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동(국문·80) 열사 어머니 김순옥(68) 여사

기자명 김진경 기자 (kmjnkg@skku.edu)

“앞으로 이런 희생이 절대로 있어선 안되요. 우리 동이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 결국 90년 분신한 고(故) 최동(국문·80)열사의 어머니 김순옥(68)여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5일 본교 졸업식장에 아들을 대신해 명예졸업장을 받기위해 학교에 방문한 김순옥 여사,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도 따뜻한 인상 때문인지 한결 누그러지는 듯 했다.

“고문을 당해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보며 얼마나 눈물이 나오던지... 당시 상황이 너무 기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아들의 생전모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암울한 현실에 격분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시작한 아들, 최동 열사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동 열사의 분신 후 채 3달이 지나지 않아 최동 열사의 아버지도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들으며 당시 그녀의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먼저 가버린 아들이 야속하지는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다부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당시의 시대가 야속하지 아들이 야속하진 않습니다. 동이가 몸바쳐 운동한 8년간의 시간, 그 시간 동안 한번도 동이는 제 속을 썩혀본 적이 없어요”

최동 열사가 분신한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 김순옥 여사의 가슴속에, 나아가 우리 성균관 학우들 가슴에 아직도 살아있다. 본교 학생들을 보면 아들 같은 느낌이 든다는 김순옥 여사, 그래서 그녀의 성대사랑은 남다르다. 지난해 9월 1년에 한명씩 아들의 국문과 후배에게 장학금을 평생 기탁할 것을 약속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게 뭐 별거냐며 감추려는 모습을 보며 문득 기자는 큰 빚을 진 느낌이 들었다.

본교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는 부탁에 그녀는 “이런 희생은 동이가 마지막이길 바란다”며 “성균관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고 대답했다. 아들 대신 학사모를 쓰고 졸업 가운을 입고서는 “정말 이럴 수는 없다”며 눈물을 보이는 김순옥 여사를 보며 기자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