’이다.

본교도 이러한 지나친 투표 참여율 저조라는 차가운 바람을 피할 수 없다. 진정 학교를 위한다면 다양한 의견 표출의 목소리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목소리는 그 소리의 크기와 관계없이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로만 되돌아올 뿐이다.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발걸음, 그리고 이어지는 투표는 민주주의 사회를 더욱 밝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왔던 기본적인 덕목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대명사를 귀에 익을 정도로 들어봤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꽃’은 저절로 피어나지 않는다. 또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도 피어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노력에 의해서만 피어나는 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실현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뒷짐만 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스스로 피어난 시들한 꽃보다는 우리가 함께 키운 싱싱한 꽃을 원할 것이다. 꽃이 피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물과 거름을 주자.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쉽게 말해 ‘찍으면’ 된다. 혹자는 후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기권을 행사하곤 한다. 선거라는 것이 최고가 아닌, 최선을 뽑는 것임을 되새긴다면 기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당하지 못한 행동인지 알 수 있다.

이번 주 학내 곳곳에 투표소가 설치된다. 투표소가 거기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는 학우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지나친 기대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