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사단 김소선(정치·62) 이사장

기자명 김명 기자 (myung11111@skku.edu)

“피터 드러커 박사는 미래에는 NGO가 사회변혁을 주도하는 세력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흥사단은 한국 NGO의 대표기구로써 활약할 것입니다”

   
▲ 변재익 기자
약속된 때보다 꽤 늦은 시각에 도착한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며 김소선 이사장은 힘차게 말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민족의 자주독립과 번영을 위해 창립한 단체인 흥사단. 그가 이 단체에 투신하게 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대학에 들어가 지성인이 된 이상 뭔가 가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김 이사장은 흥사단 본부에서 열리는 금요강좌에 참석했고, 자유당 정권의 모순과 부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흥사단은 그 서슬 퍼렇던 자유당 독재 시절에 올곧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단체였습니다. 함석헌 선생을 비롯한 민족지도자들께서 흥사단 활동을 하시면서 4.19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하셨죠”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흥사단은 부당한 억압에 대항하고 민주투사를 키워내기 위해 ‘흥사단 아카데미 운동’을 벌인다. 이에 동조했던 그는 모교내에 ‘도산 연구회’를 조직해 흥사단 아카데미 운동을 대학으로 끌어들이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가 학내에서 시작한 민주투쟁은 곧 전국의 대학으로 파급되기에 이르러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민주주의 없이 국가발전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이뤄진다는 도산 선생의 말을 되새기며 일에 임했답니다”

젊었을 때부터 사회운동에 힘썼던 탓일까. 그는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갖기 쉬운 학생운동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젊은 시절에 건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며 오히려 요즘 후배들은 과거의 선배들과는 달리 사회문제에 다소 무관심한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레저 스포츠를 즐기면서 젊음을 만끽하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한 번쯤은 조국의 장래와 민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해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고민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장밋빛 미래만을 꿈꿨던 기자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 흥사단은 일제시대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고, 독재정권 시절에는 억압통치 철폐를 외쳤습니다. 이제는 민족통일 문제와 청년인재 양성에 전력할 것입니다”라며 자신 있게 흥사단의 청사진을 펼쳐 보이는 김 이사장. 그의 자신감 있고 미래지향적인 태도야말로 이 나라의 청년들이 지녀야 할 자세요, 덕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